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하얀 구름이 담겨 나온다 진흙보다 연한 줄다림은 눈 산이 입에 녹기 전까지는 아슬한 견딤이다 두 개의 시간이 가볍게 카페의 문을 열고 나온다 사거리들 사이로 둘은 어깨 거리로 걷고 있다 입장권이 관객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팝콘에 드나드는 손은 담을 넘어 어깨 위다 남은 거리는 바람의 문답으로 채워져 가고 벌써 시발은 기댄 삼각 실루엣이다 시 글 2023.10.03
누가 키웠을까 허리를 잘라 순을 꽂으면 숲이 되는 골은 한 여름이 바쁘다 고구마 줄기 여린 밑을 어린 손이 타기도 하는 오후 방학 이어서일까 계절도 아직 비리다 지진을 감지한 둑은 해산을 준비하고 아이들 갈무리에 가을이 노곤하다 군 고구마가 맛있는 것은 아이는 내 아이인데 뻐꾸기 집에서 키워내서일까 햇빛을 녹여 보내 준 탯줄을 자를 때이다 꼭지가 그리운 너는, 세상에 없었던 너를 태어나 살게 한 고마움 때문 올 추위 구워내 줄, 가마 속에 들어갈 고구마가 미리 발갛게 익고 있다 줄기 하나 심었는데 시 글 2023.09.27
소리를 가져간 가지 어제 나는 소리 한 마리를 체포해 투신하는 상수리의 정수리를 보았습니다 나뭇잎 동굴 속을 기어 들가 숨는 것도 보았지요 내년 봄 새싹은 그 음을 틔울 것이고 7 년 쯤 후 어느 여름 날 매미에게 목소리를 되 돌려 주리라, 가지에서 오직 몸을 떨 뿐인 시 글 2023.09.14
어찌 시리지 오후 햇살이 느리게 휘어 눕는다 잠깐 지나가던 소풍이 쉬었다 가잖다 도시락을 싸왔는지 쉬파리 하나 쫓긴다 커다란 상수리나무 여름의 시간을 반납하려 둥글게 말은 빛주머니를 뚝뚝 떨군다 가을이 숲을 삭혀 가듯 아린 생각 하나 눈망울 뚝뚝 떨구며 팔려간 외양간 하나 얼비친다 그래 오늘은 약수에 비친 가을 한 잎 떠가자꾸나 시 글 2023.09.12
짜깁기한 몽타주 땅이 하늘이 웅얼거렸다 에덴이 떨렸을 때 아담은 풍선 구멍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뿌리는 끈질긴 촉수로 땅에 붙임성을 파고든다 어디서 생겨났는지 근육질은 향과 열매로 가족을 낯선 고을에 아뢰었다 '나하고 농사짓자'는 밥상 언저리에 아린 토 하나 애먼 숟가락으로 찔림을 당한 아침 상 허허 뒤꼭지에 보여 준 하얀 웃음 한 뼘은 진학을 묘사한 어머니의 눈치를 알아 챈 남자가 취할 헤아림 뿐이었을까 숟가락 하나면 열 두락 들판인 시절, 길이도 무게도 아닌 머리수가 잣대였을 태양을 담을 저수지 긴 제방은 여섯 알 고동 주판으로 쌓아 세운 가계부였다 일순간 폐에 바람이 다녀간 것은 벌어 왔던 논 밭 산 허리까지 갉아먹은 길어진 병와 아버지 쪽에 누가 더 서럽게 섰을까 떠들썩했던 제사 날 화투장들 저마다 박음질해 둔.. 시 글 2023.09.10
채집되는 시대 다급한 파동이 사이렌을 쫒는다 찔린 심장은 내 일인 양 조여 오고 가던 차선을 바꿔 차고 옆 친구를 흠칫하는 자동차들 신호등은 색깔의 순서를 잠깐 모른 채하고 있다 시간들은 일제히 병원 시각으로 조각되어 따라가고 응급실 눈은 두 배로 확대합니다 귀는 말귀 병실은 삼 배속 시디플레이어로 돌아가는 손 놀림들 채집한 병색은 상형문자로 말하는, 숲을 떠난 두 구루 암수 은행나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뚱이만 남겨진 절단이 렌즈에 뛰어든 사유 가끔은 건물도 종양이 되어 메스로 잘려 나갔고 빨려들어온 수배자 행방에 뒷편 조사실은 긴급 수사망이 손을 뻗히기도 했다 도시를 구석구석 스캔하는 내시경은 쉼 없는, 골목을 뒤지는 일 사이렌은 가지고 있지 않다 시 글 2023.08.28
오늘은 허공같습니다 곽 우천 오늘 날씨가 좋으니 매미 소리가 되었습니다 가다 보니 개망초꽃이 됩니다 풀이되었고 나무가 되었고 빛이 되었고 호수가 되었습니다 여인이 지나가다 던진 향수가 됩니다 달콤한 사탕입니다 걸어가는 걸음이 되었고 차례대로 일어서니 그게 내가 됩니다 경계감이 없어지고 용서라는 용서도 없는 용서 세상 일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도 느껴지지 않는 오늘은 대상을 얻음이 허공 같습니다, 아무 물도 들지 않는 카테고리 없음 2023.08.13
가을이 서다 풀잎, 눈치빠른 입추를 어찌 읽었나 귀뚜라미 소리 바구니 들고 땔렁이는 새벽 두부장수 땅 속에서 계절을 어이 돌리는지 여름에 가을을 파는 촉수 몸 속에 들어가면 나도 그리 날 더 잘 알까 울밑 봉선화 짝꿍 땅강아지 아파트 벽 사이 가을 걸어 놓고 땅 멍을 틀어대면 메아리 계곡은 더 깊어가고 늘려가던 여름 접고 멈춤으로 바뀐 홀몬 허리 쭉 편 숨 가르며 가지에 맺은 가실에 충실 하자네 시 글 2023.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