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280

반나절의 찻잔

아직 올드 걸 둘 무료 급식소에 서 살고 있다 대학은 끝내 속 빈 학문으로 비치고 말 것이려나 여직 빈 가슴살을 빨아내고 있다 막내딸과 손자가 집에 왔다 오래된 두통을 이민 보냈다 한다 대형 병원 의사는 허공, 스스로 AI 의사가 되었고 주사는 고용했단다 칭찬해 주고 싶은 잔의 색갈이 예쁜 오후 미인을 낳아 준 부모 우리 썩 괜찮지 않아 옆지기에게 살짝 던진다 학이진 전술에 걸렸나 뭔 일이에요 부모님께서 다 떠올려 주..시고 알아챘는지 분위기 '여왕이신 우리 엄마' 오래된 안개가 옅게 걷히어 가는 밝은, 친구가 많은 초딩 내 방은 함께 노는 따뜻한 생각 하나 자라고 턴 테이블이, 오늘의 손금이랄까 감정선을 둥글게 찻잔을 타고 흐른다

시 글 2024.03.16

했어

내가 너를 만났을 때 그냥 너였어 그냥 너였어 바람이 지나갔어 지나갔어 냄새도 없었어 없었어 근데 말이야 우물거렸어 우물거렸어 알고 싶은 거야 그냥 지나갔는데 없었는데 우물거렸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졌어 이상해졌어 알 것도 같았어 같았어 말이 우물거렸어 끌쩍거렸어 네가 살아나는 거야 살아나는 거야 내가 나타났어 나타났어 처음으로 나를 보았어 나를 보았어 신기했어 신기했어 신기하기로 했어 했어

시 글 2024.03.12

너는 어떻게 와

사춘기 아이 어제 오전은 마이너스 3 깃을 세우는 십삼 도 체온 오후 에어컨이 몸의 끈을 살짝 끌러 가만히 하늘의 문을 열어볼까 말까 날더러 출근하라는지 말라는 건지 벚나무 가지가 벌의 채비를 염려하는 이른 아침 눈비 많아 새파래져 올라온 골짜기에 초등학교 골목 찰랑거리는 물빛을 입고 나온 이끼 얼굴 채비를 하든 핑게를 물든 맨 먼저 댓글을 다는 산수유 산 녹은 도시락을 열자 쉬파리 벌써 알아차린 등산 딱따구리 홀벗은 나무 가지 뒤에 숨어 몸통 목탁을 구르는 궁금한 소식 어디에 숨었다 동쪽 바람 맛을 알아차린 숲의 끄덕임 아마추어 애호가가 그리는 날들을 채우려 하는 백석 이래저래 연민 같은 눈 미지근한 젊은 내음 가지고 꼭지에서 몸을 내리는 세면대 파도가 파랑의 몸을 몰고 와 모래밭에 하얀 휘파람 결을 ..

시 글 2024.03.09

3월의 산란

집은 반듯이 세워야 흔들거리지 않지 중력은 위에서 아래로 끌어오는 거라 믿으며 바람은 흩어지기를 좋아해 떠오르기도 하고 기울기도 해서 수직을 거부합니다 까치집이 그랬다 서까래도 기둥도 빗살무늬 사선이다 저토록 밉게 보였으면 사방에서 화살을 맞았을까 괜한 험담에 화살이 돌아오는 건 아닐지 내게 어떤 바람은 지진을 체크하다 악물고 견디는 촘촘함에 돌아갔고 세찬 소나기 한 차례 어깃장 대 보지만 둘려진 바늘침에 찔려 도망한다 발톱 발로 기어오른 들 고양이 날렵에 가지엔 빈집이 하늘에 숭숭 높이를 삭히고 있다 미끈한 콘크리트 기둥 가지에 둥지를 틀다가 어느 2월 토막 전선 몇 가닥 물고 와 대들보를 쳤다나 섬광이 터지고 암흑 세상을 부른 정전은 사냥꾼 산탄총에 몇 천 원의 목숨이 되었고 그날 이후 집은 집은 다..

시 글 2024.02.21

졸음을 다듬다

봄에 연락하려고 지어야 했거든요 몇 날 밤을 소식은 어둠에서부터 나올 것 같아서, 버젓이 거짓을 깔고 덤비는 껍질이 있어 보인 빛 캤는데요 도톰한 뿌리는 돌의 겨울을 견디어 내고 다발성 뿌리는 말이 얇아 미뤄뒀지요 한쪽 겨울은 잎을 삭혀 버렸겠는데 파랗게 살려둔 이유를, 아이가 감기에 잘 튼다는 소문과 연결 지으려는 이 작은 감정을 이기지 못했어요 고니는 수면의 봄을 날고자 시베리아 날개를 펴고 이륙을 도움닫기 하고 있는 하얀빛들 겨울을 떠나보내지 못한 산그림자 아래쪽 죽지 냉이가 앉아 여직은 살짝 졸고 있어요 햇살 비늘 껴 입으려 노부부의 여러 겹 걸음들 가볍고 가자미 연처럼 버드나무에 걸린 날이 살랑해 강둑 이른 봄을 다듬어 먼저 가지고 온 경안천

시 글 2024.02.13

지금 옛 사람

그분은 옛날 산 적이 있었던 산 적이 없는 사람으로 지금 와 있는 옛사람이었습니다 폭넓은 선이 끄는 백의를 내려 자락으로 끌고 들어와 눈, 코, 입 얼굴이 모자에 바르게 열을 짓고 귀를 세웠어요 예의 향을 태우는 숨 죽인 한참은 한눈에 조선이 살아 돌아온 순간, 한 모금 침이 꼴깍 선릉을 열었습니다 네 번의 허리 꺾임보다 땅을 짚은 엎드림은 과거만큼 길고 깊었고 맑은술로 향을 음미하는 대왕의 작이 입술에 적실 때 오백 년 내려쓴 종묘사직이 여직 아침의 나라를 잇는 게 보였지요 옛 사람 앞에 서면 왜 누가 바뀌어져 나올까요 12월 9일 내년ᆢ또 그는 이 씨요 조선이요 옛 모자, 지금 사람이 될 것이라고

시 글 2024.02.11

달빛 언어

심부를 갔다 그냥 돌아와 답을 하지 않은 채 얼굴만 만지는 빈방처럼 먼저 퇴직한 친구가 좀 보자고 초봄 찻잎 얼굴을 가지고 왔다 간을 토끼의 주머니에 넣어 살고 있다고 했던 말하는 그는 이 세상에 없어 보이는 사람 같았다 어느 경전도 따라잡지 못한 번짐 없는 입, 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어깨 색이 없는 말에는 끌어당기는 힘이 방안 가득했다 부탁도 청도 아닌 과거들이 나열 앞에 따습게들 모여들었고 그가 남기고 간 공간은 생의 시작과 끝 어디쯤이라기보다는 갚을 수 없는 빈 자유로움이었을까 서로 잡아당기는 이해는 같은 것이라도 느낌의 차가 한이 없다고, 바람이 일어서고 가라앉음도, 밀려오고 쓸려가는 바닷물도 깊음이 물길따라 다르다고 달빛 같은 말을 듣고 있었다 상처의 이쪽과 저쪽 사이를 쉽게 넘을 수 있..

시 글 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