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17

그냥 사는 거라고요

말 너무 쉽네요 공부도 쉽고 노래도 쉽고 지나기가 쉽고 좀 어렵네요 사람 알아가기가 어렵고 일한 대가 받기가 어렵고 먹여 살리기가 어렵고 나를 찾기가 어렵고 너무 어렵네요 남을 이해하고 나를 낮추고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 다 내 잘못이라는 것 세상에 더 어려운 게 있을까요 난 있어 보입니다 한 우주를 품고 기르고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 입이 아니라는 것 손이요 발이요 머리끝이요 피였고 애간장이었고 참음이었고 견딤이었고 그래 그래였고 오냐오냐였고 눈물 한 방울이었다는 것 다 품으신 한 줌 어머니

시 글 2023.07.19

벌벌레 먹은 미소

벌레 먹은 미소/곽우천 쌍석이가 누구예요 ㅎㅎㅎ 그러실 줄 알았어요 선생님 성적표는 둘 다 100점이라서 첫 젖 물릴 때부터 먼저를 찾기 힘들었던 그녀 무슨 동물인가 싶어 낯 뜨거웠던 동네 어머 경사 났네 우리 동네 귀가 마음에 걸려 있었던 여직 가시지 않는 때 네~ 미소 속에 숨어 있어요 찌르세요 살짝 옆구리를 쌍호는 간지럼을 참고 좋아해요 명사 하나 덧 댄 형인 쌍석은 으젓해지고 동생이 된 쌍호는 늘 부족한 한 줌 아차 싶었었단다 두 켤레 고무신을 가지고 와서 어느 것이 내 것이냐고 쌍호는 네가 먼저 신어보렴 그게 네 것이다 인정을 받는다는 거 하늘도 알아주는 차별화 세월이 가도 남을 화석 같은 것 2억 5천만 년을 견디고 부르짖어 새카맣게 타버린 벌레 먹은 미소를 지지 않고 폐 속에 담아 두었던 쌍..

시 글 2023.02.23

걸망

대문 나설 때 마당발 어머니는 자식을 다시 낳았다 세상이 둘셋 있다는 걸 알았을 무렵 접히지 않았던 옷고름 샘 물가를 적시었다는데 발걸음 한 번 뒤돌림 없이 막대 걸망은 막대 걸망이 되리라고 막아선 번뇌가 벽이라서 숲의 눈 개수만큼 이어서 바람 깎는 보리 석탑을 돌고 땡볕 말리우는 말들은 경전을 깨고 나온 풍경 소리되었다는 천둥은 더 많은 가지를 첬었다네 어디서 무엇부터 끊고 베어야 하는지 순번 없는 죽음처럼 사람이 바로 산다는 게 죽어 제사상에 울린 절 받는 한 마리 북어가 된다는 걸 알았더라면 색이고 공이고 삶과 죽음 사이 무의 한나절이야 여기 마당입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떤 세상 걸망에 넣고 다시 가시는지요

시 글 2023.02.08

존재가 귀해졌기 때문입니다

*존재가 귀해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나를 영혼의 한쪽이 머리 뒷 켠에 멈춰 서 어머니 생각에서 돌아온 것처럼 가지고 왔습니다 당신의 허파 한쪽에 다녀온 듯한 창이 퍼덕였습니다 붓끝 굶주림을 띄우려 해도 나지 않는 숙연함은 처음이 깨어질까 말림 때문만 아닐 겁니다 그 애잔 떠 심장에 심어 살아나게 싶어서입니다 그리워했을 따뜻해했을 삶을 다독일 은밀한 운치의 시선이었기에 기도합니다 당신, 남은 허파에 보낼 허기진 기별을 세상은 참 갸륵도 합니다 짧은 순간이 움직여 내는 파고가 오랫동안 당신을 기억할 내 존재가 귀해졌기 때문입니다

시 글 2022.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