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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더 고와졌다

ㅡㅡㅡ 마을을 내려다 보던 달 가지에 걸린 바람 한 점 잡아 놓고선 동자로 세월이 아닌 색과 결을 찾고 있네요 봄 가뭄을 타던 내장에 있는 습들은 바스러진 표피를 지키려 자신을 짜 내고 연장시켜 준다는 생명 가죽만 남긴 금식은 여태껏 바짝 붙인 바닥을 셈하고 있습니다 깨지지 않는 그림자와 달의 뒷면에서 긁어낸 문신 조각 조명이 물어다 준 생인 손 수 천만년 전 지층에 눌린 흔적은 비 폭력 저항처럼 순하고 깊은 간디의 얼굴입니다 날개 세운 돛은 집열판 회로를 꺼내어 바람으로 채우고 색을 입혀 벌판을 핥고 온 시베리아처럼 섬섬하네요 손금을 좀 보는 점술가가 조상을 물어보고 생명선은 거북처럼 길고 질겨 이 생보다 더 긴 느린 걸음이랍니다 오래된 빛은 아주 느렸고 색은 더 고와졌더라 나이 들어 학자들은 다윈의 ..

시 글 2022.05.17

마술없는 세상

가끔은 오르고 싶었어 구름을 구름은 요술은 가지고 있으나 마술이 없는 세상이거든 우산과 양산을 말하는 건데 나는 우산일 때는 비가 오고 양산일 때는 볕이 들지 말이 뒤집어졌나 비가 오면 우산이 되는가 아무튼 그래 색 하고는 관계가 적어 울 엄마는 늘 반대이셨어 딸이 둘이었는데 우산과 양산 장사를 했지 큰 딸은 양산이고 작은 딸은 우산이거든 그럼 맞춰 봐 비가 오면 누굴 생각하겠는지 이제 너도 그 이유를 알았지 그런데 말이야 오늘은 내가 꼭 되고 싶은 게 있거든 말해도 되나 비밀인데 입맛을 돋우잖아 봄나물은 육수가 필요한데 산도 있어야 하고 바다도 있어야 해서 오늘은 산을 선택했어 네가 서 있는 곳 널 닮은 것인데 디포리 다시마와 함께 넣고 끓이면 왕육수가 되지 표고버섯이야 봄 입맛 나게 해 주지 몸조심해..

시 글 2022.05.14

영원히 사는 법

♡♡♡ 서쪽으로 갈수록 시간이 지연되지요 우리와 중국 가까운 곳은 한시간 멀리는 몇 시간 유럽은 7~8시간 미국은 14시간 정도 차이가 납니다 베트남은 정확히 두 시간 차이가 납니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중국을 비행기로 가면 그곳 시간은 또 7시입니다 계속해서 같은 속도로 유럽으로 날아가면 계속 아침입니다 뜨는 해를 계속 보면서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점심에 출발하면 계속 점심을 저녁 노을을 좋아하시면 그 시간에 출발을 하시면 그 느긋한 저녁 노을을 같은 시간에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이 것은 비밀이지만 처음 공개하는 사실입니다 영원히 살고 싶으시다면 계속 서쪽으로 가세요 계속 같은 시간에 있을 것입니다 해가 지지 않으니 날자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니 늙지 않게 됩니다 ㅎㅎㅎ 용기 있는 분에게만 주어집니..

혼합글 2022.05.05

죽음이 말을 한다면

♡♡♡ 죽음이 말을 하면 아침의 산새 소리일까요 한낮의 뙤약볕 마르는 소리일까요 아늑히 내려 앉는 배고픈 노을 말들일 까요 새벽녘 새소리에 잠이 깨워졌습니다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산을 한 바퀴 돌고 오라 합니다 누구였을까 나를 깨운 산새 당신은 ..................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이 깨우지 않으면 죽었을 것이기에 어젯밤 함께 재워준 대가로 아침을 일으켜 손 잡아 준 것입니다 죽음이 말을 한다면 빨리 일어나세요 그리고 세상 한 바퀴 돌고 오세요 죽음의 말이 끝이 나면 세상도 당신도 끝이 날 것입니다 죽음의 말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손짓을 하고 말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아침을 일으켜 세우는 일은 죽음이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삶과 똑 같이 살다가 생을 정지하는 일이 그의 역할입니다 죽..

낙서장 2022.05.02

풀꽃 씨

♡♡♡ 너는 누군가가 갔었던 길에서 길을 찾기로 한다 소식도 주지 않고 조용히 맘먹은 대로 어떤 식사를 위해 사전에 맘에 든 식당을 찾지 않았다 제법 맛있고 깔끔한 빛에 고마운 색 하나 입히고 그 갈피를 기억해 두기도 한다 그곳에 가려면 자동차도 비행기도 돛단배도 타도 되지만 그것들은 결국 돌아오는 길이기에 맨발로 걷기로 했지 가고 싶은 곳에는 아무도 찾지 않았을 길이 끝나는 곳이기를 바랐다 길이 끝나는 길은 없었고 절벽엔 밧줄을 타고 빌딩 청소부 아저씨가 있었다 애초에 길은 찾는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가는 길이 길이었다는 걸 안 뒤로, 너의 그림자 얼굴 그림 구두를 닦는 일 풀빵을 파는 아주머니 주머니 속에 있었다 주머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아껴 두다가 너의 말을 꺼내간 녀석도 있었지 말은..

