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321

아가야

늦은 오후 어두운 돌 한 마리씩 안고 나온 애착들 민이야 네 친구 석이야 아이들은 벌써 7명으로 늘어나고 동네 운동장은 석양 햇살 받이 언덕 잔디밭 저마다 해산의 아픔 한 가닥씩 목줄처럼 내놓고는 거두고 간다 목련은 꽃만 피고 꽃만 피고 씨 없는 수박 우장춘은 종자를 말려도 박사라는데 신안산 70 만원 짜리 민어만 드시고 가신 할아버님 손자 목말라 우물가에 차려진 젯상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른 짠물은 간척지 서해 어느 섬에서 시작된 유래 3대 독자 집안 어두운 골목 끝자락에 선 석이네 자기야 석이면 됐지? 어느 거지가 초가집 불난 걸 보고 우리는 집이 없어 행복하다고 꺼내려다 꾹 참은 목구멍에 밤새 초가집이 들락거려 눈이 뻥했다 시집 안 간 누구는 한 번에 들어서 어르신들 복덩이 들어왔다고 왕 대접 밥상 ..

시 글 2022.07.31

빛과 소리 게임

둥근 빛은 소리를 찼다 소리는 빛을 찼다 어쩌면 빛은 소리의 꼬리를 쫓아다녔고 소리는 빛의 꼬리를 쫓아다녔다 빛은 빛을 소리는 소리를 찰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찰 수 없는 것처럼 빛이 차면 반드시 소리 차례가 되어야 하고 소리가 차면 반드시 빛의 순서가 되어야 했습니다 빛이 주저앉거나 소리가 그러하면 게임은 끝이 납니다 소리와 빛의 놀이이기에 어둠은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편합니다 집중력은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는가 봅니다 빛의 속도나 소리의 속도가 같은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경험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더 훌륭한 경험은 바로 소리와 빛은 하나라는 점입니다 공상과학에서도 나올 수 없는 초 우주적인 신비한 세계 아인슈타인도 풀 수 없는 게임입니다 어디선가 본 경험이 있을만한 게임이지요 속도를 줄인 빛은..

시 글 2022.07.20

날개는 걱정할 내일이 없다

핸드폰 캘린더에 내일이 오늘이 된 일을 적는다 어깨걸이 쌀 몇 줌 가방에 넣어 두기 고양이 느린 걸음으로 들어가는 오후 이쯤 나는 그림자가 되어 준 나무 아래 배고픈 예배의 긴 의자에 앉는다 한 줌 쌀 입 다물었던 연꽃봉에 시주할 때 손가락은 나무 가지가 되어 네 발의 망설임을 끌어들인다 두려움은 손에 잡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때문이려나 한나절을 나는 새는 배가 이때쯤 고프다 배고픔이 믿음보다 앞선가 모이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혀 굳어지는 신앙 벌써 순환을 알아차린, 나의 날개들은 가지 사이를 예배 시간으로 알고 왕래한다 연꽃잎은 저녁 예불을 봉안하고서 손가락을 믿는 기도는 아예 둥지를 틀 셈이다 어디서 배웠는지 가부좌보다 깊은 불심 믿음은 배고픔에서 나오는 줄을 오늘 나는 너에게서 읽어낸다 내일은 더 ..

시 글 2022.07.05

집중 호우를 마다치 않고

비나 실컷 세상 젖어줬으면 저녁나절 집중 호우를 마다치 않고 큰 우산 문태준 시인이랑 연필 하나 나 하나 우산 비 의자에 앉아 비 펼쳐 든 공원은 우산 들고 걷고 비닐 옷은 자전거를 사랑해 바퀴를 돌리며 갑니다 개망초 꽃대 비처럼 서서 하늘저쪽 검고 눅눅한 예보를 더 낮게 불러모으고 자기 살 길을 찾는 빗물이 골을 내어 성내천 한쪽을 이어가려 하는데 롯데 웰드몰 구름 속 신선 되어 123층 나비가 됩니다 공원 쪽을 바라보던 아파트 뒤 돌아보다 소금 기둥 갸우뚱 잠깐 빗줄 틈을 낸 고양이 어디로 가시는지 공원의 비를 마냥 마냥 검은 속치마 숲은 마지막 매미 허리를 쓸어내 유치각 유치각 쓰르르 밤으로 숨어가고 우산 큰 문태준 시인이랑 연필 하나 나 하나 불빛 몇 줄 페이지에 삽입하니 공원 의자 네 발이 엉덩..

시 글 2022.07.03

여기 한 호흡이

여기 한 호흡 있었네 진달래 동산에서 쉬었던 숨 거친 들판에서 모았던 숨 커렁커렁한 자동차 목구멍을 토하던 숨 숨이 있었네 바다를 칼로 가르고 하늘을 톱으로 쓸어낸 네모난 집을 살기 위한 숨이 있었네 광야는 강을 건넜고 에덴은 도망을 갔네 가벼운 짐짝 하나 되지 않으려 세상을 다 들이킨 몸무게 비워내는 마지막 내쉰 숨 두려우셨을까 아까우셨을까 황야를 내 지르던 기압 몰래 숨에 넘겨 주고 색 하나 빛 한톨 남기지 않는 우주가 조용히 이곳에 모였네 당신을 신으로 모시러 몸이 없다는 신을 해와 달 별들이 모두 옷을 벗어 던지고 새 별 맞으러 왔네 남은 자식 둘 거리가 너무 먼 두 손 모은 뜻 별처럼 멀어 한 숨이 떨었던 그 강을 헤아리기나 할까 바람이 일고 불이 살라지고 영혼이 저 골목 사이를 지나고 있네 여..

