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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꼬리에 달고

ㅡㅡㅡ 바람이 가을을 하나하나 세며가는 산동네는 다람쥐의 잔치상이다 떡 벌어진 하마 입에서 내놓은 알밤이며 스무 살 챙 없는 꼭지 달린 모자를 쓴 매끈한 몸매 도토리 하늘로 튀어 오른 참나무 가지엔 미처 빠지지 않고 까치밥처럼 달린 몇 개의 알들 심심하면 떡갈나무 가지를 흔들어 흔들리는 나뭇잎이 바람을 내어 가을 악보를 풀어내게 한다 자잘 대는 개울물에 목을 축이고서는 닮았다는 쥐의 목청으로 찌지찍 골짜기를 찔러 존재를 과시한다 동안거에 들기 전 다듬어야 할 단백질은 갈잎 속에 한 무덤 바짝 마른 바위 사이에 광주리채 말려 놓았다 나머지는 양지바른 땅 스무 곳에 내년 봄 싹 틔워 잘 자랄 다섯과 싹도 못 내고 썩어버릴 열 자리 꺾일 다섯 뭐니 해도 사는 오늘이 좋다고 양볼에다 도토리 뽈록 품고 하나씩 꺼..

시 글 2021.11.08

능사리에 가면

ㅡㅡㅡ 과거를 헤집고 사는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무덤은 언제 무엇으로 살았는지 알리지 않음이 알림보다 길어서였을까 비문 하나 없는 묘 어릴적 말랑한 밀랍을 먹고 자랐고 거푸집엔 뜨거운 화로가 있었다는 것 게다가 젊은 시절 아말감빛 화장을 했다는것도 알아 내었다 또 하나는 과거의 늙은 빛과 색에서 급박했던 말굽과 창에 찔림에도 끔쩍하지 않는 부처로 살아 극락으로 가는 연꽃을 피워냈다는 걸 옛 땅을 파고 산다 함은 문화도 과학도 역사도 죽음에 이르기 전 피워낸 꽃들 천 년을 살아왔다는 비밀은 시간이 시간을 거꾸로 먹고 산다는 것 능사리에 가면 아직도 설레이는 염원의 향불 하나 타고 있다 ♡사진 : 백제금동대향로

시 글 2021.11.02

터번을 두른 여인

ㅡㅡㅡ 주인은 그녀를 말없이 받아들였다 어쩌면 자신의 딸로 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파티를 좋아했던 주인 마님은 초대 손님에게 자랑하는 것이 있었다 유명한 동양의 청자 한 점이었다 어느날 아끼던 그 고려 청자가 깨어져 있었다 청소를 하던 그녀도 그걸 보았다 입을 막았다 무거운 짐이 온 몸을 눌러왔다 그녀의 앞에 천둥의 먹구름이 몰려왔다 이 집을 나가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숨이 턱 막혀왔다 그녀를 본 주인 마님이 그녀를 불렀다 그녀의 몸은 오른쪽으로 고개는 왼쪽 마님을 보며 도망하려는듯 허리 아래 있던 손은 손가락을 펴 아니라고 좌우로 흔들고 말을 하려는데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저 저는 아니예요 아니예요' 말은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마님이 불렀다 아가 네가 한 일이 아니란다 그래서 내가 네게..

생각하는 사진 2021.10.25

이게 나

♡♡♡ 나를 알리고 싶다 간단하고 명확하게, 그게 명함이다 명함에는 주로 회사,주소,전화번호,Fax Email 직함,성명 등을 적어 나를 대신한다 요즘은 가끔 취미,좋아하는것 등을 적어 인상적인 표현으로 쉽게 각인 시키기도 한다 생각하면 내가 참 너무 간단하고 우습기도 하다 어떤 때는 이게 내가 맞아? 하고 독담을 해 보기도 안녕하세요 XXX입니다 지구 어느곳에 있든지 나를 찾을 수 있다 부모나 다른 누구와 관계를 이용해 나를 알리지 않는다 은하계에 딱 하나 있는 어드레스요 '나' 이다 어쩌면 신께서 가장 쉽게 나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유일한 통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신이 아니면 불가능 하겠지요 아뭏튼 명함은 곧 '나' 이다 퇴직 후 명함을 새로운 모양으로 바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혼합글 2021.10.21

