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오십견

마음의행로 2009. 12. 13. 22:42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당과 지옥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지옥에 먼저 가 보니

밥을 먹는데 서로 많이 먹기 위해 자기 앞으로 끌어 당겨 놓으려고 싸움이 벌어지니

결국은 서로 먹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천당엘 가 보니 젓가락의 크기가 팔 만큼 길어서 음식을 집어도

스스로 먹을 수가 없어 남이 내 입에 넣어 주어야 만이

먹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을 위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는 일화 입니다.

우리 자신의 신체에서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입은 맛있다고 배가 부르도록 먹어 댑니다.

그러나 위는 이것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가진 애를 쓰게 됩니다.

결국 그것은 부매랑이 되어 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먹었던 것을 입으로 토해 내니까요.

 

오십이 되면 대 부분의 사람이 겪는다는 오십견을 앓고 있습니다.

아픈 팔은 꼼짝도 못하게 되고 밤에는 그 어께의 통증이 심해

밤잠을 설치게도 합니다.

아파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통증으로

순간 순간 겪는 고통이 말이 아니지요.

 

그런 오십견을 3번째 맞고 있습니다.

오른쪽이 2번 이번에는 왼쪽을 앓고 있습니다.

한쪽이 아파오니 아픈 팔만 문제가 아니고 아프지 않는 팔에도 문제가 생겨 납니다.

오른쪽 팔을 씻으려 해도 왼쪽 팔을 뻗을 수가 없으니 씻을 수가 없습니다.

 

내 몸 하나에도 이렇게 서로 돕고 배려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는 것이 오십견이 아닐까??  ㅎㅎㅎ

 

요즈음은 어느정도 좋은 방향으로 많이 달라졌지만

그 동안은 대 부분 남성 중심의 사회가 되어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사회적인 환경이라고 만 말 하기는 핑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 생활에 올인하고 나면 집에와서는 두 다리 뻗고 TV나 보면서

하루종일 일에 매어 있는 아내의 고통에 대한 배려는 커녕 생각 조차도 않고 살아 온게 사실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한 예로 외국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밖에서는 아내를 제법 잘 도와 주다가

비행기 타고 한국에 도착하면

그 즉시 옛날로 돌아가 집안 일에 무관심한다는 이야기는 다 잘 아는 이야기 입니다.

 

내가 세번씩이나 오십견을 겪으면서

차를 몰다 문득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왜 오른쪽 어께에 두번씩 말고도 왼쪽 어께까지 오십견에 걸리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은 대 부분 한법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데.....

오른쪽 2번을 앓고는 이제는 없겠지 했으나

왼쪽 한쪽까지 오십견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이....

 

오른쪽 어께에 고통을 안고 살면서

한번도 왼쪽 어께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습니다.

오른쪽이 아플 때,

왼쪽의 수고를 생각하여 보지도 않았습니다.

 

이제야 왼쪽 어께의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천당에서와 같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서로 살아 갈 수 있는게

세상의 원리임을 아프고 나서 겨우 알게 되었다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한 가정에서 남자가 여자와 함께 일 한다는 것은

엄밀히 이야기 하면 도움이 아닌 당연이자 의무 입니다.

언젠가 아내가 그랬지요,

왜 돕는다고 말을 하느냐고요,

함께 같이 한다고 해야지.....

 

오늘 이렇게 우둔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아내였음은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른쪽 어께는 '나" 이었고

아픈 왼쪽 어께는 "아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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