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321

거꾸러 자전하는 금성

♡♡♡ 밤의 시간이 줄을 지어 앞차 불빛을 마시고 어둠의 신비를 부풀리고자 나무 가지들 몸의 중심에 어둠을 가두려 검은 그림자를 몸에 바릅니다 밤으로 가는 숲은 새들의 울음을 삼켜 소리 없는 소리 동산을 품고서, 삼거리에 선 나는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망설이는데 건너면 새 세상 있을 것 같은 다리 건넌 길로 가서 호수를 빠져나가려 합니다 벌써 알 품은 탯줄 낳는 개구리 엉치뼈 소리와 주차장 차들 식당 간 주인을 기다리며 뛰지 않는 심장을 점검합니다 숲은 벌써 밤새울 작정인 듯 가지 사이사이에 불빛 촛대를 끼워 두고 느티나무는 연초록 빗방울을 튕겨 뿌리는데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은 우산이 없습니다 코로나도 손을 씻고 화장실은 불빛 마스크를 쓴 체 한쪽에 비켜 선 품새 바람의 방향을 볼 줄 알아 양지를 아는 개..

시 글 2022.04.16

나무의 말

♡♡♡ 하루 세 끼 밥 해 먹기도 질리다 했다 토해 낼 듯 한 일상 파도는 놀면서 치는지 치면서 노는지 노랫소리만 가득합니다 당신의 뿌리를 하늘에서 거두어 낸다면 365일 차려진 땅의 양식을, 한 입으로 말하지 밥 먹지 토하지 간 보지 욕하고 시기가 가득한, 나뭇잎 두 마디면 족합니다 밥 먹기 말하기 말이 가득하면 이쑤시개로 오징어 머리를 몇 마리 꿰어 걸어 둘 여유 뿌리를 땅에 두세요 날개가 되어 날 당신의 의지가 보일 겁니다

시 글 2022.04.13

이른 봄

ㅡㅡㅡ 새벽이 되고서 귀뚜라미 한 마리가 뜨르뜨르 뜨르뜨르 핸드폰 가느다란 시 낭송 안에 고향 우물가 바람 잘날 없는 감나무 하나 여덟 개 항아리를 두고 뚜껑을 하나씩 열고 하나씩 열고 닦습니다 멀리 장가보낸 둘째부터 둘째부터 난 네 형보다 안쓰럽다 감나무를 한 바퀴 바람이 돌다 갑니다 항아리 속에 아직 남아 있는 달이 뜨르뜨르 뜨르뜨르 어느새 정안수 그릇이 제일 작은 뚜껑에 하얀 박꽃을 피웁니다 마지막까지 네가 살 날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살아 있을 네다 네란다 아직 흙밭에 싹이 나지도 않는 봄에 귀뚜라미가 귀뚜라미가 핸드폰에서 목을 내밀어 봅니다 바람을 묶습니다 감나무 가지에 달이 지려 하면 달 밭에 들녘이 흰 수건을 쓰려하면 고무신 뒤꿈치를 우물물 두레박을 지키듯이 결코 귀뚜라미가 귀뚜라미가 ..

시 글 2022.04.12

파동

♡♡♡ 소리없는 빛은 고요합니다 빛의 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색일까 소리일까 빛일까 기도의 주머니가 꼭 쥐어질 때마다 당신은 큰 눈으로 바람을 끌어 안고 새벽 날개를 준비하는 처음이 처음을 움직일 때 원의 곡예는 알까 모를까한 파도가 밀려들고 퍼지기를 중심에서 밖으로 밖에서 중심으로 커졌다가 약해졌다 커졌다 약해 집니다 점점 원주율이 계산도 없는 답을 누운 스프링처럼 그려냅니다 초저녁 고프지 않는 배꼽이 상위에 내려앉으면 연꽃 상좌들이 둘러 앉아 작은 기쁨 한 숟가락 허공을 지나가고 거미줄 떨림 같은 떨림은 헤아려지지 않는 공간을 긋고 숨 막힌 귓속을 들어왔다 빠져나갈 때 발견한 무의미한 화두를 잡고선 평생 그 앞에 무릎을 꿇었겠지요 태를 돌고 돌아 나온 바람은 울었습니다 디이잉 어웅어웅어웅어웅 ..