시 글 2022.06.30

양철지붕

어릴 적 동산 아래 양철지붕 예배당 불붙듯 뜨거운 살갗, 한 여름 비가 오면 세숫대야를 놓았다 붉은 눈물이 또옥똑 떨어지는 곳에 갈참나무 큰 이파리 키가 높은 상수리나무 낮게 기어 다니는 칡덩굴 유치각 유치각 유치각 매미가 첫여름 터트린 느티나무 봄 먼저 알렸던 버드나무, 바튼 기침들 밑에서 자란 어린 풀잎에 파란 눈물이 토도독 토도독 푸른 구멍 난 양철지붕을 보았다 소나기가 지나가면 더 크게 투두둑 투두둑 동그라미 호수 옆 나라 기도 먼저 들으셨음일까 이제야 찾아오신 귀한 손님 양철지붕 꿇은 무릎 마른 쥐가 낱낱히 풀린다

시 글 2022.06.29

물구나무

늘 가는 길 가는 시간에 받침대로 세워진 나무가 걸어요 마주쳐요 기다려 줘요 멈춰서 지나가길 손으로 걷는 다리가 있어요 그는 물구나무를 서요 발로 우주를 그리더라고요 끝내 별을 땄데요 글씨가 비뚤비뚤해요 나 말이에요 지팡이랑 전동카가 없어선 가요 눈도 다리가 멀쩡한데도요 어둠 세월 지나가긴 아직 멀었나 봅니다 그분들만큼 가득 찬 생을 본 적 없어요 늘 가는 대낮인데 늘 가는 길인데

시 글 2022.06.26

흔들릴 때가 좋아요

혼자서 잠수를 탔어요 큰 배는 선장 맘대로 큰 대자 놀음 바다는 흔들리는 미역을 좋아해요 뿌리가 있잖아요 현관문이 환히 열리네요 주변 나뭇잎에 생기가 돌아요 신발은 언제나 깊숙한 곳에 두지요 아내라는 이름 붙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더 멋진 이름 부탁드릴게요 연락 주세요 또 문이 열립니다 주변을 살피네요 바닷물이 밀려오네요 늘 그녀의 발은 오른쪽에 놔두고 오죠 장녀가 가끔은 무겁다고 해요 모신다고 하니 활동 사진인지 상영 중인지 구별이 안 가요 마지막 문이 열립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옵니다 소리도 빛도 없어요 살금살금은 호화로운 표현이에요 모시옷 숨을 쉬나 봅니다 두째는 속으로 용감한가 봅니다 선장은 혼자 누굴 보고 흔들릴 때가 좋았었어요 갈대처럼 뿌리根가 튼튼했거든요 오늘은 흔들리다가 잠수만..

시 글 2022.06.26

오후의 바람들

굽은 길을 길게 도는 공원 오후의 바람들이 도시락에 세상살이 담고 와서 뚜껑처럼 가볍게 잔디 위로 비워 내고 심심한 바람은 호수의 수평을 잘게 쪼개 물 비늘로 춤을 추자 합니다 갈대는 왜 속이 비어 있는지 호수 물을 말아올려 가지 끝 잠자리 마른 목을 축이는데 혼자 동굴을 짓고 사는 중년 하나 이곳저곳 전화로 빈 허파 속을 메꾸려 '빨리 와' 재촉하는 입이 마르는지 오후를 계속 들이킨다 제법 느리게 뿌리는 빛살 나무 가지가지로 모자이크 한 하늘 한쪽에 숨은 수비둘기 한 마리 저녁 식사를 알리는 구구 구국 구구 구국 매달린 공원의 피아노는 종일 음악회 피로로 배고픈 허리를 가늘게 지압해 가며 서쪽 하늘 능선을 등진 나뭇잎들이 서서히 그림자 긴 어둠을 배꼽 아래로 내려 앉히기 시작합니다 집으로 가고 싶어 지..

시 글 2022.06.22

안개 시집

안개 시집 여자를 끌고 가는 강아지 손목 줄을 매어달고 꼴랑꼴랑 앞서 간다 소변보고 싶으면 전봇대가 재미있어한다 꼬리로 오후를 지우며 저녁으로 가고 목줄 같은 시달림에 그녀는 하루가 배 고프다 까치 주둥이를 잔디밭이 사정없이 쪼아댄다 저물어 가는 해가 찢기고 창자가 터지도록 아픈 쪽은 주둥이가 있다 느티나무가 공원 의자에 한 숨을 몰아 그림자처럼 눕는다 아픈 등과 알밴 종아리를 분리한다 침대가 서서히 바뀐다 깨알 같은 눈들이 나를 보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르르 정열을 하고 나를 사열한다 붓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제목을 써 놓고 주석을 살핀다 3 년은 지나야 짖는다는 개의 혀를 볼 수 있으려나 숲이 째재짹짹 소리 영역을 둥글게 펴면 바람을 나르던 새소리가 가지로 앉는 공원 땅이 석양을 낮게 내놓을 때 안..

시 글 202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