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빈 집

마음의행로 2021. 1. 17. 18:59

ㅡㅡㅡ
낮은 파도 소리
바다를 보고 싶어 키를 키운
뒷동산 소나무 사이에서
쏴아 쏴아 파도 소리를 내고 있다
대나무 숲에선 하루를 들판에서 보내다
모인 참새들 소리가 요란하다
닭들은 벌써 하루가 짐을 알고
닭장 안으로 하나씩 들어가고
닭장 안에선 좋은 자리 다툼으로
잠시 시끄럽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우물엔 종일 물 퍼내던 두레박이 목줄에
매달리어 우물 안쪽으로 걸려 있다
텃 밭엔 김장용으로 쓰고 남은 쪽파가
반 줄 정도 남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돌담으로 지어진 치간 벽에는
호미 두 자루가 흙이 묻은채
'ㄱ' 자를 알려는듯 걸려 있다
바로 옆 돼지 우리에는
100근은 거뜬해 보이는 시꺼먼
털 달린 놈이 옆으로 누워 코를 골고 있고
마을이 차츰 어두워 오기 시작하자
뒷 동산에서 놀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대나무 숲에서 재잘대던 참새 소리와 함께
쓰윽 사라졌다
부엌에선 살강에서 김치와 무채 써는 소리,
아궁이 불은 발간 불이 푸르슴토록 살리며
검은 색갈의 큰 솥 바닥을 달구고
아궁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더니
굴뚝 냉갈(연기)이 되어 하얗게 나오고 있다
밤새 온돌 방 바닥을 뜨끈하게 익혀
아픈 히리를 녹여줄 참이다
된장으로 낸 시래기 국이 허기진
배에서 꼬르륵 나기까지 바글대고 있다
할머니 할마버지 아버지 형 남동생 셋
모 심으로 들에 나가면 어머니 짖을 먹이러
3km가 족히 넘는 들판 너머 배치골까지
업고 갔던 바로 밑 여동생이
숟가락을 먼저 만지고 있다
작은 상이 하나 들어오고 밥과 국과
배추김치에 갖 썰어 만든 고추기루 발라진
무채가 큰 사발에 들어가 있다
참기름으로 무친 멸치젖과 황새기 졸인
무 조림이 입맛 가득 채우게 할 것이다
큰 상 하나가 다시 부엌에서 들어 온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고 있다
아이야 어서 들어오너라
할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찾는다
아버님 먼저 드세요
그 사이 빨랫줄에 걸어 놓았던 옷들을
한 웅큼 안고 작은 방에 넣어 둔다
이슬 내리기 전에 거둬야 빨래가 고슬하다
방안은 소나무 긴 가지로 만들고
대나무 큰 줄기로 만든 시렁이
무거운 짐을 지고 방바닥 쪽으로 배를
내 놓고 천정벽에 걸쳐있다
13촉 짜리 전등이 방을 밝히고 있는데
초꼬지 불에 비하면 대낮처럼 밝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들어온 전깃불이다
밖에서 인기척이 나니 어머니께서
문을 열고 나선다
마동댁 저기 성기밭에 고구마를 캐야
하는데 내일. 일이 어쩐지?
품앗이로 서로 일을 돕고 사는 동네
지난 번 우리집 도와준 품을 갚아달라는
이야기를 약속하고 방으로 다시 들어 오신다
두 개의 밥상은 숟가락 젖가락 빈 그릇으로 가득하다
이제야 어머니는 숟가락을 드신다
무채 남은 그릇에 밥을 붓고 비벼서
후딱 먹고 부엌으로 나가신다
상과 그릇들이 하나씩 좁은 부엌문으로
쏟아져 나간다
그래도 온 가족 배를 채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오지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동쪽 작은 방으로
건너가시고
아버지는 화투를 꺼내
내일 운수 보기를 떼고 계신다
나와 형은 부엌 쪽 우리방으로 가려다가
보니 설걷이 감이 가득하다
염치가 없어 머뭇 거리니 어서 들어가
쉬어라 하신다
형이 우물에 가서 물통에 물을 퍼다가
서서 설걷이 하시는 어머니 겉에 놓는다
우리 아들 효자다 하시며 용기를 주신다
그 사이 아버지는 끓여 놓은 쇠죽을
한 바가지 꺼내어 소에게 주고 들어 오신다
그리고 무명으로 된 풀먹여 빳빳한
이불 호지에 쌓인 이불을 꺼내어 잠자리를
챙겨 놓으신다
그릇들이 서로 맞닿는 소리가 떨거덕
거리더니 마지막 물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거둬놓은 빨래를 다 펴서 개어 놓으신다
어머니께서 빨래 개어 놓은걸 보면
다리미질 한 것 처럼 예쁘고 가지런 하다
부엌 땅 바닥을 빗자루로 쓸어 땔감과 아궁이 사이를 깔끔하게 해 놓으시고
긴 하루의 한숨을 내쉬고 우물가에 가서
얼굴 씻고 발씻고 흙 묻은 고무 신발을
물로 문질러 씻어
토방 밑에 엎어 놓고 이제야 자리로
들어 서신다
긴 인생을 살고 나온 것처럼 하룻날이
머리에 어질어질 한다
어머니를 편하게 해주는 것은
두툼한 솜이불 밖에 없다
어머니는 벌써 깊이 깊이 잠에 빠져 드신다
내일 풍산댁 고구마 밭 일을 가는 꿈을
꾸시면서,
그런 큰 집이 텅하게 비어 있다
다 어디로 가셨을까?
누구보다 어머니 그 설움의 눈물이 가득한
시골 빈 집이 마져 푹삭 내려 앉고 만다
어디로 발을 옮겨야 할지
집을 뒤돌아서는데 머리 뒤에 집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한다
천아.. 날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에
골이 뒤로 쏠렸다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가만히 뒤돌아 본다
어머님이 환히 웃고 계신다
어이가 어이가거라
저만치서 손등으로 밀어내신다
아아
'내가 살아온 세상은 세상도 아니었어'
'내가 사는 것은 사는 것도 아니었어'
비워져버린 세상을 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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