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지금 옛 사람

마음의행로 2024. 2. 11. 18:27

그분은 옛날 산 적이 있었던
산 적이 없는 사람으로
지금 와 있는 옛사람이었습니다

폭넓은 선이 끄는 백의를 내려
자락으로 끌고 들어와
눈, 코, 입 얼굴이 모자에 바르게 열을 짓고
귀를 세웠어요

예의 향을 태우는 숨 죽인 한참은
한눈에 조선이 살아 돌아온 순간,
한 모금 침이 꼴깍 선릉을 열었습니다
네 번의 허리 꺾임보다
땅을 짚은 엎드림은 과거만큼 길고 깊었고

맑은술로
향을 음미하는 대왕의 작이 입술에 적실 때
오백 년 내려쓴 종묘사직이 여직 아침의 나라를 잇는 게 보였지요

옛 사람 앞에 서면 왜 누가 바뀌어져 나올까요

12월 9일 내년ᆢ또
그는 이 씨요 조선이요
옛 모자,
지금 사람이 될 것이라고

'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의 산란  (0) 2024.02.21
졸음을 다듬다  (0) 2024.02.13
달빛  (0) 2024.02.08
매화를 걷다  (0) 2024.02.04
달빛 언어  (0) 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