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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의 눈치

입술을 오므리는 건 공기를 끌어내기 위한 혀의 작전 바람은 파란 파동이 되어 담을 턴다 노래는 주변 소리들을 삭힌 특별한 친서 애써 닿으려는 팔은 담장 건너 긴 머리 노래에 약한가 봐 그녀는 파랑에 꼬리표를 달고선 묻고 답한다 추파일까, 간절일까 늦지 않는 끌림은 답이 먼저였다 검정 머리 찰랑 기름기 흐른 눈망울 진달래 물이 도는 낯빛 콧김만 왜 탱탱한지 오늘따라 우글대는 속내를 깨물게 하고 있다 꺼내야 할 입술이 숨어버릴 때쯤 눈치는 눈이었다 날 때부터 지닌 촉 어서 말해 지금이야 강을 건너는 소프라노의 촉촉한 윤기 엉겼던 걸음 사뿐, 흔들바람은 산들 어깨는 푸드덕, 키가 날고 있다 어느 가수의 '휘파람을 부세요'를 들은 적이 있다 수천의 자양분이 든 우림의 숲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처럼 쿵쾅 두근 ..

시 글 2024.01.12

말랑말랑

가끔 거울을 유심히 본다 늙어감을 자로 재어보는 나를 보는 것이었다 판단이 잘 가지 않을뿐더러 젊다고 여기고 있다 확인이라도 하는 듯 지하철 층층대를 가벼운 듯 뛰어올랐다 거봐 젊잖아 내가 내게 답을 하고 있었다 사진을 좋아했던 나 이어서 변천사를 본다 그제야 나를 보게 된다, 현실을 그래도 아직 쓸만하구나 하며 돌아본다 어느 때부터인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질 않았다 그러고 나서 살이 엄청 빠졌다 몸이 가벼워지니 조깅이 가능해졌다 300m도 헉헉댔던 시간이 이제 3km를 뛰고 있다 너무 상쾌했다 한편 얼굴은 쭈그러졌다 아프냐고 어디 물어들 본다 부드럽지 않다고 유연하지 않다고, 깔깔해졌다고 의사는 말한다 무조건 60kg까지 올리세요 그리고 유지하세요 아프시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드십니다 모임이 많았..

살며 생각하며 2024.01.08

마고의 시간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본다면 과학이 필요하겠지, 인공지능은 해 낼 수 있을 거야 그럼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나를 보는 것처럼 출연한 영화를 내가 보듯이 가끔 시간을 돌리고 싶을 때 가지고 간다 그 연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던 빛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다가 멈추면 바로 그 점이 지금이었다는 걸 내가 파고드는 놀이다 그건 빛의 이야기잖니, 시간 이야기를 하고 자 하잖아 아유, 은유라는 걸 왜 배웠게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마찬가지야 어머니 일상을 다 가져다가 비춰줘 봐 어머니에서 마고할미까지 살아 돌아오실 걸 거 봐 시간이 바로 우리 앞에서 나오잖아 시간이라는 거 흐름이 아니라 사물 속에 숨는 거 네가 가진, 본, 경험한 모든 것에 박혀 있어 꺼낼 수 있는 길은 바로 너뿐이야, 네 인생이잖니 시간이 자..

시 글 2023.12.27

블로그 여행

빈틈을 내어 블로그를 둘러본다 마다마다 행적들이 들어가 있다 일상이고 삶이고 길이다 사실이고 진솔하게 누구에게 편히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까지 마음 한 구석을 이리 쉽게 전해 보게 되는 시스템, 자기표현을 전달해 보고 싶은 바람을 구현해 주는 인터넷 그리고 사이트들 고마운 세상에 살고 있다 어느 곳에서는 상처와 한 편은 위로를 받는다 나를 들어내 놓은 대가로 보면 편하다 자연처럼, 사는 의미나 존재를 그냥 두고 살지 못하고 존재를 드러내야만 하는 남기려는 사람들 어떤 이유가 있을까 그동안 살아왔던 흔적을 거의 다 지워버린 지금, 공백 상태에서 고목에 새로운 가지 하나를 피우려고 하는 지금을 보며 어떤 것을 하려고 이러하지 자문해 본다 산다는 게 뭘까 뭘 남겨 두고 싶다는 걸까 나무처럼 살다 가면 될 터인데..

