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글 209

사당의 밤

ㅡㅡㅡ 마지막 정거장 입니다 이 전철은 더이상 가지 않습니다 모두 내리시기 바랍니다 여행을 마쳐야만 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줄 지은 사람은 다음 차를 기다린다 꼬막 상점 할머님은 내린 손님 하나를 맞는다 오이도 오이도행 열차입니다 빈 자리뿐인 열차로 승객은 눈이 번쩍인다 문이 열리자 자리잡기에 분주하다 지나가는 잠간 인연이지만 빈자리 덕에 반가웁다 사당의 밤은 만남과 헤어짐의 거리로 가득하다 푸짐한 서민 음식들이 이곳 저곳에서 냄새를 날리고 킁킁거리는 코는 따라 끌려간다 소주 한잔 부딪히는 소리에 숯불 짜글리 피워내는 주인의 밝은 얼굴 지글 지글 삽겹 굽는 소리 이곳 저곳 위하여를 외치는 소리 앞치마 서빙하시는 분의 피로가 보일 무렵 하루의 피로를 풀고 조금은 흐릿한 눈망울로 내일을 기약한다 어이 ..

혼합글 2020.10.23

다른 기회

ㅡㅡㅡㅡ 핸드폰을 보니 3분 남았다 그래 뛰자 허억 허억 푸우우 나는 증기 기관차가 되었다 층계를 내려오고 게이트를 빠져나와 다시 층계를 내려간다 한 발 앞에서 문이 닫힌다 내몸은 부응뜬 구름이 되었다 달음질이 조금만 더 빨랐었으면 채념이 왔다 갔다 한다 7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여유있게 자리까지 잡았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저를 다시 만들기 위해 여기 서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를 뻥튀겨 다섯배가 되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요 끝나고 나면 박수 부탁드립니다 한 젊은 친구가 소심함을 씻고 힘찬 자기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로 세상 앞에 자기를 내 놓는다 7분 늦으니 인생을 용기있게 살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또 한 번 늦은들 어떠하랴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박수 쫙쫙쫙쫙~~ 큰 힘을 받는 한 칸의 지하철 ..

혼합글 2020.10.21

별 보다 많은 나 펼쳐진 이 세상 만물 수 많은 사람들 나와 형성되는 언어들, 눈빛 하나, 소리 한 쪽, 느낌 한 조각, 억만 가지 생각들... 다아 내 분신들 입니다 하루를 마치려는 밤이면 잠이라는 무덤 안으로 분신들이 모여 듭니다 노란 녀석, 빨간 녀석, 파란 녀석들... 애처럽고 슬픈 일, 넘 생각나는 사람... 그리움을 안고 나는 그 둥근 지붕 안에 그들과 함께 잠을 잡니다

혼합글 2020.09.13

수제비

호숫가에 가면 돌맹이를 던져서 돌이 물 위로 촉촉촉하며 지나가게 한다 이걸 수제비 뜬다고 했다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하는 수제비를 뜨는 날이다 그것도 부엌에서 말이다 아내가 언젠가부터 수제비를 일 년에 꼭 한 번 먹어야 한다고 규칙을 정했다 그것도 내가 해 주는 수제비를 말이다 육수를 먼저 여러가지 넣어 끓여 만들면서 밀가루 반죽을 한다 밀가루는 기름을 살짝 부어야 반죽 시 밀가루가 손에 달라붙지 않는다 잘 이기고 나중에는 그릇에 내리쳐서 반죽이 쫀득해지도록 한다 육수에는 꼭 새우 가루를 꼭 넣는다 그리고 감자 잘라 놓고 계란과 파를 잘라서 저어서 놓는다 요구 조건이 있는데 육수가 끓으면 밀가루 반죽을 떼어 놓어야 하는데 꼭 얄포름 하게 떼어 넣으라는 것이다 계란과 파 저은 것과 감자는 수제비 맛을 훨..

혼합글 2020.07.17

윤기가 자르르

삼시세끼 프로그램을 가끔 보고 있다 프로그램의 내용을 보면 우리 일상 생활을 좀 외딴 곳에서 보여 주고 있어 재미 있고 편하고 즐겁다 주로 먹는 일에 주력을 하고 있지만 그 과정 과정에서 이루어 내는 순서 순서 하나 하나가 적절한 노력과 수고가 들어 있고 쉽잖은 과정도 용케 넘어가는 내용들에 지혜도 보이고 서로의 배려 관심 협동으로 세끼를 그들 스스로 해결하는데 들어 있는 각자의 재치과 아이디어들이 쉽게 만나보지 못할 일들로 싱싱하다 오랜만에 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로 정기 모임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메시지이다 연장자라 자주 나에게 먼저 물어 온다 이런 일에는 총무가 나설 수 밖에 없는데 뭐든 답을 주어야 한다 서로 조심스러워 먼저 이야기 하기를 꺼려한다 넘 오랜만이고 해서 건강한 친구들만 나오기..

혼합글 202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