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321

증명, 시간 속에

높은 곳에 오를 거라고 믿음이라고 왜 그게 믿음이 되는지 '?'를 삼키고 살았지 끄덕여야 한다고 또 삼키고 끄덕이고 떨어지기 쉬운 하늘은 높아도 낮아도 믿음이라고 몸은 신호등을 보고 있고 나는 벌써 건너가고 있었어 바빴던 걸까 세상이 내 앞에 내가 가고 있었네 강 하나 건넜는데 같은 세상이 나타났지 하늘나라라고 믿음이라고 그것은 둘일까 하나일까 믿음이라고 너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데칼코마니는 여백을 메꿀 구도에 필요한, 출발점을 알리는 사진이고 징검다리는 푸른 시절 아슬한 놀이터 빛이 거짓일 수 없게, 과학자가 하는 일이 진실을 캔다는 것 사진은 거짓이 되었다 만들어 가고 있는 그림이고 구부러진 그림자이고 사실 같은 거짓인지, 하늘나라를 증명하라 이태원은 그림도 그림자도 아닌 날개 부러진 천사의 시간이었나

시 글 2024.11.01

대륙횡단 열차

창밖 쓸려가는 자작나무 숲 무전여행 같아 노래를 불러보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을을 살아가는 여행 중에 한 해의 꼬리를 물고 건너는 벌써 과거라는 칸막이 들 긴 끝에 달린 목숨처럼 질긴 너 정말 어디로 길을 내고 가는지 있어, 알아, 보았어 곳을 시선을 끌고 가는 대륙횡단열차는 시베리아 벌판을 느름 피우며 간다, 뒤따라 가는 편안함은 종교를 넘어섰나 토막 진 생들 길게 줄 이어 마딘 하루를 끌고 있다

시 글 2024.10.22

초승달

낮잠을 읽다가 졸았다 어슴프레 깨니 개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어 뭐 '뽀롱이'라고 주변을 하나씩 거두어 보고는 다시 졸았다 집에 불이 났다 어릴 적 생각도 잘 나지 않는 집 골목을 나오면서 절었다 꿈이 끝나가는 장터처럼 어수선했다 복권 뭐 그런 꿈 당첨 되었다면 (어쩌고 저쩌고) 이발소를 찾았다 거기에는 신문이 있다 몰래라는 번호를 베껴 적는다 해와 달과 별이 움직임조차 잃어버린 날 달이 수박을 콱 물었다 뒤통수 껍질만 남았다

시 글 2024.08.30

너의 위치

석양이 귀촌의 노고를 지긋히 보고 있다 왠만한 부지럼이 아니고는 열어주지 않은 회관이 고개를 끄덕일 때가 계절 네 개를 넘기고 나서다 밤이라도 길을 잃은 마실이 없었던 것은 어둠 속에도 깊은 빛이 숨어들어 있음을 안 후였단다 집집마다 골목엔 박힌 돌이 뾰쪽해도 이곳에서는 넘어진 횟수를 세기까지 이야기 거리다 처음 도시가 들어올 때는 여름날 별똥별 하나 지나가리라고 한쪽 눈만 반짝였다 내년에는 마을에 교회 종소리보다 큰 울림 하나가 솟아오를 거라는 소문에 회관도 학교도 마을 얼굴들이 출렁거린다 내 손자 보게 될 거라고 회관 안 손가락들이 벌써 기저귀를 개고 있다 토방까지 바래다주는 석양이 '힘을 내' 도시 양반 용기 하나 더 넣어주고 간다

시 글 2024.08.20

핀센트 점심

지하 갱도 어둠에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 든 연한 빛이었을까 헤매고 다녔을 촉수들이 화재 속 죽음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구나 하늘에서 땅을 구했을 것이고 흙을 만들어 숨구멍을 넣었으리라 어느 날은 뼈를 갈아 비료공장을 공중에 세웠고 수돗물에서 실뿌리 미네랄을 핀센트로 뽑아 냈다는 소식 물 한 방울도, 층층이 밀어 올린 뿌리 덕에 떨구지 않았겠지 지하철 입구 골목, 홀로 팽나무처럼 서서 식빵 몇 조각과 물병 하나로 숨 막히는 대서의 젊은 점심을 때우기도 했고 삼각김밥을 편의점 설치대 끝에서 창 밖을 흘끗 보며 꾸억 먹을까 그래도 국물 있는 라면 하나로 입맛과 속을 동시에 메울 골목 복을 누려볼까 과장님은 오늘도 라면이에요 으응, 미식가인 나의 취미야 해 보지만 가라앉다 보면 스프링처럼 눌렸다가 튕겨 을랐던..

시 글 2024.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