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321

어떤 생

ㅡㅡㅡ 한 사내가 말뚝을 하늘에 박고 있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가면 공원은 점점 꼬리를 길게 달고 어둠이 삼켜 간다 말뚝 끝쪽에 낮을 지워가는 호롱불이 달려 있다 쥔장 여기 생맥주 오백 하나 더 술은 밤을, 안주는 새벽을 늘려가고 있다 이 손님은 밤을 길게 끌고 갈 모양이다 가게 안은 작은 해가 벽에 셋 걸려 있다 이 쪽은 저쪽을 저쪽은 이 쪽의 밤을 연구하고 있다 주인의 밤은 오늘도 길 모양이다 손님 한 순배가 떠나고 지금은 밤의 정오 시계침이 합해있다 주인은 길어질 달등을 단다 밤이 배속에 깊이 들어 왔을 땐 몸은 어둠 속으로 해체되려 한다 하루의 밤과 새벽이 한 없이 싸워야 겨우 한 가족이 있다 달은 새벽이 돼서야 하루를 내리고 셔터 문이 내려진다 지독한 생이다

시 글 2021.06.12

콩나물

ㅡㅡㅡ 땅 바닥이 책상이었던 시절 가마니 한 장 위에 책을 폈습니다 교실로 가득한 아이들 새로운 친구들 배울것들 궁금한게 가득합니다 눈 귀가 처음 열리기 시작할 때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애들에게 물을 내리고 어둠을 덮습니다 물만 먹여도 잘 자란다는 믿음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어께 동무들은 윤기나게 눈을 뜨고 종종다리를 일으켜 키를 재어 봅니다 리라 초등학교 노란 옷을 입은 학생들, 같은 키로 쑤욱 쑤욱 자라납니다 노래와 동화와 1234 놀이는 재미도 꿈도 신명이 났고 울타리 밖을 꽃발로 기웃할 반달이 나오는 시간 쯤 세상에 없는 노란 자작나무 숲으로 커 항아리 학교 담을 넘어볼까 쉿 조용히 콩나물 잠 깰라 미지근한 물 네 번 정도 내려 주면 머리와 허리를 서로 비비며 기대고 폭포수에 심신을 길러 ..

시 글 2021.06.10

모기

ㅡㅡㅡ 초 여름날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겼다 도시 참새처럼 사람을 무서워도 않는다 허락도, 묻지도 않는다 말라빠진 빈 의자 팔에 소리없이 앉는다 빨대를 가지고 오더니 장대 높이뛰기를 시도한다 장대가 훠더니 높이 솟는다 그 끝은 땀구멍처럼 오목한 땅에 박힌다 선수는 하늘 높이 올라가 강도처럼 매달렸다 내려올 줄을 모른다 죽었나 이탈리아 스트놈볼리 화산이 터졌다 붉은 용암이 빨대속으로 솟구쳐 오른다 식은줄 알았던 지구 저 밑 심장은 아직도 뜨거운가 보다 이 놈아 헌혈을 하려 해도 내 것은 피도 아니라고 빠꾸 맞은 놈이다 다른데 가서 알아 볼 일이지, 허긴 가난해도 도둑 맞을건 있다고 문 단속 안한 내 잘못이다 할아버지는 모기 날개를 조심히 잡고 빨대를 뽑더니 붉은 용암을 쭉 빨아 먹고,~ 모기를 가난한 하늘로..

