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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에서

혜화역에서/곽 우 천 혜화역이었다 왜 기다리고 이 시간에 어둠을 파 놓고서 여기는, 누구의 뱃 속이라고 소리가 있어 불빛 있는 곳으로 뛰었다 고기가 입을 다물기 전에 살아야 했으니 늙지 않는 할머니를 또 본다 천당 가는 중간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꼭 지나가고 말지만, 그 패를 건너 골목이 개미집 쪼갠 길 페트라를 찾아갑니다 그곳에 백지장 한 분이, 달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면 누가 올 거라는 신앙으로 버티고 계시죠 어서 와 세상에 사람이 없어 아무도 텅 비어 있어 어느 날 씨름을 했어 혼자 놔두고 당신은 고독하지도 않으냐고 내가 다 죽이지 않았으니 죄짓지 않았으니 모센가처럼 당신의 땅에 못 가게 말라고 세상이 갑자기 튀어나와 당신은 꿈을 꾸고 있소 세상은 없는 거요 당신이 세상 아니란 말이오 나도..

시 글 2024.04.13

창경궁 통명전

궁내에 째지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세자를 낳은 어머니다 물러서지 못하겠느냐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폭주하는 삶을 멈추게 하고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모든 사위어 가는 슬픔을 가르쳐 주는 걸까' 창경궁 뜰에 서면 활짝 벚꽃으로 얄쌍한 진달래로 희빈 장씨가 겹쳐보인다 설렘의 통명전이 풍선처럼 부풀었을 때 숨 한 모금 뱃속에 깊이 넣어 두었더라면

살며 생각하며 2024.04.08

종소리 신화1

소리가 시간을 산란하기 시작하면 새벽 4시마다 종은 씨앗을 뿌렸다 마을은 앓기 시작했고 숨을 멈췄던 시간이 걸어 나오면 배고픈 아침들 무끈한 하루치 먹성을 곳과 것과 갈이가 살아 움직였지 뜨거움을 다 삼키면 쏟아지는 별빛 어둠이 시작할 때까지 종직이 할머니는 하늘에 가 계실 거야 논에 모를, 밭에 콩을 동산에 소나무 큰 숲을 소리로 키우셨으니까 글이었고 언어였고 메아리였던, 종소리 안으로 마을은 싸라기 눈처럼 모여들기 시작했지 마고성이 깨어지고 하늘 동산이 경작되기 시작했어 종의 발음이 약해지고 소리를 다 써 버린 그녀 마지막 종의 채를 잡았지 마른 몸이 밧줄에 올려 내려오질 않았어 마을은 두 개의 세상이 맞부딪쳐 흔들거렸겠지 마고와 하늘 동산 밧줄이 내려오며 마지막 종이 말했어 다르지만 하나, 너희 언..

시 글 2024.04.02

절로 나서

남 모르게 들키고 싶지 않게, 비워두어 애매한 자리 한쪽 몫으로 하고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게 살가워서 숨어 지내도 싱겁지 않습니다 찬 바람에 맞서 이긴 달달한 남해 시금치 바위틈에 자란 2월의 설록차 맛 어쩌다 말고 시켜서 하는 거 말고 하고픈 게 있어요, 3월의 포토 타임 사진 밖에 있는 것 비밀처럼 안고 사는 네 저린 안쪽에 가만 찍어두고 싶습니다 야생의 희망을

카테고리 없음 2024.03.25

바람가는 길따라

목련화인지 물었다 바람으로 고개를 흔든다 봄이 내려와 앉았다고들 한다 그런 짐 진 적이 없다 한다 나비냐고 알아본다 나비는 꽃을 따라다닐 뿐 그래 꽃이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ㅡ ㅡ 기도라고 했다, 욕망이 없는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말자 한다 주장은 모두 헛것일 뿐 모은 손 안에 든, 바라지않는 기도가 되자 한다

카테고리 없음 2024.03.24

반나절의 찻잔

아직 올드 걸 둘 무료 급식소에 서 살고 있다 대학은 끝내 속 빈 학문으로 비치고 말 것이려나 여직 빈 가슴살을 빨아내고 있다 막내딸과 손자가 집에 왔다 오래된 두통을 이민 보냈다 한다 대형 병원 의사는 허공, 스스로 AI 의사가 되었고 주사는 고용했단다 칭찬해 주고 싶은 잔의 색갈이 예쁜 오후 미인을 낳아 준 부모 우리 썩 괜찮지 않아 옆지기에게 살짝 던진다 학이진 전술에 걸렸나 뭔 일이에요 부모님께서 다 떠올려 주..시고 알아챘는지 분위기 '여왕이신 우리 엄마' 오래된 안개가 옅게 걷히어 가는 밝은, 친구가 많은 초딩 내 방은 함께 노는 따뜻한 생각 하나 자라고 턴 테이블이, 오늘의 손금이랄까 감정선을 둥글게 찻잔을 타고 흐른다

시 글 2024.03.16

했어

내가 너를 만났을 때 그냥 너였어 그냥 너였어 바람이 지나갔어 지나갔어 냄새도 없었어 없었어 근데 말이야 우물거렸어 우물거렸어 알고 싶은 거야 그냥 지나갔는데 없었는데 우물거렸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졌어 이상해졌어 알 것도 같았어 같았어 말이 우물거렸어 끌쩍거렸어 네가 살아나는 거야 살아나는 거야 내가 나타났어 나타났어 처음으로 나를 보았어 나를 보았어 신기했어 신기했어 신기하기로 했어 했어

시 글 2024.03.12

너는 어떻게 와

사춘기 아이 어제 오전은 마이너스 3 깃을 세우는 십삼 도 체온 오후 에어컨이 몸의 끈을 살짝 끌러 가만히 하늘의 문을 열어볼까 말까 날더러 출근하라는지 말라는 건지 벚나무 가지가 벌의 채비를 염려하는 이른 아침 눈비 많아 새파래져 올라온 골짜기에 초등학교 골목 찰랑거리는 물빛을 입고 나온 이끼 얼굴 채비를 하든 핑게를 물든 맨 먼저 댓글을 다는 산수유 산 녹은 도시락을 열자 쉬파리 벌써 알아차린 등산 딱따구리 홀벗은 나무 가지 뒤에 숨어 몸통 목탁을 구르는 궁금한 소식 어디에 숨었다 동쪽 바람 맛을 알아차린 숲의 끄덕임 아마추어 애호가가 그리는 날들을 채우려 하는 백석 이래저래 연민 같은 눈 미지근한 젊은 내음 가지고 꼭지에서 몸을 내리는 세면대 파도가 파랑의 몸을 몰고 와 모래밭에 하얀 휘파람 결을 ..

시 글 2024.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