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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언어

당신은 참 잘 살아오셨더군요 땅에서 자라 퍽이나 먼 인연 같지만 나를 화폐와 바꿀 때부터 당신을 싱싱하게 보았어요 양픈에 넣고 깨 벗겨 하얗게 목욕시킬 때 태양을 향해 자란 엽록체 팔을 자를 때에도 생명이 교환되어 가는 과정과 가족 미각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을 말리려 맹 추위에 매달아 놓았어요 깔끔한 기도하는 품성을 보았지요 나는 잘 견딜 거예요 가지런한 당신의 다음 손을 기다리고 있겠어요 서릿발이 되었다 녹았다 봄이 지나면 야들해지고 작년 V자 편대 가을바람과 비, 햇빛과 땅의 습을 따끈한 국물로 뜰 수 있도록 된장을 풀 때 휘저으면 대지에서 받은 향을 당신께 선물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말이라는 걸 떠올려 주세요 감사해요

시 글 2023.11.29

동백꽃

말을 하고 싶구나, 지금도 구석진 자리에서 몸에 물기가 돌고 덜 바래졌을 땐 뜨끈한 인절미도 품어내곤 했었는데 전기 들어오고 방앗간 돌리더니 치마폭 새색시도 어매 할머니도 눈 여김 한 번 주지 않더구나 가끔은 친정온 큰딸이 애환도 끌고 오고 손주 이쁜 짓도 귀에 걸어 그네도 태워주더니 세월 커가면서 시댁이 우리 집이라고 곡간 열쇠까지 보여 줬잖냐 기특도 하고 서운키도 했단다 어매가, 딸 하나 잃어버렸다고 나도 이상한 세상 만나고서부터 살도 빠지고 떡메 쳐 주던 삼돌이도 장가가 버렸고 입 주둥이만 벌이고 있으면 뭐 하냐 쌀 한 톨 먹여 주는 이 없으니 바짝 말라 옆구리마저 터지고 말았지 근데 세상 알 수 없어야 어느 날 나를 비싼 가격으로 사가겠다고 귀한 집에 얼굴 성형까지 시켜서 모시고 살겠다고 재수 맞..

시 글 2023.10.29

여성 농악놀이

석촌 호수 바로 옆에는 서울 놀이마당 상설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장이 열리는 곳입니다 무료이고 한 때를 즐기고 가실 수 있는 곳이지요 친구들과 한 시간 좀 넘게 관람을 하고 나중엔 함께 농악춤을 추다가 왔습니다 ㅎㅎ 우리 문화 속에 녹아져 있는 삶을 보면서 밝은 민족이로구나 이겨내는 힘이 여기에 있었구나 앞으로 나가는 저력도 이곳에서 출발을 했구나 즐거움을 넘어설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시간 되시면 혹 지나시면 들려 보시길요

카테고리 없음 2023.10.22

공원 의자

공원 긴 의자 한쪽을 비웠다 한 까치가 앉을까 망설이다가 앉아도 될까요 그럼은요 옆으로 몸을 더 옮겨준다 미안하지 않게 마치 내 영역이 아니라는 듯 잠깐 앉았다가 떠나가는 뒷이 서운하다 말이 없거나 하지 않아도 좋은데 뭐가 불편했을까 의자처럼 종일 혼자 말 않고 있고 싶은 걸까 지구 하나를 혼자 들어야 할 사유라도 있는지 그 뜻을 존중하고 싶다 차라리 내가 비워줄 걸

살며 생각하며 2023.10.08

누가 키웠을까

허리를 잘라 순을 꽂으면 숲이 되는 골은 한 여름이 바쁘다 고구마 줄기 여린 밑을 어린 손이 타기도 하는 오후 방학 이어서일까 계절도 아직 비리다 지진을 감지한 둑은 해산을 준비하고 아이들 갈무리에 가을이 노곤하다 군 고구마가 맛있는 것은 아이는 내 아이인데 뻐꾸기 집에서 키워내서일까 햇빛을 녹여 보내 준 탯줄을 자를 때이다 꼭지가 그리운 너는, 세상에 없었던 너를 태어나 살게 한 고마움 때문 올 추위 구워내 줄, 가마 속에 들어갈 고구마가 미리 발갛게 익고 있다 줄기 하나 심었는데

시 글 202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