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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빼앗긴 꽃

휘발시킨 이름 아이디를 전설처럼 붙이는 마을 너는 '억새'라는 이름을 지어 받았지 벌 나비 전혀 세 들어 살지 않는 꽃에게는 이름을 지워갔다하네 혹 신명이 있었던 것일까 마을은 해였다 달이었고 별이었든지 꽃은 꽃은 다 꽃밭으로 키워내고 바람을 좋아하는 것들은 집 밖으로 쫓겨나 해 달 별 가는 길을 들여다보는 하늘 바래기이었습니다 족두리 올리는 일은, 부모 이름 지우고 마을서 얻은 이름 지켜가는, 너무 낯설어 '마동 댁'은 집이자 이름으로 평생이 되어버려서 암컷은 어둠이 커나가면 강가로 나와 하늘이 스러가는 길과 마을 샛길을 바꾸어 보곤 했습니다 해는 무겁고 흔들리고 싶은 여인이 찾아와 같은 풍경이 되어 알듯 모를듯한 말을 주곤 너의 몸에서는 배고픈 벼 이삭 냄새가 콤바인 날개에 갈리어 뿜어 나왔습니다 멀..

시 글 2022.11.02

더 큰 세상

010과 10의 차이란? 누구는 010은 있을 수 없다고 자연수가 아닌 숫자 표기가 가능하느냐고 투덜대지만 속으로는 다른 의미가 있을까봐 걱정하는 눈치다 너무 당연한 숫자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0 도 당연한 숫자인데 앞으로 나와 있다고 이상하게 보는 시각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두 가지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고 누가 말한다 아나로그에서 벗어나세요 빨리 비행기에 오르세요 떠나기 전에 해외여행 하고 외친다 모두를 떠나서 숫자 앞에 0 을 붙인다는 생각이 가상스럽고 아름답고 세상을 부드럽게 뇌를 말랑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어서 발상이 멋지다고 이야기 한다 없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없다 그리고 없어야 한다는 게 진리이다 라고 한다면 지금도 이상한 숫자라고 말을 할까 사람이라고 말을 할까 세상은 변하고 변해서 바뀌고..

살며 생각하며 2022.10.28

난 누구일까

손자와 시간이다 내방을 찾아와서 할배 그림자를 뒤져보는게 그가 벌이는 재미다 차이가 난다거나 어떤 다른 느낌이 있거나 할 쯤에 그는 하나 씩 물어온다 나는 책을 많이 읽으면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쉽게 해결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말한다 그는 답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심심해 진다'고 그가 어디만큼 와 있는지 성장을 알게 한다 욱이는 '누구게' 할아버지 할머니 손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어지면 엄마 아빠 아들, 엄마 아빠도 없어지면, 또 이모도 친구도 다 없어지고 나면 욱이는 누굴까? 나무하고 욱이하고 바위하고 욱이하고 그가 고개를 묻는다 내 쪽에 울고 있다 다 없어진다고 해서 다 없어지면 욱이는 누굴까 몰라 그래 욱이하고 누구하고 누구하고 서로 연결되는 걸 관계라고 해 관계가..

가족 이야기 2022.10.11

물 때가 빠져 나갈 때

그림자가 두껍고 무거웠나 그런 날이었다 발바닥에 지쳐 묻어 따라온다 너도 아침을 잃었는지 봉은사 새벽 편경마저 울음이 얼었다 누가 아프다고 말하면 지나가는 강아지 목줄만큼이나 가늘었고 어덕 하나 허물어 짐은 이 밤을 지나는 무릎 통증이었다 해 놓았던 약속이 삭제되자 손발이 기다리다 손을 놓고 발을 잃어버린다 편지 한 장이 날아온다 언젠가 가을을 넣어두었던 시집 속 코스모스 꽃잎 아픈 색이다 그때는 산에 개미들이 버글 했다 붉고 파란 노란 채색과 톱니바퀴 붙은 신발을 신고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였다 눈이 여럿 일 때는 이정표가 필요 없다 누군가 눈이 길을 뚫어 길을 낸다 어젯밤 길 잃은 달을 보았다 구름에 걸리고 넘어지고 구르다가 묻혀 버리고 만, 푸우푸 겨우 숨 쉬는 결이 숨어 파도로 나온다 물 때가 빠..

시 글 2022.10.06

선지국

*선지국 가난했던 끼니를 살아냄은 부쩍 자라나는 가족 먹성을 버티었다 마지막 피 한 방울 선지 신에게 바친 피의 제사였네 헌신이란 헝겊 조각은 내를 잘라 꿰매어 누굴 살려 내는 일 소머리 고기 꼬리곰탕 사골국 우족탕 갈비 내장탕 곱창구이 가죽 구두 마지막 선짓국을 받아 들고도 미각을 말하는, 헌혈 차량 빙 돌아 비켜 갔던 속내 그 이바지를 생각하면 송곳 해 지는 머리

시 글 202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