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칠 현

마음의행로 2021. 5. 11. 15:09

ㅡㅡㅡ
깊고 긴 빛이 창으로 들어왔다
명주실보다 가볍고 가지련하게,
태양을 떠날 때는
이글거리는 불덩어리었으리라
빈 허공을 찌르듯 파고든 긴 여행
이 집 주인은 그 빛을 응시하고 있다
빛은 먼 길에서도 전혀 지치거나
고생을 실어나르지 않았다
일곱 색 무지개 현은 숨겨져 있었다
우주를 통과 땐 별들이 현을 튕겨 '텔스타'
음악을 싣고 왔고
기분이 좋을 때는 장구의 박자를 단 음표가 현속에서 놀았다
차분 할 땐 바이어린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가
서글플 땐 거문고 깊은 내면의 소리가
퉁겨 나왔다
디이잉 딩 트우웅 텅
작은 먼지들이 현을 튕길 때마다
별빛 같은 푸른 소리를 울었다
여름날 콩밭 이랑 사이에 콩 익히는 소리와
빨랫줄에 걸린 빨래 창자의 수분을 증발시키는 모락 거리는 소리
싸달한 봄의 현에는
보리쌀 한 줌의 알알들이 학독에 씻기는
배고픈 노래를 갈아 내었다
베틀에 북이 날줄로 왔다갔다
가로 지를 때마다 비단 금빛 소리도 짜 넣었다
빛이 세상으로 왔다
8분20초를 숨가프게 빠져나온 무지개 빛 7 현은
세상의 모든 물건을 현악기로 만들었다
문지르고 비켜대며 스며들어 소리를 켜 내었다
빛은 곧 소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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