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8

자유로운 멈춤

자유로운 멈춤 곽 우천 지금 난 나의 시체를 운반하는 걸 본다 집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불바다로 시공간을 잊은 공간 부모 형제의 개념 자체가 없는 슬픔도 기쁨도 없는 무의미와 의미가 무의미한 곳 내가 어디로 놓이고 가고 있는지 볼 뿐이다 나를 이렇게 보기는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다 그냥 미라인 상태이다 잠이 아닌 멈춤으로 과거도 현재도 미래의 시간이 내 몸에 가두어져 있다 불의 시간이 지나도 어떤 형태의 변화는 없다 미라를 만드는 이유가 시간의 가둠이었는가 영원을 만드는 기술 무감각 나가고 들어 옴이 없는 보존 쇳덩이가 붉게 달구어졌다가 식은 지금부터 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다 어디에 있음은 무의미하다 어둠이 하나인 것처럼 이곳저곳은 없다 우주의 시작이 여기이고 끝이 여기이다 여기에 모두가 여기에 있다 그..

카테고리 없음 2023.08.03

밤을 한 입에 삼키는 법

*밤을 한 입에 삼키는 법 바람이 불렀을 때 하품을 하고 있던 어둠이 밤을 한 입으로 삼키자 밤은 곧 어둠이 되었다 바람에 강한 어둠 세상엔 너에게 꼼짝도 않는 게 있지 했다 바람의 묘수를 알기나 했을지 어둠을 품어 낸 거야 밤이 맞도록 샛별의 눈이 흐려지는 시간 아이는 살았고 산고 끝 어미는 사라져 갔다 어둠이 출산을 한 거야 맑고 밝은, 바람이 모처럼 살랑거리는 아침을

시 글 2023.05.19

골절된 가지에서

*골절된 가지가 길이 되어 석양 끝에 선 한 소나무를 만났습니다 피곤한 하늘보다 어둠을 먼저 가져와 눈이 새까맣다 낮 동안 갈증을 꺼내 몸을 호수 쪽으로 기울고 가지를 손 끝처럼 내어 밀고 있다 걸을 수 없는 몸은 하늘에 길을 낸다던가 아예 골절된 가지가 길이 되어 허공을 걷고 산다 욱어졌던 품 바람에 숭숭 내어 주고 이 밤을 침묵으로 서 있는 나무 아버지 굽어진 어깨 가지에서 뵈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3.04.29

내 옆에 서 주세요

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 이상할 겁니다 발이 넓으면 훤히 알려지거나 알게 되는데 그렇지를 않네요 크기와 모양새가 다르고 아프리카 나라에서 왔는지 검은색 비단도 있나요 비슷해요 나를 따라다니는 달은 하늘을 고집합니다 땅에서 죽어도 발을 떼어놓질 않는 게 있습니다 눈, 코, 입, 귀 없고 걷거나 앉아있는 걸 보면 투명 인간 아닌가 만져봅니다 칼로 쳐보아도 잘린 자국 흔적 없어요 혹 영혼일까 침대 생활을 안 좋아하는지 바닥으로 누워 삽니다 신밧드 손처럼 키를 늘렸다 잡아당겼다 그러니 가만히 보며 관심이 없을 수 없지요 이걸로 스무고개 게임 끝이 아닙니다 펄펄 끓었던 용광로 속에서도 살았고 냉혈 얼음 속에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태양의 눈물 속에서 땀 흘린 적도 바위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부처가 된다 했어요 묻고 ..

시 글 2023.02.18

빛과 소리 게임

둥근 빛은 소리를 찼다 소리는 빛을 찼다 어쩌면 빛은 소리의 꼬리를 쫓아다녔고 소리는 빛의 꼬리를 쫓아다녔다 빛은 빛을 소리는 소리를 찰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찰 수 없는 것처럼 빛이 차면 반드시 소리 차례가 되어야 하고 소리가 차면 반드시 빛의 순서가 되어야 했습니다 빛이 주저앉거나 소리가 그러하면 게임은 끝이 납니다 소리와 빛의 놀이이기에 어둠은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편합니다 집중력은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는가 봅니다 빛의 속도나 소리의 속도가 같은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경험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더 훌륭한 경험은 바로 소리와 빛은 하나라는 점입니다 공상과학에서도 나올 수 없는 초 우주적인 신비한 세계 아인슈타인도 풀 수 없는 게임입니다 어디선가 본 경험이 있을만한 게임이지요 속도를 줄인 빛은..

시 글 2022.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