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 7

여기 한 호흡이

여기 한 호흡 있었네 진달래 동산에서 쉬었던 숨 거친 들판에서 모았던 숨 커렁커렁한 자동차 목구멍을 토하던 숨 숨이 있었네 바다를 칼로 가르고 하늘을 톱으로 쓸어낸 네모난 집을 살기 위한 숨이 있었네 광야는 강을 건넜고 에덴은 도망을 갔네 가벼운 짐짝 하나 되지 않으려 세상을 다 들이킨 몸무게 비워내는 마지막 내쉰 숨 두려우셨을까 아까우셨을까 황야를 내 지르던 기압 몰래 숨에 넘겨 주고 색 하나 빛 한톨 남기지 않는 우주가 조용히 이곳에 모였네 당신을 신으로 모시러 몸이 없다는 신을 해와 달 별들이 모두 옷을 벗어 던지고 새 별 맞으러 왔네 남은 자식 둘 거리가 너무 먼 두 손 모은 뜻 별처럼 멀어 한 숨이 떨었던 그 강을 헤아리기나 할까 바람이 일고 불이 살라지고 영혼이 저 골목 사이를 지나고 있네 여..

시 글 2022.06.30

양철지붕

어릴 적 동산 아래 양철지붕 예배당 불붙듯 뜨거운 살갗, 한 여름 비가 오면 세숫대야를 놓았다 붉은 눈물이 또옥똑 떨어지는 곳에 갈참나무 큰 이파리 키가 높은 상수리나무 낮게 기어 다니는 칡덩굴 유치각 유치각 유치각 매미가 첫여름 터트린 느티나무 봄 먼저 알렸던 버드나무, 바튼 기침들 밑에서 자란 어린 풀잎에 파란 눈물이 토도독 토도독 푸른 구멍 난 양철지붕을 보았다 소나기가 지나가면 더 크게 투두둑 투두둑 동그라미 호수 옆 나라 기도 먼저 들으셨음일까 이제야 찾아오신 귀한 손님 양철지붕 꿇은 무릎 마른 쥐가 낱낱히 풀린다

시 글 2022.06.29

물구나무

늘 가는 길 가는 시간에 받침대로 세워진 나무가 걸어요 마주쳐요 기다려 줘요 멈춰서 지나가길 손으로 걷는 다리가 있어요 그는 물구나무를 서요 발로 우주를 그리더라고요 끝내 별을 땄데요 글씨가 비뚤비뚤해요 나 말이에요 지팡이랑 전동카가 없어선 가요 눈도 다리가 멀쩡한데도요 어둠 세월 지나가긴 아직 멀었나 봅니다 그분들만큼 가득 찬 생을 본 적 없어요 늘 가는 대낮인데 늘 가는 길인데

시 글 2022.06.26

흔들릴 때가 좋아요

혼자서 잠수를 탔어요 큰 배는 선장 맘대로 큰 대자 놀음 바다는 흔들리는 미역을 좋아해요 뿌리가 있잖아요 현관문이 환히 열리네요 주변 나뭇잎에 생기가 돌아요 신발은 언제나 깊숙한 곳에 두지요 아내라는 이름 붙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더 멋진 이름 부탁드릴게요 연락 주세요 또 문이 열립니다 주변을 살피네요 바닷물이 밀려오네요 늘 그녀의 발은 오른쪽에 놔두고 오죠 장녀가 가끔은 무겁다고 해요 모신다고 하니 활동 사진인지 상영 중인지 구별이 안 가요 마지막 문이 열립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옵니다 소리도 빛도 없어요 살금살금은 호화로운 표현이에요 모시옷 숨을 쉬나 봅니다 두째는 속으로 용감한가 봅니다 선장은 혼자 누굴 보고 흔들릴 때가 좋았었어요 갈대처럼 뿌리根가 튼튼했거든요 오늘은 흔들리다가 잠수만..

시 글 2022.06.26

오후의 바람들

굽은 길을 길게 도는 공원 오후의 바람들이 도시락에 세상살이 담고 와서 뚜껑처럼 가볍게 잔디 위로 비워 내고 심심한 바람은 호수의 수평을 잘게 쪼개 물 비늘로 춤을 추자 합니다 갈대는 왜 속이 비어 있는지 호수 물을 말아올려 가지 끝 잠자리 마른 목을 축이는데 혼자 동굴을 짓고 사는 중년 하나 이곳저곳 전화로 빈 허파 속을 메꾸려 '빨리 와' 재촉하는 입이 마르는지 오후를 계속 들이킨다 제법 느리게 뿌리는 빛살 나무 가지가지로 모자이크 한 하늘 한쪽에 숨은 수비둘기 한 마리 저녁 식사를 알리는 구구 구국 구구 구국 매달린 공원의 피아노는 종일 음악회 피로로 배고픈 허리를 가늘게 지압해 가며 서쪽 하늘 능선을 등진 나뭇잎들이 서서히 그림자 긴 어둠을 배꼽 아래로 내려 앉히기 시작합니다 집으로 가고 싶어 지..

시 글 2022.06.22

안개 시집

안개 시집 여자를 끌고 가는 강아지 손목 줄을 매어달고 꼴랑꼴랑 앞서 간다 소변보고 싶으면 전봇대가 재미있어한다 꼬리로 오후를 지우며 저녁으로 가고 목줄 같은 시달림에 그녀는 하루가 배 고프다 까치 주둥이를 잔디밭이 사정없이 쪼아댄다 저물어 가는 해가 찢기고 창자가 터지도록 아픈 쪽은 주둥이가 있다 느티나무가 공원 의자에 한 숨을 몰아 그림자처럼 눕는다 아픈 등과 알밴 종아리를 분리한다 침대가 서서히 바뀐다 깨알 같은 눈들이 나를 보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르르 정열을 하고 나를 사열한다 붓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제목을 써 놓고 주석을 살핀다 3 년은 지나야 짖는다는 개의 혀를 볼 수 있으려나 숲이 째재짹짹 소리 영역을 둥글게 펴면 바람을 나르던 새소리가 가지로 앉는 공원 땅이 석양을 낮게 내놓을 때 안..

시 글 202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