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오후의 바람들

마음의행로 2022. 6. 22. 06:39

굽은 길을 길게 도는 공원
오후의 바람들이 도시락에 세상살이 담고 와서
뚜껑처럼 가볍게 잔디 위로 비워 내고
심심한 바람은 호수의 수평을 잘게 쪼개 물 비늘로 춤을 추자 합니다
갈대는 왜 속이 비어 있는지
호수 물을 말아올려 가지 끝 잠자리 마른 목을 축이는데
혼자 동굴을 짓고 사는 중년 하나
이곳저곳 전화로 빈 허파 속을 메꾸려 '빨리 와' 재촉하는 입이 마르는지 오후를 계속 들이킨다
제법 느리게 뿌리는 빛살
나무 가지가지로 모자이크 한 하늘 한쪽에 숨은 수비둘기 한 마리 저녁 식사를 알리는 구구 구국 구구 구국
매달린 공원의 피아노는 종일 음악회 피로로 배고픈 허리를 가늘게 지압해 가며
서쪽 하늘 능선을 등진 나뭇잎들이 서서히
그림자 긴 어둠을 배꼽 아래로 내려 앉히기 시작합니다
집으로 가고 싶어 지는 시간
'you raise me up' 마지막 노래에
로이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을 기어이 꺼내니
촉촉해진 손수건
오늘은 you가 my home이 되는 밤이 되었으면,
한나절 짊어진 짐을 공원이 이제야 내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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