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매듭

마음의행로 2017. 5. 13. 11:52

 

시장에 다녀온 아내가 검정 비닐 봉투를 꺼내더니

안에 참외가 들었으니 씻어서 같이 하나씩

먹자 한다

검정 비닐 봉투는 왠지 서럽기도 하고 서민적이고

아내를 초라하게 하는것 같기도 하고 해서

시장 갈때는 시장 가방을 가지고 가게 한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가 들기도 하고 한 가지만

들 때도 있다

여보 매듭은 꼭 손으로 천천히 풀어야 해

가위로 자르면 안돼

상인들이 묶어주는 비닐 봉지는 어찌나 꽉 묶었는지

잘 풀리지가 않는다

그분들은 나중 일은 고려치를 않는다

풀리지 않게 가지고 가도록 하면 된다

어릴적 국민학교 시절 가방이 없어서

사각 책보에 책이고 공책이고 가지런히 올리고

어머니 있는 힘대로 꽉 묶어서

학교에서 풀려하면 잘 안 풀려 애쓴 일도 있다

참외 봉지 비닐을 푸는데 시간 좀 걸렸다

시장 아주머니 생각, 아내 생각이 겁쳐져 나왔다

쉽게 자르면 될 일이나 여기서 인내를 기르고

무슨 일이든 잘라버릇 하면 사람이 짧다고

여기에는 아내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안다

대나무는 일 년에 수 많은 매듭을 만들어 내고

한 번만 자란다

나무는 나이테를 일 년에 하니씩 만든다

다들 매듭이다

세월은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 매듭이 없다

그래서 시계를 만들어 흔적을 만들려고 한다

달력도 비슷하다

달력엔 일과 주와 달을 경계한다

퇴직 후 삶이 좋은 것은 세월에 연연하지 않음이다

흐름에 따르면 족하다

하지만 몇 개의 매듭은 만들어 놓고 산다

매 주 단위인 토, 일요일이다

결혼식 참예하는 날을 지어놓아야 한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생일 날 결혼 기념일 날 제사 날도 인지하여야 한다

하나의 세월의 매듭인 셈이다

이 매듭을 잘 풀어야 한다

잊어서는 안되는 일들이요

가위로 잘라서는 더 더욱이나 아니될 일이다

하루 가는 것은 잘 몰라도

일 주일 가는 세월은 익히 알고

한 달 가는 것도 모르다가 일 년

행사는 안다

모두가 다 세월의 매듭이다

우리에게 정말 매듭은 마음의 매듭

그 매듭을 잘 풀어 낸다면

나이들어 가면서 큰 탈 없이

예쁘게 격식 갖추고 생은 꾸려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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