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321

휘발성 메모리

찌가 움직였다 에너지를 가진 회사는 맛있게 먹이를 끼웠다 낚싯대가 텐트 조리대처럼 휘어질 때 교실은 술렁였고 세워지는 교문 중국집 천장에 요리가 노래에 불을 켰다 경찰서장이 나를 만나고 갔다고 이장이 말했다 채택된 증인은 두 분 집안도 깨끗하고 증인은 마을 유지라고, 일곱 마리 은어가 걸려든 한 줄엔 여름 틈새를 탄 소낙비 날으는 하늘 무지개였다 날들은 길들여진 탱탱한 시간 전류를 날개 속 세월로 무수히 흘려보냈지 낚싯줄이 뚝 끊어지던 서쪽 하늘 머물 수 없는 고공은 공포였지만 펴지는 자유의 날개도 잠시 이내 욕망의 하늘 스크램을 짜고 행선지를 찾기 시작했다 꿰었던 코 낚시를 풀어내 지구나 건져 볼까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표범이 먼저 걸려들었다 앙헬의 악마는 도망을 기어코 갔고 스페인 알함브라 궁을 아랍으..

시 글 2022.01.27

이제 알았다

ㅡㅡㅡ 하얀 달빛을 펑펑 담은 눈송이가 밤새 내렸다 토순이와 오빠가 눈사람을 만든다 데굴데굴 눈덩이가 탑을 올린다 ㅇㅁ,ㅇㅃ 마당 앞 눈사람 솔가지로 달 눈섭 달고 조약돌 눈 심고 계수나무 단추 열매 달고 코 입 호박 껍질로 새겼다 오빠가 사 온 반달 모자야 씌워드려 춥지 않게 응! 들려줄 얘기 하나 꺼낸다 달에서 살다 왔단다 우린 ㅇㅇ,ㅇㅃ는 달에서 주무시고 계서 할 수 없이 널 데리고 이사 왔지 이곳으로 ㅇㅁ,ㅇㅃ에게 달려간 토순이 엄마 젖 냄새가 났다 가슴에서 아빠 땀 냄새도 실컷 들이켰다 기도하자 오래 사시도록 함께 엄마, 아빠! 녹지 말고 건강히 오래 사세요 사랑해요 밤이면 몰래나가 달을 쳐다보는 뒷동산 오빠를 알게 되었다 토순이 꼭 쥔 두 손에 달빛 소원이 환하다 (그림은 천소희 작가님 것입니..

시 글 2022.01.24

허기진 중럭

ㅡㅡ 들고 다니는 것은 나인데 그가 무겁다고 한다 그래 바꿔치기를 한다 다른 너로 눈으로 먹은 만큼 더 무거웠졌다 한다 나이 어린 형님이 하는 이야기가 맞느냐고 했더니 '사람이 이제야 되었다고' 한다 점심은 제가 살게요 칭찬 값은 해야지요 지불은 벌써 보내왔다는 주인 아주머니 제스처가 옆구리를 눈으로 찌른다 울며 고하던 하늘이 파랗다 치던 땅의 울림이 싹을 틔울 봄을 창경궁에 살짝 던지고 간다 350 년 미리 고통하고 있는 세자의 세월을 삼키고 있는 한 구루 회화나무 갔던 길 돌아서서 지하철 몸 무게를 제어 본다 책 한 그릇 빼고 난 중력이 출발한 아침을 세어본다 오후가 먼저이고 아침이 나중인 나를 '이제야 사람이 되었다'는 옆구리 찔린 일곱 손위 동서 말에 긍정하는 오늘이다

시 글 2022.01.22

비어 있는 곳

ㅡㅡㅡ 설계도를 머리에 이고 있는 할아버지 집에는 해와 달이 살고 있었다 다리를 파고 가슴 빗장을 치고 하늘을 덮었다 등짐은 수직과 빗금을 바람으로 날랐고 가로 세로와 높이가 세 덩어리, 이불은 목까지 올라와 귀를 열었다 평방미터가 셋 앞마당과 상추 고추 파 심은 텃밭, 옆 울타리 사이 작은 꽃밭이 있다 빈 공간은 집안을 감싸 돌고 늘 햇빛과 달빛이 내려와 뜰을 놀다 갔다 외딴집엔 사람이 살고 있다고 짖어댈 멍멍이 한 마리 오동나무에 걸린 전화기 하나 방으로 오고 땅그랑 땅그랑 풍경 소리 내는 송아지 귀걸이에 새벽 따끈한 여물이 익었다 까치가 요란히 날개 치던 아침 날 마을버스가 찾아오기 시작하고 빈집에는 양털 걸친 세단이 오고 갔다 오밀조밀했던 가족은 떠났다 다 사라지고 떠나지 않은 해와 달이 살고 있..