시 글 2022.04.29

오후 다섯 시

♡♡♡ 책 한 권을 들고서 곰바위 넓적다리 좁은 계곡은 물을 품어 새들이 찾고 까마귀 까치 많고요 뱁새 찌르레기 이따금 제주 휘파람새 휘휘휫 날갯짓 소리를 쫒다 잠깐 잠이 들었네요 큰 새들 바람소리는 얼굴을 덮고 이 가지 저 가지 나는데 까마귀는 죽은 시체를 좋아한다네요 확인하러 왔나 비켜가는 낡은 비행기 연통 소리에 깨니 의심 버린 새들 그냥 쉬어가세요 오늘 빌려드린다네요 작년 죽은 가지 잎이 메마른 귀를 긁고 가고 깊은숨 이런 꿀잠은 따뜻이 내어주는 이곳 바위 등만 알지요 계곡 바람이 소동을 하네요 아래서 위로 부는 바람이 이 시간이면 몸통을 틀어요 위에서 아래로 계곡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송화 꽃 향이 퍼질 시간 이것도 비밀입니다 큰 숨 한 번 더 쉬고 6시 돌아갈 아쉬운 시간입니다

시 글 2022.04.26

미래가 현재에게

♡♡ 천아 나 자금 월남이야 파병 나왔어 뭐 파 파병이라고 니 지금....뭐라 했니 말 문이 막혔다 그와 나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회사 입사 시험에 동시에 합격해 여유 있는직장생활을 하던 동창이다 성학아 꼭 살아 돌아와야 한다 알았지 다낭 항구의 환영식의 함성과 스피커는 항구를 찢어 놓고 있었다 나도 악을 썼다 느릿한 성격의 그, 그래서 그걸 고치겠다고 해병대에 자원했고 파병 부대로 차출당했던 계기가 되었다 월남과 두 시간 차이의 전화는 2 억년 전 별빛이나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인천항으로 직행했다 그가 닿고 있는 바다에 발을 동시에 넣고 싶었다 그의 내장에 내 차가운 발등을 넣어 식혀 주고 싶었다 세차던 파도가 이내 잠잠해졌다 다낭항과 인천항 동시 생중개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의 발등이 물속에 보였다 군화를..

시 글 2022.04.25

발걸음

♡♡♡ 시인이 말한다 몇몇이 모여서 가장 선한 말로 우린 배고프지 않니 배 고프진 않아 배고프지 않다고 그래도 고프지 않다고 마련한 무대는 번지지 않았고 번졌다고 생각한다 번지길 희망한다 시집이 배고픈 건지 시인이 배고픈 건지, 시가 어려운 건지 시집이 어려운 건지, 희망을 부풀린 건지 욕망을 부풀린 건지 모임은 끝났다 간단한 빵 하나 식탁에 오른다 채석강 지층이 아름답다 무겁다 메아리가 외롭다 빠져나오려 하니 물이 불어나 나갈 수가 없다 조난 신고에 숙박비를 날렸다 통일호를 찾았다 새마을호도 사라졌단다 KTX에는 먹을 것도 없다 라면 속 국물이 짜다 옛 직장이 말한다 돌아와 발걸음은 맑은 서점 골목이다 내 책, 시집을 사 줘야겠다 ☆김선우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중 '시인과의 대화'를 읽고

시 글 2022.04.22

허기 한 줌 쥐고서

♡♡♡ 허기 한 줌 쥐고서 파동을 냄새 맡고 찾아가는 거머리처럼 빈 마당을 나선다 강의 페달을 밟는 자전거가 풍경을 앞바퀴에 잔뜩 압축하고 종일 안고 다녀도 채워지지 않는 푸들의 꼬리에 달린 고민들 손을 잡고 다녀도 연결되지 않아 마뜩지 않은 저 두 젊은 영상은 뭘까 유모차는 아기의 배고픔일까 엄마의 산책 시간일까 핸드폰에 박혀버린 눈 운동기구에 매 달린 늙은 삭신들의 마른침 강물을 빨아들인 아파트의 훵한 갈증 오르고 싶은 하늘을 얼마만큼이나 끌어내린 어린아이의 그네 타기 손가락 다섯 개 체온을 기억하는 버려진 아기 장갑 한 짝 젊은 네 쌍의 잔디밭 미팅 눈빛들은 바닥 아래 살짝 짚어 주고 간 어느 어깨 강을 건너면 다시 강을 건너고 또 건너면 건너고 싶다고 강을 하루 네 번을 넘다가 데이트를 마친 밤의..

시 글 2022.04.18

거꾸러 자전하는 금성

♡♡♡ 밤의 시간이 줄을 지어 앞차 불빛을 마시고 어둠의 신비를 부풀리고자 나무 가지들 몸의 중심에 어둠을 가두려 검은 그림자를 몸에 바릅니다 밤으로 가는 숲은 새들의 울음을 삼켜 소리 없는 소리 동산을 품고서, 삼거리에 선 나는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망설이는데 건너면 새 세상 있을 것 같은 다리 건넌 길로 가서 호수를 빠져나가려 합니다 벌써 알 품은 탯줄 낳는 개구리 엉치뼈 소리와 주차장 차들 식당 간 주인을 기다리며 뛰지 않는 심장을 점검합니다 숲은 벌써 밤새울 작정인 듯 가지 사이사이에 불빛 촛대를 끼워 두고 느티나무는 연초록 빗방울을 튕겨 뿌리는데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은 우산이 없습니다 코로나도 손을 씻고 화장실은 불빛 마스크를 쓴 체 한쪽에 비켜 선 품새 바람의 방향을 볼 줄 알아 양지를 아는 개..

시 글 2022.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