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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망

대문 나설 때 마당발 어머니는 자식을 다시 낳았다 세상이 둘셋 있다는 걸 알았을 무렵 접히지 않았던 옷고름 샘 물가를 적시었다는데 발걸음 한 번 뒤돌림 없이 막대 걸망은 막대 걸망이 되리라고 막아선 번뇌가 벽이라서 숲의 눈 개수만큼 이어서 바람 깎는 보리 석탑을 돌고 땡볕 말리우는 말들은 경전을 깨고 나온 풍경 소리되었다는 천둥은 더 많은 가지를 첬었다네 어디서 무엇부터 끊고 베어야 하는지 순번 없는 죽음처럼 사람이 바로 산다는 게 죽어 제사상에 울린 절 받는 한 마리 북어가 된다는 걸 알았더라면 색이고 공이고 삶과 죽음 사이 무의 한나절이야 여기 마당입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떤 세상 걸망에 넣고 다시 가시는지요

시 글 2023.02.08

입 그리기

엄마는 아이를 기다린다 선생님의 파도가 간혹 흔들린다 땡그랑 땡땡 서쪽 벨이 울리고 벨이 울리고 놓인 물고기가 선생님 손을 잡고 나온다 엄마가 반가워서 뛰어 비늘을 쓰다듬는다 선생님은 아이의 붕어입 파도를 전해 준다 그랬어 그랬구나 참 잘했어 벌써 붕어 입모양을 뿡뿡 내밀며 말 입을 만든다, 엄마는 우물우물하는 입 모양을 베끼며 아이가 말을 하고 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을, 들리지 않는 말을 엄마만 볼 수 있는 말을 호수 같은 두 눈이 서로를 그렁히 보고 있다

시 글 2023.01.31

안개 속 누군가를 바라본다

2023 신춘 문예 시를 읽어 내려 모방은 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 게 하는 일 그의 손끝을 따라가 보며 습자지를 올리고선 그림을 배껴 쓴다 사유의 극장 예고편을 쭉욱 한 바퀴 물레질한다 사유는 캐는 게 아니고 오히려 정원을 돌며 정성껏 함께 심어보는 것이다 첫 세션이다 숲과 냇가와 바위와 풀들의 아픈 관절을 살핀다 놓여진 위치마다 마디의 사연을 들춰본다 고래의 혀가 새우의 위치를 캐 낸 수심 깊은 오목 지점에, 서 있는 어부의 마음이 되어 본다 한 연을 해석하는데는 우물에 빠진 숟가락을 달빛을 쪼여 비친 은어의 향을 헤아려 보는 일 두 번째 트랙이 끝이 난다 어디선가 해설사가 등장 해 할머니 이야기처럼 기시감이 든 꿈을 건반에 살짝 탓치해 주면 둠벙에서 배운 미꾸라지 수영이 선수촌 코치를 만나는 매끄러..

시 글 2023.01.23

연 줄이 끊기면서 생긴 일(자전의 방향)

*연 줄이 끊길 때 생긴 일 K회사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옷 입고 구두 끝을 세우지요 지하철은 2분마다 길이를 잊지 않습니다 겉옷을 입을 사람은 왼쪽에서 우로 안쪽을 걷을 사람은 그 반대 철길로 들어섭니다 입구 쪽 시계는 초침까지 맑고 투명하였습니다 끝나는 시간은 아날로그시계처럼 돌고 돌아 지치면, 그제야 말을 걸어 오지요 정신 차리세요 내일 늦지 않게 닭장의 닭이 알을 쑥쑥 뽑아주면 보이지 않는 주인은 웃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겠지요 초침은 순간을 가르키지만 누군가가 달과 해를 도는 공전의 길을 만들었고 구심력으로 길들여왔던 걸까요 자전을, 그를 벗어나는 멍청해져 버린 어느 날 미끄러져 빠져도 셈이 없는 넓은 바다에 내 던져졌을 때 생겼어요 새벽 덜 깬 눈이나 밤..

