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병영 일기

마음의행로 2017. 1. 25. 03:39

 

취침도 두려운 시간

무거운 몸은 지옥 밑으로 들어가고,

즐기던 잠 흔드는 손

K이병 보초야

천근같은 몸이 초긴장 되어 벌떡

세상은 얼어 붙고 무뇌의 시간이 엄습한다

부모님도 하나님도 생각나지 않는다

오직 혼자만의 두 시간

고향 달거울에 비춰 보려는 어머님 멀굴

애써 내 얼굴을 쓰러 주는 달빛 손

서러운 힘은 사랑을 찾게 한다

무명으로 된 옷들

찬 바람은 바늘보다 날카롭게 천을 뚫었다

방한화 마져 얼고

고참병은 교대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새벽의 4시간에 발이 말이 아니었다

멍하다 못해 죽어가고 있었다

아침 6시에 달려온 교대병

염려 소리가 났어 빨리가라고 해서

부지런히 온거다 어서 들어가

인계인수가 끝나고 돌아기는 K이병은

얼어 붙은 자신은 그곳에 두고

병사로 들어간다

선임들 몇이 부지런을 떤다

상황을 아는 까닥이다

베치카에서 물을 끓여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려 하는데

선임 한 분이 막고 나선다

뜨거운 물에 넣으면 바로 동상이야

발이 썩을 수도 있어

미지근한 물로 만들어 빨리

동태가된 발을 미지근한 물에 넣으니

여전히 동태다

한 참을 지나니 물이 차거워졌다

물을 바꾸어 다시 발을 담근다

발이 녹으니 온 발이 뜨거워져 저려온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니

어느 순간 발이 풀어지면서

겨우 내 발로 돌아 온다

K이병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한없이 도로 K이병이 되고 만다

경험 있는 선임 아니었더면....

이 추위에

운동장 15바퀴 돌고 들어온 발을 보면서

고마웠던 선임의 얼굴을 떠 올려 본다

바로 40여년 지난 발을 보면서...

마지막 악물을 떨고 제대하던 고참

선임들은 그들을 막아섰다

그 벽을 뛰어 넘었다

이제부터는 기압과 폭력은 절대 없다

그 대신 스스로 시간에 맞춰 자기 일을 하자

내무반은 천국으로 변했다

K이병과 같이 들어온 신참들은

몸이 날래졌다

내무반은 깨끗하고 점호에는 빈틈이 없어졌다

병기 손질은 윤이 났다

5분 대기조는 더 빠릿해졌다

식기는 물방울 하나 없이 깨끗하게 씻었고

구두 코 앞은 번들거녔다

예 육군 병장 김병장 입니다

따라서 배운다

예 육군 상병 박상병 입니다

예 육군 일병 조일병 입니다

예 육군 이병 K이병 입니다

자존감 높은 병사들이 되었다

점호는 순식간에 끝이 나고

그 좋은 취침은 빨라졌다

소위 요즘 말하는 민주화 군대가 된 것이다

참 멋진 선배들이었다

그 뒤로 병영은 늘 활기차고 자유롭고

웃음이 밝았다

군대의 사기는 높았고

중대장은 승진을 했다

아침 햇살과도 같은 빛이 온 후로는

대지는 푸르고 새는 노래하고 시내는 맑은물이

흘렀다

오곡이 익은 들판은 마을을 살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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