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 8

초승달

낮잠을 읽다가 졸았다 어슴프레 깨니 개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어 뭐 '뽀롱이'라고 주변을 하나씩 거두어 보고는 다시 졸았다 집에 불이 났다 어릴 적 생각도 잘 나지 않는 집 골목을 나오면서 절었다 꿈이 끝나가는 장터처럼 어수선했다 복권 뭐 그런 꿈 당첨 되었다면 (어쩌고 저쩌고) 이발소를 찾았다 거기에는 신문이 있다 몰래라는 번호를 베껴 적는다 해와 달과 별이 움직임조차 잃어버린 날 달이 수박을 콱 물었다 뒤통수 껍질만 남았다

시 글 2024.08.30

너의 위치

석양이 귀촌의 노고를 지긋히 보고 있다 왠만한 부지럼이 아니고는 열어주지 않은 회관이 고개를 끄덕일 때가 계절 네 개를 넘기고 나서다 밤이라도 길을 잃은 마실이 없었던 것은 어둠 속에도 깊은 빛이 숨어들어 있음을 안 후였단다 집집마다 골목엔 박힌 돌이 뾰쪽해도 이곳에서는 넘어진 횟수를 세기까지 이야기 거리다 처음 도시가 들어올 때는 여름날 별똥별 하나 지나가리라고 한쪽 눈만 반짝였다 내년에는 마을에 교회 종소리보다 큰 울림 하나가 솟아오를 거라는 소문에 회관도 학교도 마을 얼굴들이 출렁거린다 내 손자 보게 될 거라고 회관 안 손가락들이 벌써 기저귀를 개고 있다 토방까지 바래다주는 석양이 '힘을 내' 도시 양반 용기 하나 더 넣어주고 간다

시 글 2024.08.20

핀센트 점심

지하 갱도 어둠에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 든 연한 빛이었을까 헤매고 다녔을 촉수들이 화재 속 죽음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구나 하늘에서 땅을 구했을 것이고 흙을 만들어 숨구멍을 넣었으리라 어느 날은 뼈를 갈아 비료공장을 공중에 세웠고 수돗물에서 실뿌리 미네랄을 핀센트로 뽑아 냈다는 소식 물 한 방울도, 층층이 밀어 올린 뿌리 덕에 떨구지 않았겠지 지하철 입구 골목, 홀로 팽나무처럼 서서 식빵 몇 조각과 물병 하나로 숨 막히는 대서의 젊은 점심을 때우기도 했고 삼각김밥을 편의점 설치대 끝에서 창 밖을 흘끗 보며 꾸억 먹을까 그래도 국물 있는 라면 하나로 입맛과 속을 동시에 메울 골목 복을 누려볼까 과장님은 오늘도 라면이에요 으응, 미식가인 나의 취미야 해 보지만 가라앉다 보면 스프링처럼 눌렸다가 튕겨 을랐던..

시 글 2024.08.09

공중 제비

빨간 뒤지에 세자를 꾸겨 넣었지 역대 임금을 단 하루 다시 살게 한다는 넷플릭스를 돌렸을 때 영조대왕 세자와 다시 대면케 된 사법의 날 사도는 창자를 꺼내 엎디었고 짧은 안경을 집어던진 왕관 진달래꽃 창경궁에 화사가 돌고 눈시울 쏟아낸 춘당지가 출렁 입 다문 궁궐이 하늘 잔치라네 궁핍한 어휘 어색한 표정 궁뜰로 사뿐 걸음 내려서니 한 자리 지킨 허리 굽은 혜화나무 지팡이 마저 공중제비 하네

시 글 2024.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