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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낮 동안 세탁해 걸어두었던 해가 물이 많이 빠졌다 천연 염색이란 게 저런가 보다 싶어 걸치고 싶은 색이 둘 쯤 생겼다 색이란 어둠처럼 빛이 아니고선 나오질 않는 비밀스러운 것이리라 몇 개의 패스워드로 사는 세상 비밀은 가족도 모르는 고독을 가지고 네 개의 방마다 걸어둔 키 덕으로 한 지붕 네 가족으로 사는 세상 민속촌 한옥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 하늘에 원두막이 생긴다 한 숨 자고 나니 양반 어르신네 잠이 깊어 천국을 깨우지 못했네요 합니다 가보지도 보이지도 않는 천국을 믿으려니 구석진 공간 하나 생기고 시집도 중간에 페이지 하나 비워두어 쉬어가라고 하는데 걸음을 쉬어야 할지 인생을 쉬어 멈추면 영원할 테고 알듯 말듯한 삶이 불러 내는데 끄억끄억 끌려가는지 점점 힘이 듭니다 상상은 날아다니고 kg은 점점 ..

시 글 2022.08.24

여름 일곱

짝을 털어낸 더위 토한 소리가, 떨어진 느티나무 밑 젓가락 집고 건져낸 울대들 유리병 속에 넣어 둔다 7 년을 셈하는 종각 종소리도 잠이 들 시간 연말이면 해마다 소리들은 종 3 거리로 모여들고 붙인 배꼽에 밴드 하나 갖가지 소원들은 색깔 소리가 나면 매미의 한 해를 감하고 떨었던 밴드에 알코올을 붓습니다 그 소리는 소리가 아닌 에밀레 레는 자신을 찾는 유년의 언어 일 년 하루 개방한다는 봉암사는 그날 하루만 운다는 매미 줄 떼 지어 하안거 이레를 더 견뎌 부처를 만나라네 그래도 별 일 아니란 듯 배고픈 유충들 칠 년을 도는 새벽 돌탑 약속은 걸릴 것이고 배꼽 닫혔던 유리병 속 성대는 소리 일곱을 손가락으로 꼽을 겁니다

시 글 2022.08.15

거울

어서 오세요 설흔 하나의 아침 당신을 가지고 오셨군요 오늘은 날이 환한가 보네요 나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가 가면 뛸 듯 기뻐들 합니다 왜겠어요 산과 들 바다 볼 수 없었는 신기한 자기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으니까요 바람만 섭섭해하지요 이럴 땐 신에게 투정이 폭풍으로 바뀝니다 그러다 심한 것 아니냐고 말듣고 멈추지요 태양계를 보셨나요 팽이처럼 돌아가는 해와 수금지화목토천혜명 위성들 약혼반지를 낀 토성이 에머랄드 지구와 견주자고 하네요 우주 끝을 보여 달라고요 바다 끝을 가 보고 싶다 했지요 지금 서 있는 곳이 그 끝이랍니다 물러설 수 없는 아름다운 수채화는 제게 매일 달려 오는 선물입니다 어서 오세요 설흔 하나의 오후 당신을 가지고 오셨군요 직장에서 내상을 입으셨나 봐요 껍질을 벗기면 알 수 있..

시 글 2022.08.11

소라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눈만 빼놓고 숨었던 숨바꼭질 고향 장독대 하나씩 아예 짊어지고 사는 소라게 총알받이 맞고 배고프게 죽었던 영혼들 나비 되어 모래밭 낳은 알 자리에 슬픈 두 눈 소라게가 되어 사는 마나가하 섬 물테 안경 갈고리 차고 여태껏 섬 넘보고 있는 사꾸라 망령 뼈들 쪼개지고 쪼개진 하얀 모래 대양의 파도도 넘지 못하게 지켜 낸 白衣 갈매기 싸 놓은 만나 떠밀려 나온 산호는 메추라기 영혼 파 먹으며 파도가 들고 나가는 소리 쌀 씻는 어머니 손마디 소리가 보여요 이제 조상 땅 사람들 어찌 알고 찾아오길래 두루마기 마고자 안 보여도 고향 냄새 알아낸 패인 짚신 발자국 울타리 삼고 진달래 분홍치마 입고 싶어 아기 섬 동산 만들었어요 '아리랑' 고개처럼 넘어오는 파랑들에게 들려주세요 우린 잘 몰..

