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248

한 이불 속 들어갈 때

한 이불 속 들어갈 때 그와 나누는 대화를 독백이라 합니다 둘이 속삭이려면 벽에 기댈 때 높이가 맞습니다 어떤 배경 이야기든, 예를 들면 아름다움 고통 지식 종교 등 그는 변색하지 않는 평등심의 소유자로 나옵니다 가끔 자전거를 타면 특별할 수 있어요 따라다니며 바퀴를 돌립니다 나는 무동력이 되는 경지를 맛보게 되지요 혹 배를 탄다면 검은 고래 한 마리 배 아래 희뜩번뜩 찰싹 붙습니다 늘고 줄임에 자유로운 길이 나와 같은 키 재기 들어도 입이 없고 보아도 전함이 없는, 먹물 찍어 산수 그려 내는 동양화가랄까 발뒤꿈 물고 사는 천성은 꼬리달린 신의 신봉자 여서일까 죽음이 영원한 거라면 순간 든 낮잠의 그림자 같이 걷고 먹고 한 이불속 들어갈 때 고스란히 한 몸의 이야기가 됩니다.

시 글 2023.05.30 (21)

새 아침을 주문하다

목성에서 아침을 일어난다 부피가 크면 일어서기 힘들어서 물속에 넣은 소금이 된 가죽옷을 입고 일어난다 억지 밥을 소리라도 맛있어지라고 꼬꼬 꼭 씹어 삼켜 본다 목구멍이 헛발질을 케캐 캑하고 하루를 견뎌 낸 짠 땀이 눈 안에 뻐걱뻐걱 레슬링 한다 오늘을 둘러보니 어제 만치 벗어날 길은 다닐 곳에 숨겨져 있다 때마침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가 시클롭스키를 만난다 일상을 벗어난다는 거 새롭게 하기일 뿐이다 잠깐의 외출은 돌아오면 목소리 잠기듯 들어가고 일상은 일상이 되고 있다 목구멍이 바이어린을 켜고 뻑뻑한 눈이 함박눈을 맞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목들 형식을 일 년에 한 번은 벗어나 현실과 맞닥뜨리는 다른 지혜를 가지고 있었네 목성을 탈출하기란 이목구비를 어디에 두고 부릴 것이냐에 집중을 해 보려 하는 새 ..

시 글 2023.05.26 (28)

밤을 한 입에 삼키는 법

*밤을 한 입에 삼키는 법 바람이 불렀을 때 하품을 하고 있던 어둠이 밤을 한 입으로 삼키자 밤은 곧 어둠이 되었다 바람에 강한 어둠 세상엔 너에게 꼼짝도 않는 게 있지 했다 바람의 묘수를 알기나 했을지 어둠을 품어 낸 거야 밤이 맞도록 샛별의 눈이 흐려지는 시간 아이는 살았고 산고 끝 어미는 사라져 갔다 어둠이 출산을 한 거야 맑고 밝은, 바람이 모처럼 살랑거리는 아침을

시 글 2023.05.19 (31)

Endless 전쟁

*Endless 전쟁 다섯 살 어느 날 이사 갔던, 지금 내 고향 토방이 나지막한 늙은 호박 같던 집 재혁이가 싸움을 걸어왔다 터를 중요시하는 고양이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다 영역 침범 범이라도 된 나 염탐꾼 검색의 찢어진 눈 학교에서 만나면 기를 꺾으려는 보험용이었을까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폼을 잡았다 우리 땅 한 발자국도 딛지 못하게 할 것처럼 망치로 못질한 발바닥 캥거루 달음질로 왔다 역사가 긴 동네일수록 울타리 경계를 넘은 호박은 말뚝이 박혔고 냇물 목간하는 여자아이들 팽나무에 올라 보초를 서는 일들이 행했었지 여름 달빛마저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팔레스틴은 이스라엘 호미 끝 같은 창을 피해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풀들의 Endless 전쟁이었다

시 글 2023.04.30 (65)

선재길 늦바람 불어

좀 되었던 월정사 바람이 들어 본 적 없는 절 독경 소리 새어 들어와 났다 말았다 한 사찰이 끌어당길 때 이름에 목을 걸고 없는 사람 찾으러 헤매 나선 적이 자꾸 쌓였어 봄 절간은 기와불사 주문을 피해가면, 있어야 할 연을 묶지 않는 낭떠러지 흔적 하나를 떼어 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질 거 같아 예정된 처사라도 되는 듯 줄 섰었지 이 일 때문이었어 바람이 그렇게 살랑거렸던 건 기와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띠 두르고 서까래 위로 올라가고서야 봄바람이 할 일 했다는 듯 차분해졌다지 길 위에 꽃이 피어 발걸음이 앞을 서고 양팔 들고 오늘 너는 자유라고 외쳐 혼자서 가는, 길 없는 길 될까 늘 서늘한 구석으로 남은 선재길 벌어진 입이 눈꼬리 마냥 찢어지고 단단한 다짐이 끌어낸 맨발 이십 리 산 길이 어이 치받고 올라..

시 글 2023.04.24 (44)

중절모는이렇게 왔다

*중절모는 이렇게 왔다 들락거리는 아픔의 문턱엔 높낮이가 있었는지 무릎까지 내려와 고개 숙인 중절모 어긋났는지 불편이 맞는다 하회탈은 안면 바꿔 산다더니 양 날개 나비처럼 깃 세우고 눈썹 보일락 말락 깊숙이 청진기를 바라보는 너 인텔리, 부자 양반쯤으로 여겼는지 침 한 모금 삼켜 헤아려 받는다 쎄일된 원형 모자 하나 손주 초등 교장도 인사가 수그러지고 공손한 언어를 모자에 올려, 맞는 종교 여기나 저기나 높이 성벽이 된, 중절모엔 든 따뜻한 체온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시 글 2023.04.16 (47)

매듭들

매듭 참 짜증이다 시장 검정 비닐봉지 꽉 다문 입 풀려는 손톱 끝보다 가위로 잘라버릴까 끝까지 풀어낼까 갈등이 번데기 좋아하는 옆지기 씻고 삶고 물 빼고 소금 넣어 볶아 놓았더니 한 숟가락도, 미더워서나 감격해서나 시험 삼은 날 작은 유리그릇 두 숟갈 질러 넣었더니 안개 낀 남산 벗어나듯 맑게 개어있다 참 그렇다 손자 젖떼기 꼭지처럼 그 순간 간지러웠을까 아팠을까 울 할머니 시집 안 가겠다던 딸애 고행 여행 가던 날 아침 매듭바람 시원했을까 벌써 기다려졌을까 어미 낮 살은 중도층 꽃 매듭진 낙화 자리 목련 빨갛다 매듭은 자르지 말고 풀어야 복 들어온다 귀가 운다

시 글 2023.04.07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