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321

긴장한 동네

ㅡㅡㅡ (구리에 가면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 있고 계곡을 오르면 큰바위얼굴이 있다 그는 이 계곡의 리장이자 터줏대감이다) 어느날 빨간 선고가 화면에 길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5인 이상 집회금지' 딸싹 못하는 일상으로 지쳐해 하는 무리를 파노라마 안경을 쓴 산동네는 저 아랫 세상을 현미경처럼 지켜보아 왔다 그물을 왜 씌웠지 주둥이 마다? 먹여 키운 생명을 집단 살육하는 탐욕의 입 정신 달라붙은 디지탈의 단세포적 폭력성, 환상 봄을 한짐 짊어지고 산 허리를 휘돌아 내림질하던 이방인 넷 눈 부릅뜬 곁으로 왔다 산 기슭 밭에 터를 세운 멧돼지 고라니 산새 그리고 계곡 산지 족장인 큰바위얼굴 행여, 낮선 문명 이질 바이러스로 감염 구역 선포 될까 산등성 파숫꾼의 울타리 꼭지점 마다 번갯불의 철퇴 달린 손검이 창처럼..

시 글 2021.03.10

빈 집

ㅡㅡㅡ 낮은 파도 소리 바다를 보고 싶어 키를 키운 뒷동산 소나무 사이에서 쏴아 쏴아 파도 소리를 내고 있다 대나무 숲에선 하루를 들판에서 보내다 모인 참새들 소리가 요란하다 닭들은 벌써 하루가 짐을 알고 닭장 안으로 하나씩 들어가고 닭장 안에선 좋은 자리 다툼으로 잠시 시끄럽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우물엔 종일 물 퍼내던 두레박이 목줄에 매달리어 우물 안쪽으로 걸려 있다 텃 밭엔 김장용으로 쓰고 남은 쪽파가 반 줄 정도 남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돌담으로 지어진 치간 벽에는 호미 두 자루가 흙이 묻은채 'ㄱ' 자를 알려는듯 걸려 있다 바로 옆 돼지 우리에는 100근은 거뜬해 보이는 시꺼먼 털 달린 놈이 옆으로 누워 코를 골고 있고 마을이 차츰 어두워 오기 시작하자 뒷 동산에서 놀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대나무..

시 글 2021.01.17

행주

어느 하루라도 마를 날 있었던가 하늘 맑은 공기 햇살 한 번 받아 보았던가 물에 젖어 비틀린 몸 종일 구정물 속을 헤엄치다 밤이 되서야 비눗물에 세수하고 힘들고 쳐진 몸 얼굴 한 번 펴 봅니다 펄펄 끓는 물에 몸 담궈 목욕하는 날 이 때다 하고 손주 같은 식기들을 윤이나게 닦아내었다 퐁퐁 물에 숨 콱콱막혀도 그릇만은 고슬하게 숨을 쉬게 했지 내 몸 먼저 깨끗해야 남을 닦아낼 수 있다는 믿음 평생 어찌 잊을 수 있었으랴

시 글 2020.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