시 글 2022.08.04

마지막 심장

그림자 실은 포경선 돛이 없다 언어도 숨었다 수평선을 넘어설 무렵 배는 바다에 눕다가 하늘에 눕다가 하늘을 삼킨 바다 긴 창 끝은 바다 깊이를 가늠하고선 작살수는 외친다 '고래다 수염고래다' 심장 깊이 작살이 파고 들어간다 와! 와! 장생포 항은 핏방울 붉은 강이 산을 이룬다 포구를 돌고 도는 북과 장구와 꽹과리 야단법석들 그는 외친다 '고래다' 뱃가죽 아래서 끌어올린 힘은 바다 심장에 마지막 작살을 내리꽂는다 '장생포는 바다를 잡았다' 와! 와! 와! 심장만 찌르던 아픔은 끝내 갯벌에 몸을 부려 놓은 채 더 이상 닻은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심장에 박혀서 '고래잡이 금지' 퍼포먼스는 그렇게 막이 내린다 ~1982.

시 글 2022.08.02

아가야

늦은 오후 어두운 돌 한 마리씩 안고 나온 애착들 민이야 네 친구 석이야 아이들은 벌써 7명으로 늘어나고 동네 운동장은 석양 햇살 받이 언덕 잔디밭 저마다 해산의 아픔 한 가닥씩 목줄처럼 내놓고는 거두고 간다 목련은 꽃만 피고 꽃만 피고 씨 없는 수박 우장춘은 종자를 말려도 박사라는데 신안산 70 만원 짜리 민어만 드시고 가신 할아버님 손자 목말라 우물가에 차려진 젯상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른 짠물은 간척지 서해 어느 섬에서 시작된 유래 3대 독자 집안 어두운 골목 끝자락에 선 석이네 자기야 석이면 됐지? 어느 거지가 초가집 불난 걸 보고 우리는 집이 없어 행복하다고 꺼내려다 꾹 참은 목구멍에 밤새 초가집이 들락거려 눈이 뻥했다 시집 안 간 누구는 한 번에 들어서 어르신들 복덩이 들어왔다고 왕 대접 밥상 ..

시 글 2022.07.31

빛과 소리 게임

둥근 빛은 소리를 찼다 소리는 빛을 찼다 어쩌면 빛은 소리의 꼬리를 쫓아다녔고 소리는 빛의 꼬리를 쫓아다녔다 빛은 빛을 소리는 소리를 찰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찰 수 없는 것처럼 빛이 차면 반드시 소리 차례가 되어야 하고 소리가 차면 반드시 빛의 순서가 되어야 했습니다 빛이 주저앉거나 소리가 그러하면 게임은 끝이 납니다 소리와 빛의 놀이이기에 어둠은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편합니다 집중력은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는가 봅니다 빛의 속도나 소리의 속도가 같은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경험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더 훌륭한 경험은 바로 소리와 빛은 하나라는 점입니다 공상과학에서도 나올 수 없는 초 우주적인 신비한 세계 아인슈타인도 풀 수 없는 게임입니다 어디선가 본 경험이 있을만한 게임이지요 속도를 줄인 빛은..

시 글 2022.07.20

날개는 걱정할 내일이 없다

핸드폰 캘린더에 내일이 오늘이 된 일을 적는다 어깨걸이 쌀 몇 줌 가방에 넣어 두기 고양이 느린 걸음으로 들어가는 오후 이쯤 나는 그림자가 되어 준 나무 아래 배고픈 예배의 긴 의자에 앉는다 한 줌 쌀 입 다물었던 연꽃봉에 시주할 때 손가락은 나무 가지가 되어 네 발의 망설임을 끌어들인다 두려움은 손에 잡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때문이려나 한나절을 나는 새는 배가 이때쯤 고프다 배고픔이 믿음보다 앞선가 모이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혀 굳어지는 신앙 벌써 순환을 알아차린, 나의 날개들은 가지 사이를 예배 시간으로 알고 왕래한다 연꽃잎은 저녁 예불을 봉안하고서 손가락을 믿는 기도는 아예 둥지를 틀 셈이다 어디서 배웠는지 가부좌보다 깊은 불심 믿음은 배고픔에서 나오는 줄을 오늘 나는 너에게서 읽어낸다 내일은 더 ..

시 글 202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