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321

눈썹만 깜박여도

도서관에서 예약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다잠깐 망설이다 자리 이야기를 한다아 벌써 시간이...연장을 잊었네요 그러셨군요그대로 사용하세요 제가 다른 곳으로 바꿔 자리를 잡을게요그분은 미래를 갔다 쓰고 있었다아무렇지 않게(억지로는 못하는 일부러도 못하는)새벽에 꿈을 꾸었다 어제의 해가 떠 있었다일어날 시간까지 하루를 충분히 자고 일어났다과거의 시간을 쓰고 있었다(억지로는 못하는 일부러도 못하는)발만 떼어도 눈썹만 깜박여도 초의 어제과거이거나 미래이거나 현재는 없다살아있다는 게 죽음을 야적장처럼 쌓아가고 있는 것한 번에 치워질 언젠가

시 글 2025.01.04

퍼즐을 꿰다

한 입 나를 가지고 간다그랬다 늘브럭 같기도 하고 퍼즐 같기도 나는 깨어졌다 다시 모이곤 한다나를 가지고 오는 친구들모이면 그때야 꿰어진 내가 된다작품이 된다만나서 뭐할까 해도만나야 내 한 세상을 이뤄주는 친구들나를 가지고 오는친구들에게나도 친구들 한 웅큼씩 들고 가리라친구의 한 줌이 내가 되고 내 한 줌이 친구가 되는 석촌 호수가 되는 점심이다

시 글 2024.12.14

목 부은 컵

공원은 시간을 버는 사람들장군 멍군 두 쪽세력과 집 짓기가 공간을 넓히고 있었다셈 없는 게임은 없어서 하루를 벌어간다아주머니시간 좀 더 넣어 주세요이상하지 않는 이상함이고개를 위아래로 문제란 늘 사람에게 있는 법이라고 철칙 같은오늘은 왜 쓰지 맛이 그녀는 알듯 모를 듯이상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으로스무고개가 턱살을 뺀 일주일호주머니가 비었나 데이트를 말하나시간을 넣는 일이란주머니에 영화관을 집어넣거나번호표가 카페를 쥐는 일아궁이에 불을 더 지피라는 거야한 세월을 벌렸다가머리가 다 빠졌다는 자판기 아주머니귀가 모자라 귓밥을 파는데 내과를 헤매었다나글 쓰세요읽는 게 적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내 영감한테지금은 이 자판기 하나보다 못해요, 셈 잘하는시간 더 넣어 드렸으니 시간 벌어 가세요종이컵 목이 한 모금 ..

시 글 2024.12.01

어제, 현재

걸린 풍경이 가난하다고 생각했어요 펄럭일 때면 바람이 일고 바람이 일면 흔들리는 베에서 살이 빠져나갑니다 손이 빨면 손이 빨리는 가난한 넌 손으로 주물러요 햇빛에 원색이 돌아옵니다(아기 기저귀) 한꺼번에 몰아넣은 부(富) 누나와 동생이 번갈아 입어요 성도 색깔도 분별이 약해져요 중성이 되어갑니다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한ㆍ통ㆍ속 흰색도 검은색도 회색화 되어 가고 건조는 자동 빨랫줄 놀이가 삭제되어 춤사위는 사라질 수 있어요(핸드폰 사용 시간입니다)

시 글 2024.11.19

시간의 체위

누가 망설이게 했나 가는 길에 수북한 그림자 속 나뭇잎이었거나 돌밑 숨을 쉬었을 겨울나기 축축하게 고실로 바뀐 벌거벗은 동물은 계절의 체위를 믿었는지 9월 같은 11월에 상강을 입고 입동에 말라버린 체위 널 놓아버렸네 낭패는 허용, 실패의 언어마저 없는 생태계 누군가의 한 끼 감으로 내 던져준 연체 하나 그 순서의 순환에 밀어 넣어 본다 시각을

시 글 2024.11.12

통명전 홍시

곶감이 되기 싫으면 일찍이 나를 하늘에 두어 차고 붉기를 죽어도 또 살겠다고 하늘에 가지를 심었을 텐데 똑 떨어지게 아린 건 순전히 가을이기 때문 까치밥이라 하지만 까치도 하늘에 올린 제사상은 기웃거리지 않는다는군 오늘밤 서리라도 온다면 생각해 보았니 맑은 하얀색 속 뽀얀 붉은 색조 예뻐 말도 붙이지 못한 여학생 하늘은 한 가지 배경을 꼭 보태더라니까 그 여학생 가장 먼저 할머니 되었더군 일찍 여물면 나중이 가까워지나 창경궁 통명전 뒤뜰에 서면 장희빈이 떠오르지 저 감처럼 고상했더라면 곶감보다 홍시가 되었었을 텐데 통명전이 길었을 텐데

시 글 2024.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