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5

왜 순해지는지

시작과 끝을 아침과 저녁으로 보는 실존 하나 있어요 불덩어리를 안고 속도 걱정 하나 없이 곧장 나아가는 생명의 적혈구 하나와 파란 지붕을 띄우기 위해, 검푸른 물을 가둬 놓으려 날랜 여우가 굴을 파고 살게, 황새가 날개를 접을 수 있게, 강과 바다를 벗어난 세포 하나와 산소 하나에 수소 둘이 어깨를 맞대면 왜 성질은 부드럽고 순해지는지 몸이 마르지 않게 촉촉한 수분 하나와 가지 않은 곳 닿지 않은 어디에도 없이 남을 깨워 흔들어 자기를 알리는 투명 인간처럼 돌아다니는 신경 세포 하나 태양도 땅도 바다도 바람이 여태 살아왔음은 두 떡잎 사이에서 태어난 누구 하나를 세우려 이어 지켜온 순환 그렇다면 작지만 그는 우주 하나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들 생각하세요 그가 내 영혼의 뿌리였다면 실존은 혹 꽃으로 ..

시 글 2024.04.26

맨발걷기

황톳길 걷기를 옆지기와 우리 앞에 노부부께서 천천히 낮은 언덕을 넘으시더니 끝 지점에서 아내를 보고 웃으신다 왕복 5회 동안 만나는 지점마다에서 미소를 품으시는데 그녀의 몸에서 연로에서 나오는 너그럽고 넉넉하며 아랫목 같은 따스함에 숭늉 같은 구수함에 피로가 날아가버렸다고 고마운 분을 만나 맨발 걷기 두 배의 효과를 보았다고 좋아합니다 덩달은 기쁨 하나 우리도 저리 오래 살아갑시다 저의 제안에 그러고 있잖아요!! ㅎㅎ 진심일까 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나 인정하기로 어땠어요? 젊은 이팔청춘 우리 부부

살며 생각하며 2024.04.26

혜화역에서

혜화역에서/곽 우 천 혜화역이었다 왜 기다리고 이 시간에 어둠을 파 놓고서 여기는, 누구의 뱃 속이라고 소리가 있어 불빛 있는 곳으로 뛰었다 고기가 입을 다물기 전에 살아야 했으니 늙지 않는 할머니를 또 본다 천당 가는 중간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꼭 지나가고 말지만, 그 패를 건너 골목이 개미집 쪼갠 길 페트라를 찾아갑니다 그곳에 백지장 한 분이, 달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면 누가 올 거라는 신앙으로 버티고 계시죠 어서 와 세상에 사람이 없어 아무도 텅 비어 있어 어느 날 씨름을 했어 혼자 놔두고 당신은 고독하지도 않으냐고 내가 다 죽이지 않았으니 죄짓지 않았으니 모센가처럼 당신의 땅에 못 가게 말라고 세상이 갑자기 튀어나와 당신은 꿈을 꾸고 있소 세상은 없는 거요 당신이 세상 아니란 말이오 나도..

시 글 2024.04.13

창경궁 통명전

궁내에 째지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세자를 낳은 어머니다 물러서지 못하겠느냐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폭주하는 삶을 멈추게 하고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모든 사위어 가는 슬픔을 가르쳐 주는 걸까' 창경궁 뜰에 서면 활짝 벚꽃으로 얄쌍한 진달래로 희빈 장씨가 겹쳐보인다 설렘의 통명전이 풍선처럼 부풀었을 때 숨 한 모금 뱃속에 깊이 넣어 두었더라면

살며 생각하며 2024.04.08

종소리 신화1

소리가 시간을 산란하기 시작하면 새벽 4시마다 종은 씨앗을 뿌렸다 마을은 앓기 시작했고 숨을 멈췄던 시간이 걸어 나오면 배고픈 아침들 무끈한 하루치 먹성을 곳과 것과 갈이가 살아 움직였지 뜨거움을 다 삼키면 쏟아지는 별빛 어둠이 시작할 때까지 종직이 할머니는 하늘에 가 계실 거야 논에 모를, 밭에 콩을 동산에 소나무 큰 숲을 소리로 키우셨으니까 글이었고 언어였고 메아리였던, 종소리 안으로 마을은 싸라기 눈처럼 모여들기 시작했지 마고성이 깨어지고 하늘 동산이 경작되기 시작했어 종의 발음이 약해지고 소리를 다 써 버린 그녀 마지막 종의 채를 잡았지 마른 몸이 밧줄에 올려 내려오질 않았어 마을은 두 개의 세상이 맞부딪쳐 흔들거렸겠지 마고와 하늘 동산 밧줄이 내려오며 마지막 종이 말했어 다르지만 하나, 너희 언..

시 글 2024.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