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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산란

집은 반듯이 세워야 흔들거리지 않지 중력은 위에서 아래로 끌어오는 거라 믿으며 바람은 흩어지기를 좋아해 떠오르기도 하고 기울기도 해서 수직을 거부합니다 까치집이 그랬다 서까래도 기둥도 빗살무늬 사선이다 저토록 밉게 보였으면 사방에서 화살을 맞았을까 괜한 험담에 화살이 돌아오는 건 아닐지 내게 어떤 바람은 지진을 체크하다 악물고 견디는 촘촘함에 돌아갔고 세찬 소나기 한 차례 어깃장 대 보지만 둘려진 바늘침에 찔려 도망한다 발톱 발로 기어오른 들 고양이 날렵에 가지엔 빈집이 하늘에 숭숭 높이를 삭히고 있다 미끈한 콘크리트 기둥 가지에 둥지를 틀다가 어느 2월 토막 전선 몇 가닥 물고 와 대들보를 쳤다나 섬광이 터지고 암흑 세상을 부른 정전은 사냥꾼 산탄총에 몇 천 원의 목숨이 되었고 그날 이후 집은 집은 다..

시 글 2024.02.21

졸음을 다듬다

봄에 연락하려고 지어야 했거든요 몇 날 밤을 소식은 어둠에서부터 나올 것 같아서, 버젓이 거짓을 깔고 덤비는 껍질이 있어 보인 빛 캤는데요 도톰한 뿌리는 돌의 겨울을 견디어 내고 다발성 뿌리는 말이 얇아 미뤄뒀지요 한쪽 겨울은 잎을 삭혀 버렸겠는데 파랗게 살려둔 이유를, 아이가 감기에 잘 튼다는 소문과 연결 지으려는 이 작은 감정을 이기지 못했어요 고니는 수면의 봄을 날고자 시베리아 날개를 펴고 이륙을 도움닫기 하고 있는 하얀빛들 겨울을 떠나보내지 못한 산그림자 아래쪽 죽지 냉이가 앉아 여직은 살짝 졸고 있어요 햇살 비늘 껴 입으려 노부부의 여러 겹 걸음들 가볍고 가자미 연처럼 버드나무에 걸린 날이 살랑해 강둑 이른 봄을 다듬어 먼저 가지고 온 경안천

시 글 2024.02.13

지금 옛 사람

그분은 옛날 산 적이 있었던 산 적이 없는 사람으로 지금 와 있는 옛사람이었습니다 폭넓은 선이 끄는 백의를 내려 자락으로 끌고 들어와 눈, 코, 입 얼굴이 모자에 바르게 열을 짓고 귀를 세웠어요 예의 향을 태우는 숨 죽인 한참은 한눈에 조선이 살아 돌아온 순간, 한 모금 침이 꼴깍 선릉을 열었습니다 네 번의 허리 꺾임보다 땅을 짚은 엎드림은 과거만큼 길고 깊었고 맑은술로 향을 음미하는 대왕의 작이 입술에 적실 때 오백 년 내려쓴 종묘사직이 여직 아침의 나라를 잇는 게 보였지요 옛 사람 앞에 서면 왜 누가 바뀌어져 나올까요 12월 9일 내년ᆢ또 그는 이 씨요 조선이요 옛 모자, 지금 사람이 될 것이라고

시 글 2024.02.11

달빛 언어

심부를 갔다 그냥 돌아와 답을 하지 않은 채 얼굴만 만지는 빈방처럼 먼저 퇴직한 친구가 좀 보자고 초봄 찻잎 얼굴을 가지고 왔다 간을 토끼의 주머니에 넣어 살고 있다고 했던 말하는 그는 이 세상에 없어 보이는 사람 같았다 어느 경전도 따라잡지 못한 번짐 없는 입, 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어깨 색이 없는 말에는 끌어당기는 힘이 방안 가득했다 부탁도 청도 아닌 과거들이 나열 앞에 따습게들 모여들었고 그가 남기고 간 공간은 생의 시작과 끝 어디쯤이라기보다는 갚을 수 없는 빈 자유로움이었을까 서로 잡아당기는 이해는 같은 것이라도 느낌의 차가 한이 없다고, 바람이 일어서고 가라앉음도, 밀려오고 쓸려가는 바닷물도 깊음이 물길따라 다르다고 달빛 같은 말을 듣고 있었다 상처의 이쪽과 저쪽 사이를 쉽게 넘을 수 있..

시 글 2024.01.31

그러고

지금이 황혼인가요 나는 나이를 말할 줄 모릅니다 계단이 있어 통하질 않으니까요 똑같은 바람이 불어와도 똑같은 물결이 밀쳐도 왜 서먹하지요 내가 높은가 봐요 아니에요 뱃속이 비어서예요 2년이 넘었거든요 그때마다 계단을 올랐어요 우린 언제 통할까요 바람을 넣어보고 싶어요 바다를 삼키고 싶어요 그리고 전화를 할 겁니다 이젠 상관없어요 바람도 바다도 왜 그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다 나를 빼면 서운하거든요 내가 가겠어요 당신에게로

시 글 2024.01.26

소프라노의 눈치

입술을 오므리는 건 공기를 끌어내기 위한 혀의 작전 바람은 파란 파동이 되어 담을 턴다 노래는 주변 소리들을 삭힌 특별한 친서 애써 닿으려는 팔은 담장 건너 긴 머리 노래에 약한가 봐 그녀는 파랑에 꼬리표를 달고선 묻고 답한다 추파일까, 간절일까 늦지 않는 끌림은 답이 먼저였다 검정 머리 찰랑 기름기 흐른 눈망울 진달래 물이 도는 낯빛 콧김만 왜 탱탱한지 오늘따라 우글대는 속내를 깨물게 하고 있다 꺼내야 할 입술이 숨어버릴 때쯤 눈치는 눈이었다 날 때부터 지닌 촉 어서 말해 지금이야 강을 건너는 소프라노의 촉촉한 윤기 엉겼던 걸음 사뿐, 흔들바람은 산들 어깨는 푸드덕, 키가 날고 있다 어느 가수의 '휘파람을 부세요'를 들은 적이 있다 수천의 자양분이 든 우림의 숲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처럼 쿵쾅 두근 ..

시 글 2024.01.12

말랑말랑

가끔 거울을 유심히 본다 늙어감을 자로 재어보는 나를 보는 것이었다 판단이 잘 가지 않을뿐더러 젊다고 여기고 있다 확인이라도 하는 듯 지하철 층층대를 가벼운 듯 뛰어올랐다 거봐 젊잖아 내가 내게 답을 하고 있었다 사진을 좋아했던 나 이어서 변천사를 본다 그제야 나를 보게 된다, 현실을 그래도 아직 쓸만하구나 하며 돌아본다 어느 때부터인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질 않았다 그러고 나서 살이 엄청 빠졌다 몸이 가벼워지니 조깅이 가능해졌다 300m도 헉헉댔던 시간이 이제 3km를 뛰고 있다 너무 상쾌했다 한편 얼굴은 쭈그러졌다 아프냐고 어디 물어들 본다 부드럽지 않다고 유연하지 않다고, 깔깔해졌다고 의사는 말한다 무조건 60kg까지 올리세요 그리고 유지하세요 아프시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드십니다 모임이 많았..

살며 생각하며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