123층

ㅡㅡㅡ 가끔 나는 그를 사진 찍었다 비가오고 개일 때 쯤이면 구름이 그를 에워싸기도 하고 그 허리를 쓸어주기도 했다 밤이면 여러 색으로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걸기도 했다 어느 땐가는 화려한 폭죽을 터트리기도 했고 그럴 때는 왜 그럴까 속으로 묻기도 했다 왜 그는 밤이 깊어지면 자지 않고 등불을 켜야하는지를 카메라로 던져보았으나 눈만 끔벅일뿐 그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가 심은 발은 지하 깊이 뻗어 있었고 그 큰키로 목이 마를 땐 기린처럼 두 발을 벌리고 고개를 숙이고 호수 물을 마시는걸 보았다 수 많은 설비와 장치들 철근과 콘크리트 무게를 감당하고 사람을 삼키고 상품을 삼키고 돈을 삼키고 그리고 쏟아내는 쓰레기와 자신을 화려한 문명의 앞선 일원으로 나타내려는 밤의 빛을 헤아려 보기도 했다..

혼합글 2021.10.16

기억

ㅡㅡㅡ 기억을 더듬어 밤을 새고 있는 새 한 마리 배고픔은 스스로 석고상을 제작하고 제사상 차려준 강에게 감사한지 오래 번득이는 은어 한 마리 있어 집중하니 구름에 걸린 달님의 허리 그 뒤를 스쳐간 언어는 무엇일까 작년 이때쯤 목에 걸린 붕어 한마리 생각나 그냥 목을 축여 본다 올해는 한강에도 코로나가 걸렸나 작은 고기 떼는 간데 없고 123층 사는 머리까만 물고기들만 울긋불긋 배고픈 가을 강가를 훝어 댄다 사냥은 흔들림 없는 침묵이다 ♡ 밤 7:15분 경 주린 배를 안고 석고상처럼 서서 이 밤 찬거리를 기다리는 새 며칠 후 그 자리 그 시간 대에 서 있는 그

시 글 2021.10.14

빈 구석

벌써 기러기 열 몇 마리가 기억자를 그리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숲으로 부는 바람이 쏴하니 들어가더니 건너편 강물을 흔들어 은빛 비늘을 뿌려 놓고 간다 땅의 개미들은 땅속으로 들어갔는지 대 낮에만 배고픈 것들과 실적을 못 채운 녀석들만 나와서 허기진 배로 썩은 벌레를 찾아가고 있다 저거봐 돌고래들이 수 없이 뛰어올랐다가 바다로 다시 들어가고 있잖아 세상은 어딘가 빈구석이 있어야 다닐 수가 있다 돈을 버는 것도 구석이 있어서 그 틈새를 찾아야 돼 친구도 빈 구석이 있는 친구를 눈여겨 봤다가 친구가 되는거라구 더운 바람이 다 빠져나가고 나니 썰렁한 바람만 남아 들판을 쓸어나가니 쓸쓸한 뒤에 남는건뚫린 내 가슴 구석 알고보면 물, 바람, 움직이는 물체는 모두 빈 곳으로 움직입니다 심지어 마음이 비면 여러가지가 찾..

혼합글 2021.10.11

바벨의 고충

ㅡㅡㅡ 세상이 살만해지고 기술도 제법 높아지자 자신감에 그들은 탑을 높이 쌓아 신의 권위에 도전하려 했다 이걸 아신 신은 이들의 언어를 흔들어 버리셨다 서로 통하지 않게되자 통하는 사람끼리 모아져 흩어지고 탑은 완성되지 못했다 오늘 우리는 123층이라는 탑을 높이 올렸다 신에게 도전 목적이 아닌 상업적 힘을 쌓은 것이다 이 탑으로 무엇이 바뀌었을까 언어는 물론 아니다 상권이 바뀔 수 있었을게다 핵심은 빈부의 차이이다 층별로 주변과 사는 차이를 보여 주고 즐기고 있다 사람이 만드는 것에는 언젠가 실증이 오기 마련이요 또 유행이 바뀌게 되어 있다 나중은 피로감이 덥쳐 오게된다 저 123층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밤의 불빛이 싫다 부도 향락도 권위도 다 싫다 지금은 오로지 쉬고 싶다 라고 말하고 있네요 시냇..

혼합글 2021.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