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두 번호

마음의행로 2017. 4. 21. 06:36

 

'뒤로돌아가' 는

먼저 오른쪽 발에 '뒤로' 구령이 떨어지고

왼쪽발에 '돌아' 가 떨어지고 마지막

오른쪽 발에 '가' 가 떨어지면

왼쪽 발을 오른쪽 발보다

어께 넓이 만큼 앞쪽에 놓고 몸을 180도 돌린다

그러면 왼발이 뒤에 남고 오른발이 앞에 남게된다

이때에 왼쪽 발을 앞으로 힘차게 하나 하면서

내 디디면서

앞으로 가는 구령이 바로 '뒤로돌아가' 이다

알았나?

장가를 가고 아이를 셋이나 낳고 길러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동안의 옛날 일들이 모두가 꿈만같은 세월이다

땡볕이 내리쬐는 어느날 우체부 아저씨가 다녀갔다

아나로그 시절이라 편지 주고 받는 일은

산골에서 듣는 라디오 소리보다 눈에 밝게 띠고

도시로 공부가신 작은 아버지께서 돌아오실 때보다

못지 않게 즐겁다

누구한테서 왔을까 무슨 뻐꾸기 소식이 들어 있을까

조여든 가슴에 누 눈망울은 소 눈만큼 커진다

순간 힘과 넋이 다 빠져 나가고 세상을 모두

잃은 개 한마리는 힘을 땅 바닥에 놓아버리고

혀를 쭈욱 내밀고 아무 생각 없이 멍청히

하늘 한 번 보다가 고개를 돌려 왼쪽 한 번, 오른쪽

한 번 그리고는 꼼짝 않고 하루를 밥 한끼도

먹지 않고 정신나간 옆집 누나처럼

보되 보이지 않고 듣되 들리지 않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6/15 일 오전 10시 까지 xx 사단으로 나오라는

군 입대 통지서였다

세상이 오로지 나 혼자라는 생각,

혼자서 직면하고

또 이겨가야겠다는 의지가 생긴 것은

일 주일 정도 지나서 였다

앞이 보이고 주변이 안개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점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도 만나 당구도 치고 친척집에도 가고

식혀야만 먹는 누릉지처럼 주변을 돌려 가면서

차근 차근 먹고 있었다

그리고 35 개월 15일을

철저한 시간 지킴과 훈련에 훈련을 쌓고

24 시간을 군의 규율 아래서 익히고 닦고

먹고 자고 일어나고 반복하기를 한 것이다

예비군복을 입고 부대를 나설 때

군에 남은 군화 냄새 동료들 땀 냄새 총 기름

냄새가 한거번에 코에서 나오더니 눈물이 되어

보따리채 쏟아져 나왔다

다시 시작이다

이 정신 가지고 나가면 뭐든 다 해낼 것이다

입은 바닷가 몽돌처럼 동그랗게 몽그리고 있었다

앉아도 서도 옷가지 하나 정리해도 네모지고

각지고 반듯하게 깨끗하게 넣어두고

군 생활에서 익혀진 몸은 저절로 생활의

기본이 되어 출발을 했다

군대 꿈을 꾸지 않는지는 20 년이 지나서였고

전혀 꾸지 않는지는 40 년이 지나서였다

지나온 세월 중간 중간에 군 선배들이 나와서

오늘은 제식 훈련이다 사격 훈련이다

유격 훈련이니 배낭짐 잘 싸아라

말을 던져 놓고 갔다

지금도 내 책상 위의 물건들은

모두 각지고 반듯하게 깔끔하게 자리잡고 있다

전쟁이다 큰 소리에 나도 아내도 잠에서 깨었다

또 꿈 꿨어 어께를 얹어 주던 아내도

할머니가 되었다

참 이상 하다

어느날 직장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왔었다

기억에 남는 재미 있는 일을 하나씩 펑 튀겨서

하는데

내가 그랬다

여기서 훈련소에서 가지고 있던 M1 총 번호와

기성 부대에서 가지고 생활한 칼빈 총 번호를

외우고 있는 사람 손들어 봐

그걸 어떻게 외우고 있어 말도 안돼요

첫 자리도 생각나지 않는데...

얘 이병 ㅇㅇㅇ 1745435

예 육군병잡 ㅇ병장 1235247

나는 어떤 특별함을 가지고 있어 발표하는

기발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자랑스럽게 두 개의 총 번호를 말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외운 '우리의 맹세' 보다도

더 깊이 각인된 숫자를 전혀 망설임도 없이....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 나를 쳐다 본다

아마도 저래서 사회 생활에서 항상 활기차고

밝게 웃고 꿈을 만들어 내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 내고 있었구나 하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눈들이 보였다

잘못된 일은 뒤로 돌아가서

다 놓아 버리고 다시 왼발부터 다시 시작한다

알았나

내가 익힌 군령이있다

나이들어서도

두 번호는 놓아 버릴 수 없는

영원한 나의 친구가 된 셈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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