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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체위

누가 망설이게 했나 가는 길에 수북한 그림자 속 나뭇잎이었거나 돌밑 숨을 쉬었을 겨울나기 축축하게 고실로 바뀐 벌거벗은 동물은 계절의 체위를 믿었는지 9월 같은 11월에 상강을 입고 입동에 말라버린 체위 널 놓아버렸네 낭패는 허용, 실패의 언어마저 없는 생태계 누군가의 한 끼 감으로 내 던져준 연체 하나 그 순서의 순환에 밀어 넣어 본다 시각을

시 글 2024.11.12

통명전 홍시

곶감이 되기 싫으면 일찍이 나를 하늘에 두어 차고 붉기를 죽어도 또 살겠다고 하늘에 가지를 심었을 텐데 똑 떨어지게 아린 건 순전히 가을이기 때문 까치밥이라 하지만 까치도 하늘에 올린 제사상은 기웃거리지 않는다는군 오늘밤 서리라도 온다면 생각해 보았니 맑은 하얀색 속 뽀얀 붉은 색조 예뻐 말도 붙이지 못한 여학생 하늘은 한 가지 배경을 꼭 보태더라니까 그 여학생 가장 먼저 할머니 되었더군 일찍 여물면 나중이 가까워지나 창경궁 통명전 뒤뜰에 서면 장희빈이 떠오르지 저 감처럼 고상했더라면 곶감보다 홍시가 되었었을 텐데 통명전이 길었을 텐데

시 글 2024.11.03

증명, 시간 속에

높은 곳에 오를 거라고 믿음이라고 왜 그게 믿음이 되는지 '?'를 삼키고 살았지 끄덕여야 한다고 또 삼키고 끄덕이고 떨어지기 쉬운 하늘은 높아도 낮아도 믿음이라고 몸은 신호등을 보고 있고 나는 벌써 건너가고 있었어 바빴던 걸까 세상이 내 앞에 내가 가고 있었네 강 하나 건넜는데 같은 세상이 나타났지 하늘나라라고 믿음이라고 그것은 둘일까 하나일까 믿음이라고 너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데칼코마니는 여백을 메꿀 구도에 필요한, 출발점을 알리는 사진이고 징검다리는 푸른 시절 아슬한 놀이터 빛이 거짓일 수 없게, 과학자가 하는 일이 진실을 캔다는 것 사진은 거짓이 되었다 만들어 가고 있는 그림이고 구부러진 그림자이고 사실 같은 거짓인지, 하늘나라를 증명하라 이태원은 그림도 그림자도 아닌 날개 부러진 천사의 시간이었나

시 글 2024.11.01

대륙횡단 열차

창밖 쓸려가는 자작나무 숲 무전여행 같아 노래를 불러보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을을 살아가는 여행 중에 한 해의 꼬리를 물고 건너는 벌써 과거라는 칸막이 들 긴 끝에 달린 목숨처럼 질긴 너 정말 어디로 길을 내고 가는지 있어, 알아, 보았어 곳을 시선을 끌고 가는 대륙횡단열차는 시베리아 벌판을 느름 피우며 간다, 뒤따라 가는 편안함은 종교를 넘어섰나 토막 진 생들 길게 줄 이어 마딘 하루를 끌고 있다

시 글 2024.10.22

노벨 문학상

그녀를 만난 것은 소설 '몽고 반점' 에서였습니다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찐 팬이 되었지요 대화 중 얼마나 겸손한지 노벨 문학상 수상자 품격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100년 후 밀봉을 뜯게 되는 작품을 마무리 중에 있다고 하시던데요 무덤 속에서라도 펼쳐볼 수 있도록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부탁해 놓아야겠어요 최근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이 세상을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한승원'도 읽었는데 한 세상 다 품어 본 노년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듯 한 작품이었지요 ㅎㅎ 축하드립니다 한강 작가님

살며 생각하며 2024.10.10

고마워

입술이 세 번 떨렸어요 호흡이 가뻤지요 입술이 세 번 또 떨렸어요 아는 채 고개만 끄덕였지요 돌아가시기 2시간 전 10년 정도 되었나요 한 달에 1~3번 방문 저의 두째 손위 동서였습니다 외로움이 가장 크시다고 하셨지요 떠나기 직전 입술을 알았습니다 (점심 같이하고 창경궁에 가서 손 잡고 불편한 몸 잠깐 걸어 드리는 일) 임종을 같이 한다는 것 외로움의 마지막을 거두어 주는 시간이라는 걸 사랑 앞에 외로움이 먼저 있었다는 것 우린 요양보호사 사랑의 힘을 언젠가 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존경합니다 그 일을 하시는 분들

살며 생각하며 2024.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