시 글 2021.05.22

사시나무 춤

ㅡㅡㅡ 중매쟁이 벌 나비가 사라지고 불임의 시절이 오래가더니 벚꽃들은 무수한 정자들을 서로 뿜어 내었다 정자들은 자궁을 찾기 위해 기고 뛰고 둥글고 날고 아우성을 쳤다 계곡은 그들의 헤메는 몸부림으로 황사처럼 뿌연해졌다 대 부분 스스로 신부집을 찾는데는 실패하고 오지 못 할 먼 곳으로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바람은 늘 불었고 새로운 매개자가 되었으나 나침판 없는 방향에 폭포 아래로 떨어지거나 화산처럼 하늘로 멀리 솟구쳐 뿌려졌다 벌 나비를 잃은 벚꽃동네는 수심이 가득했다 마을 회의를 열었다 아이 없는 벚꽃 마을이 지속되면 모두 망할거라며 대책을 강구하자고 했다 자 자 벌과 나비들이 찾아와 우리 짝을 맺어 주던 때는 벌써 물건너 갔소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 짝을 맺거나 바람에 의지해서 자식을 가지려니 우연에 맡..

시 글 2021.05.16

칠 현

ㅡㅡㅡ 깊고 긴 빛이 창으로 들어왔다 명주실보다 가볍고 가지련하게, 태양을 떠날 때는 이글거리는 불덩어리었으리라 빈 허공을 찌르듯 파고든 긴 여행 이 집 주인은 그 빛을 응시하고 있다 빛은 먼 길에서도 전혀 지치거나 고생을 실어나르지 않았다 일곱 색 무지개 현은 숨겨져 있었다 우주를 통과 땐 별들이 현을 튕겨 '텔스타' 음악을 싣고 왔고 기분이 좋을 때는 장구의 박자를 단 음표가 현속에서 놀았다 차분 할 땐 바이어린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가 서글플 땐 거문고 깊은 내면의 소리가 퉁겨 나왔다 디이잉 딩 트우웅 텅 작은 먼지들이 현을 튕길 때마다 별빛 같은 푸른 소리를 울었다 여름날 콩밭 이랑 사이에 콩 익히는 소리와 빨랫줄에 걸린 빨래 창자의 수분을 증발시키는 모락 거리는 소리 싸달한 봄의 현에는 보..

시 글 2021.05.11

남사는게 쉬워보여

ㅡㅡㅡ 늘 낭떨어지였었습니다 등걸텅에 매달려 바둥거렸었고 마른 장다리는 현미경 쓰고 동굴 바닥을 핱았습니다 태양 줄에 묶인 두레박은 노아를 다 퍼낸 사막 갈증 손바닥 차력으로 뺨을 떼려 기어이 오른 벽 그 분 몸에 붙어 눈물 기도로 살았다네요 광야 같은 들판을 나그네 처럼 버티면서도 해와 달 별 친구가 있었고 구름과 바람 이슬 같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지금 절벽 날에 서 있는 저를 보고 힘들겠다 하는 이 없고 저리 사는게 사는것 같은 멋진 삶이라 한다네요 남사는게 그리도 쉬워 보이는가 봅니다 찰떡 바람이 귀를 열어 말을 끼워주네요 바위 같은, 믿음의 후예로 살아가라고요

시 글 2021.05.02

꿀의 마라톤

ㅡㅡㅡ 바람이 봄을 풀어 놓은 운동장에 심판이 줄을 주욱 펴 그린다 물 오른 장기 한 마리가 훼를 치는데 꿔공 꿩 출발을 알린다 닷세 피는 목련, 십여일 피는 진달래,벚꽃 보름 피는 개나리 동시에 뛰기 시작한다 단연코 일등은 꽃 잎사귀 큰 목련이었다 숨이 짧은 도착 순이다 회의를 가졌던 꿀벌들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짧게 피는 꽃부터 먼저 공격하기로, 트럭에 벌집을 삼중 사중으로 올렸다 아내는 봄 기운으로 늘어진 몸을 조수석에 내려 놓는다 벌통이 경기에서 제주까지 가려면 목포에서 배잠을 자고 가야했다 꿀벌은 한라의 기를 온몸으로 받았다 오목한 꽃록담에서 꿀을 빨대짓 할 참이다 한해의 채꿀 시작은 제주 유채꽃에서 벚꽃 아카시아꽃 밤꽃 순, 벌꿀 마라톤은 남쪽에서 시작해서 휴전선에서 끝이난다 50여년 동안 ..

시 글 202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