시 글 2023.01.14

속세

범어사 해 질 녘 범종소리가 주변 온갖 만물상 속 자기를 깨우고 법 마당 3층석탑 법의를 두르고 별 길을 찾아가나 산새들 나뭇가지에 밤을 심었다네 스님들 동안거 숨 들었을 때 손에 잡힌 경전이 자라던 키가 겨우 잠에 듭니다 범종이 알린 메아리를 이데아라 하고 맥놀림을 그림자라 한 스님이 그리했다 하오 그 많던 자아는 어디로 물러 가고 작은 스님 신었던 고무신 법당 문 앞에 눈 감고 앉아 있습니다 법 일로 사는 배고픈 하루 스님의 호흡은 배꼽을 돌아나와 해 맑은 얼굴 우주 한 켠을 헤아릴 탑이 되었다가 새가 되었습니다 평생 주저 앉은 석탑의 침묵으로 흔들리지 않으려나 처마 끝 번뇌를 깨우려는 듯 땅그랑 깨어지는 풍경소리에 잠을 깨어 텅빈 공간이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웅어웅어~ 범종이 알리는 새벽 예불 소리..

시 글 2023.01.11

애처롭다

애처롭다 얼음 언 분화구가 화성에 있다는데 뜨거운 주변 열기를 막아내면서 무언가 닮아지고 싶어 하는 눈 옴조롬이 서로를 견디고 있다 펭귄 가족들 서로의 몸으로 남극의 칼바람을 간절하다 더 이상 물러서면 무생명체 남극 저 눈을 녹여 누군 음료를 꿈꾸고 있다는데 폭로된 인간의 속도 드러낸 정복의 쓰레기 사람 없는 화성 그래야 산다 살려야 한다

시 글 2023.01.05

늑대의 노래

https://youtu.be/MJ4ijcV--ZI 소리를 찾아낸 하늘을 보았네 어디서 불러왔는지 보이지 않는 소리를 끌고 온 득음 뚫린 구멍 종이를 통과하던 태초의 바람소리 비밀을 아는 듯 메아리 하울링을 들은 듯 동물의 음성을 회복한 듯 목구멍 어디쯤에 떨켜를 시켜 색은 소리에 한을 입혔나 조선의 태음을 실은 랩이 건들건들할 때 너는 지구를 들썩 이더구나 찰랑거리는 파도를 끌어낸 어깨춤사위에 걸린 흥 배꼽에서 펌핑한 울대가 울먹거려 귀의 긴 나팔은 행성의 소식을 들었을까 소리의 신과 무수한 합일을 주문한 音神이 지은 음표들의 춤 스스로 재물이 되어 매어 달렸던 걸까 악기는 그렇게 울었다 슬프고 슯지 않게 흐느끼나 느끼하지 않게 넘어가는 꼬리에 흥이 달리게 나도 저런 소리 한 번 가져봤으면 하게 하늘은..

시 글 2022.12.28

*모슬포에 있었다

떠났다는 말이란 뭘 말하는 건지 사실을 모르겠어 언제나 너는 떠나 있었다 가끔 만나 가평을 말할 때 빼놓고는 개구리 땅 속과 물방울 구름 속 같은 악수하는 순간 사라지고 나면 서로 잊고 사는 시간이 더 컸는데 우리는 친구였어 개망초 피고 백일홍 피고 살구나무 꽃피면 같이 피리를 불었지 네가 시험에 붙었을 때 너는 네가 붙었고 나는 내가 붙었고 같은 대문 열고 다녔던 직장 네 길 내 길 멀리 떨어진 달 같았어 휘파람 불면 떠오르는 달 말이야 네 내는 만나질 못하고 만나자 만나자고만 배부르게 불러댔지 왜 존경한다는 아버지는 어디다 두고 다녔던 거냐 네 딸이 오래 살다 가야 효부가 되는 거 잊었던 게냐 안방 떠나 문간 방 더 작은 방으로 옮겼다며 거리란 참 우스운 것이어서 내 달과 네 달이 떨어진 거리와 네와..

시 글 202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