시 글 2022.01.08

음악을 듣고

ㅡㅡㅡ 처음 만난 목소리이다 소리는 점점 나타나지고 단어는 필요 없었다 리듬과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가 커가고 녹차를 마시고 녹차를 생각하고 어느 바위돌 사이 2월의 벽안에 어렵게 들어온 빛을 삼킨 시린 잎 바구니에 밀려지는 나직한 소리 촉촉한 몸이면 살아나는 너의 푸른 생각 이어지는 불덩어리 마를수록 맑아 지는 목소리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봄을 빨아들이고 꽃으로 피어나다가 관 속을 내려오는 소리는 분명 비였다 2월에 없었던 색 2월에 없었던 소리 12월 끝은 봄을 끌어내었고 2월이 오기까지는 몇 곡이 남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단추를 눌렸다 언어가 마구 솟아난다

시 글 2021.12.26

늑대와 함께 춤을

ㅡㅡㅡ (음악을 듣고 쓴 글들입니다) 1) 가끔은 심연에서 끌어올린 한 모금의 눈물을 하늘을 캐어낸 영혼의 기도를 구르는 낙엽 속에 흐르는 물방울 알들에게 그 옛날 이야기처럼 고통을 슬픔을 사랑을 실 어내는 맑은 물결 소리 2) 강아지와 함께 음악을 들었다 나는 왼쪽 그는 오른쪽 귀에 레시버를 넣었다 발을 비벼대더니 이불을 긁었다 낑낑대더니 공명 높은 음성이 방을 째고 나간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야 너의 본성이 나오는구나 넌 늑대지? ''늑대와 함께 춤을'' ? 귀에서 끼윘던 레시버를 빼어 버렸다 숙제 생각이 나서 아침에 다시 guitar 를 들었다 늘멍이 왔다 왜 혼자서 말해? 레시버 하나를 어제밤처럼 나누었다 슬픈 편지 안에 글 알들이 여섯 가지에서 냄새가 떨어져 나가고 더 이상 오지 않는 종이 글이 ..

시 글 2021.12.19

비단의 안쪽

ㅡㅡㅡ 알은 따뜻하던가요 고슬고슬 한 할머니 여름 상자 위에서 잡히지 않는 껍질 속의 밤 달포를 보내고 다섯 잠의 추억 기억하시나요 지구를 감고 태양을 싸았던 하얀 고치 오월에 핀 꽃에게로 가시려고요 오른손에 당신이 들려 있습니다 늦으면 돌아가지 못할 나이테 물레가 자전하는 비단의 안쪽 노래를 부르고 싶으시다면 아니에요, 당신의 이름 부르는 쪽은요 바람으로 젖고 다닐 두 쪽씩 날개는 언제 펴시려 하나요 창공에 디딜 발, 땅 위를 건너뛸 발은 빈 가지입니다 자! 이젠 나오세요 비어 있는 무대 관객은 할머니 손 고치가 뜨거운 호수에 미끌어 지기 전 빠져나오세요 그리고 당신의 말 하세요 새로 태어난 이야기와 알로 돌아갈 당신 사이를

시 글 2021.12.16

수레바퀴

ㅡㅡㅡ 따뜻한 봄날 대나무 숲은 온화한 빛에 스렁거리고 심장은 고래 휘어진 등처럼 울렁였고 노트 위에 시는 몽블랑 만년필 끝을 물고 다녔다 가끔은 겨울 밤의 불꽃 축제와 하와이행 비행기가 생일 선물로 찾아왔다 대 보름의 시간이 하현달로 지워져 갔고 속 빈 창자가 꺾어진 목으로 튀어나온 벼랑 끝 언덕에 서면 후유 느린 오후 3시 수레바퀴에 묻은 지폐 두 장이 주먹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 앞에 나타났던 시커먼 공포와 세상과 떨어져 있는 고독은 종이 두 장 값의 무게 만큼이나 겨우 내려진 하루 새벽이 뒤져진 골목 끝 천정에 달린 별 하나 젖이 나오지 않고 느러진 젖에 매달린 손주에게 떼어줄 참새 용돈과 두부살 파먹을 배고픈 몇 끼의 맛 꺼진 도로를 끌고 가는 사각 블럭의 현기증 원시법 끌에 달린 좁아진 고갯길 ..

시 글 2021.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