시 글 2022.04.10

쑥버무리(시작되지 않는 봄)

♡♡♡ 쑥 캐내시는 아주머니 머리에 올라앉은 쑥버무리 한 양푼 언덕배기 병아리 무리 지어 내려오는 리라초등학교 어린이 개나리꽃 벚꽃 가지 꽃발 서서 잡고 사진 찍는 할머님 애교가 사랑스러우시다 바람사이 길게 늘어진 할아버님 수염 쓰다듬는 수양버들 가지 이쯤 다리 넷 땅바닥에 심은 새침한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고 나니 하늘에서 땅바닥까지 내려온 파란 별 아기꽃들이 빛 뿌린 초밭에는 생명력 우수상 받고 환히 웃는 노란 민들레꽃 가부좌 틀었고 빨갛게 곪아 올라온 꽃몽우리 명자나무 건너편 골짝에 연지곤지 분홍빛 아가씨 속내 건드는 진달래꽃이 살살레 살살레 분주히 서로 빗금 짓고 달리는 싸이클링 아저씨의 해골바가지 꽃 뿌린 쌀가루에 하얗게 핀 조팝나무 꽃 하지만 이 꽃 저 꽃 돌아다니며 침을 꽂는 움찔움찔 벌 궁..

시 글 2022.04.07

영혼의 무게

ㅡㅡㅡ 밥을 짓는다 하루 세 끼의 밥 하얀 사기그릇에 밥을 푼다 왜 푼다고 하나 담는다고 하지 왜 쌀을 산다고 하지 팔러 간다고 하였을까 하루 세 끼의 식사는 누가 정했나 나무에게 물어볼거나 편하게 약 한 알 먹으면 족한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밥그릇에서 김이 위로 솔솔 빠져나간다 얘야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어젯밤 골목에서 동산으로 빨간 혼불 꼬리 하나 빠져나갔다고 할아버님이 아침에 말씀하셨다 옆 집 사시던 할머님이 돌아가셨다 영혼의 무게가 있다는 말에 고개가 살짝 기운다 밥에도 영혼이 있을까 얘야 영혼이 나가기 전에 어서 먹어라 귀가 운다 영혼도 운다 영혼에는 꼬리가 있어서 꼬리가 다 빠져나가기 전에 꼬리를 잡아야 한다 흔들어야 한다 15 년이면 16425 영혼을 써 나간다 쉬지 않고 즐겁기도..

시 글 2022.03.25

멍엉 짖었습니다

ㅡㅡㅡ 너에게서 나는 향이 빛깔이 어디로서부터 오는가를 너의 날개를 나비로 보내고 어느 다람쥐 밥을 덮어 주고도 홀로 긴 겨울을 떨고 살았던 때가 되면 그곳에 가면 네가 있다고 편하게 아주 편하게 그리고 예쁘다 냄새 좋다 했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너의 이파리 눈썹을 꺼내고 눈망울을 달고 온전히 세상에 널 맨몸으로 맑게 내 비춰도 어두운 개는 그렇구나 멍멍 짖었습니다 벤츠도 아니고 포르셰도 아니고 너는 매화인 것을 오늘까지도 그냥 매화라 불렀습니다 허공에 외롭게 날고 있는 너를 내 카메라를 깊이 넣었을 때 매화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땅에서 솟은 듯 하늘에 있고 하늘에 있는 듯 뿌리를 생각하는 너의 고독이 많이 섧어 당신 눈 안에 물멍 하나를 떨어뜨립니다 잡을 수도 없겠지만 진다..

시 글 2022.03.23

떠는 네가 서글픈 거 있지

ㅡㅡㅡ 초등학교 소풍 가서 만난 절간 앞에 핀 흰 목련 대웅전 코끝 향 피운 내음 맡으며 석탑 옆에 서서 손 모았답니다 흰 고무신 신은 스님 걸어가 시 듯 가지를 걸어 걸어 차례로 올라가면 흰구름 몽실몽실 흔들거렸어 콧병에 좋다고 입 다문 너를 따다가 데려 주신 할머니는 피어 있는 너보다 어린 시절 널 좋아하셨어 좀 섭섭했겠지만 가끔 석탑이 외로울 때는 너의 두 손 모은 손 끝에 살짝 마음 언더라 그땐 아이여서 뭘 잘 몰랐었는데 대웅전 앞 석탑과 석등 사이 너를 보는 게 할머니 보는 것만큼 고왔어 소풍이 끝나면 너를 한 번 돌아보고 안녕 내년에 보자 손 흔들 때 떠는 네가 속상했어 (이미지는 크롬에 가져옴)

시 글 20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