살며 생각하며 2023.12.24

길 없는 길

산책을 하다가 침을 맞았어요 따끔할 거예요 자국이 자꾸 흐렸다 그럴 땐 도서관을 들락였다 핸드폰 속에 꽂아 들고 다니기도 했다 누구는 빗물에 쓸려가는 낙엽에 가 보라 했고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가 돼라 했다 세상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는 복사판이라서 정착지를 얻지 못했다 정말 침을 맞았다 걸을 수가 있었다 바늘이 시를 찔렀다 그는 말했다 길은 당신이 가지고 있어요 도움말은 비슷비슷했고 맞는 말일수록 애매했다 차라리 '죽어 그러면 살 거야'를 듣고 싶었다 셧터를 누르세요 이렇게 공중을 날으는 바람이 소리로 보일 때까지 외침하나 잡고 걸어가고 있다

시 글 2023.12.08

대지라는 어머니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바람이 어떻게 살갑게 살랑거렸는지 햇빛이 어떻게 잎으로 눈이 되게 해 주었는지 어떻게 땅이 당신을 세워 주었는지 지금 왜 춥다 말하지 않는지 가을을 마름으로 매듭하고 겨울을 대나무처럼 꼿꼿히 견디어 봄을 어디에 피울 지 준비하고 있는지 잎이 땅에 수 놓은 숨결과 눈오면 마중할 어깨 동무를 어느 촉촉한 봄의 날에 순명으로 돌아갈 대지에 엎드리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ㆍㆍ 또 내제된 봄을

시 글 2023.12.05

대지의 언어

당신은 참 잘 살아오셨더군요 땅에서 자라 퍽이나 먼 인연 같지만 나를 화폐와 바꿀 때부터 당신을 싱싱하게 보았어요 양픈에 넣고 깨 벗겨 하얗게 목욕시킬 때 태양을 향해 자란 엽록체 팔을 자를 때에도 생명이 교환되어 가는 과정과 가족 미각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을 말리려 맹 추위에 매달아 놓았어요 깔끔한 기도하는 품성을 보았지요 나는 잘 견딜 거예요 가지런한 당신의 다음 손을 기다리고 있겠어요 서릿발이 되었다 녹았다 봄이 지나면 야들해지고 작년 V자 편대 가을바람과 비, 햇빛과 땅의 습을 따끈한 국물로 뜰 수 있도록 된장을 풀 때 휘저으면 대지에서 받은 향을 당신께 선물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말이라는 걸 떠올려 주세요 감사해요

시 글 2023.11.29

동백꽃

말을 하고 싶구나, 지금도 구석진 자리에서 몸에 물기가 돌고 덜 바래졌을 땐 뜨끈한 인절미도 품어내곤 했었는데 전기 들어오고 방앗간 돌리더니 치마폭 새색시도 어매 할머니도 눈 여김 한 번 주지 않더구나 가끔은 친정온 큰딸이 애환도 끌고 오고 손주 이쁜 짓도 귀에 걸어 그네도 태워주더니 세월 커가면서 시댁이 우리 집이라고 곡간 열쇠까지 보여 줬잖냐 기특도 하고 서운키도 했단다 어매가, 딸 하나 잃어버렸다고 나도 이상한 세상 만나고서부터 살도 빠지고 떡메 쳐 주던 삼돌이도 장가가 버렸고 입 주둥이만 벌이고 있으면 뭐 하냐 쌀 한 톨 먹여 주는 이 없으니 바짝 말라 옆구리마저 터지고 말았지 근데 세상 알 수 없어야 어느 날 나를 비싼 가격으로 사가겠다고 귀한 집에 얼굴 성형까지 시켜서 모시고 살겠다고 재수 맞..

시 글 202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