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적엔 힘이 좋아서였나
목욕탕에 가면 바쁘지도 않으면서 늘 떼를 빨리 밀었다
끙끙 거리면서
좀 아쉬운 곳도 있지만 매 번 다음에 더 잘 씻자 하며
오늘을 보냈다
온 구석 구석 떼를 다 벗겨 낸다 하더래도
떼 안끼란 법도 없으니.....
처음엔 매일 아침 저녁 샤워로 대신 하는 기간도 꽤 길었다
등 좀 같이 미실까요?
나보다 나이가 덜 들어보인다
자신이 먼저 애를 쓰시겠다 해서 등을 맡겼다
뚱뚱한 사람 답게 시원하니 밀어주어 등 떼를 벗기는 맛을 알고
난 후부터 일 주일에 한 번 씩은 떼를 벗기게 변했다
오늘도 산을 찾는다
늘 다녔던 길이다 오십 번도 넘게 다닌 길인데도
늘 아쉬움이 남는다
비껴 가야 하는 돌맹이가 늘 마음에 걸리지만 만나 준다는
기쁨도 있다 행여 누군가에 뽑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염려가 들어 있는 돌
하필 길 옆에 터를 두어 결국 말라 죽어버린 소나무
바위턱 아래로 낭떨어지 그 참나무 아니었으면
손 잡을데가 없어 오르기 힘들었을 곳에 섰는 나무의
감사함이 든 가지
대충 눈에 들어 왔다가 사라지는 바위, 나무와 풀들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사는 키 작고
잎이 많지 않은 분재 같은 소나무며
잎 사귀도 없이 대공만 올라와 피는 꽃
오늘 안 왔으면 보지 못했을 수 많은 풀꽃들
듣지 못했을 새 울음
흘러 버리고 말았을 시원한 골 바람
하도 자나다녀 닳아 맨들거리는 바위 등어리
쫄쫄 거리며 물 소리 내어 주는 작은 계곡
헉헉 대다가 필요할 때 한 모금의 목을 축여줄 약수터
힘들게 오르지 말라고 달아 놓은 닳고 닳은 밧 줄
앞이 툭 트여 세상 내러다 보기 좋은 전망대 같은 바위
아내와 두 엉덩이 들어 놓고 김밥 먹기에 편한
바위 사이에 있는 작은 터
발 딛기 편하도록 내가 갖다 놓은 위가 평한 돌
길 잃지 말라고 다녀간 흔적 남긴 나무에 달린
노란 바탕에 XX 산악회 라고 쓰여진 리본
하산 할 때마다 나무 젖가락 신문지 봉지 버린 것
돌아 다니며 비닐 봉지에 주워 담는 정상 근처
다 내려 와서 마지막 용변 볼 산 냄새 들은 해우소
이들에게서 나는 늘 나의 냄새를 믇혀 놓고 온다
다음에 오를 때
그 냄새를 맡으려고 코를 킁킁거려 보기도 한다
아니 냄새가 아니라 나의 떼를, 벗기지 않고
오히려 묻혀 놓고 오르내린다
손 때 묻은 가방이 소중하고 그 안의 든 책이 아름답듯 하다
나를 남겨 놓고 흔적을 남겨 두고자
나의 떼를 묻히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나의 발의 향이 퍼지고 마음의 창이 열리며
늘 그 떼냄새가 그리워 오르고 올라도
늘 아쉬움이 남는 등산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