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소 음악회

마음의행로 2016. 9. 8. 12:55

 

손자 녀석이 갑자기 말이 여리어진다

오늘 새벽에 열이 올라 재어 보니 38.3 도

딸이 아침 6시에 해열제를 먹이니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어린이 집에서 나오면서 선생님께서

우리 반에 설사하고 머리 아픈 애들이 있어서요

욱이도 잘 지켜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하나가 아프면 차례대로 아프거든요

딱 하루 지나서 손자도 아팠다

설사는 아니지만 하루에 다섯 번이나 했고

코 가래 감기가 들어 고골 고골 숨소리가 난다

욱이 오랜만이로구나

아주 크고 멋있어 졌네

서울 본토박이 언어에 나근함에 여유까지

들어 있고 연세가 65세는 넘어 보이시고

힌 머리가 조금 섞인 약간 긴 단발 머리

여 의사님께서 칭찬이 자자하시다

곱게도 나이 들어가시는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어릴적부터 손자의 단골 의사가 되셨다

어린 녀석도 아프니 마음이 약해지며

응석 비슷하게 하는 걸 보니

아프면 의지하고 픔이 본능처럼 생겨나는가 본다

우렁찬 합창 소리가 병원 넖은 1층에 울려 퍼진다

남자와 여자가 합창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인 perhaps love 이다

원곡을 많이 편곡하여 본 맛은 떨어졌으나

병원에 와서 이런 음악을 점심 시간에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환자나 가족에게 큰 위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모두 지치고 화도 나고 걱정도 되고 돈 걱정에

가정이 힘이 들 환자들을 위한 음악회를

매일 열어 주는 병원측의 서비스가 고맙고

감사하다

박수가 쏟아지고 서로 분위기를 설려나가니

성악가들의 목소리도 밝아지고 환하게

울려 나온다

오늘은 특별히 암 환자들을 위한 음악회라고

한다

아프면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암 환자에게는 그 아픔이 더욱 클 뿐만

아니라 치료 기간이 길어서

환자의 정신적인 상태가 계속 변한다

따라서 가족들의 신경은 여기에 맞추기에

환지 못지 않게 옆에서 고생을 한다

처음은 암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정을 한다

내가 어떻게 암에 걸릴 수 있나라고

그리고는 큰 충격에 빠진다

말이 충격이지 산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하늘이 온통 노랗게 변하고

세상이 갑자기 싸늘해지게 된다

죽음이란 공포에 잠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 병이 오게된 이유를 찾게 된다

제일 먼저 가족에게서 찾는다

머리 속이 하얗토록 원망스럽고

분하고 억울하고

나에게 좀 더 신경 써주지 못한 일들이

온 통 마음에 번진다

그 스트레스만 아니었으면

그때 그 일만 아니었으면 병원에 갔을 때

조금만 더 침착하게 찾아 보았었으면

생각지도 못한 사유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암이 확인이 되고 치료의 단계에 들어가면

치료가 될까 잘 나을 수가 있을까

몸의 변화는 어떻게 될까?

얼마나 오래걸릴까

돈은 얼마나 들고 어디서 어떻게 구할까

투병 생활은 어떻게 감뢰할까

세상 걱정은 걱정은 모두 다 자기 것이 되고 만다

수술이나 치료에 들어가면 정신적으로

어떤 포기 상태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반항심과 행동은 어느 단계에서나 순간 순간

일어나기 마련이다

천장도 잡고 약품도 잡고 가족도 잡고 음식도 잡고

세월까지도 모두를 잡고 의지하려 하고

희망과 절망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다시 억울한 마음이 불현듯 일어나 울고 악을 쓰고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버티기도 한다

죽겠다 차라리 이럴바엔

살아서 무얼하나 이 몸댕이로

세상이 모두가 다 원망의 대상이 된다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단계 중의 하나이다

위로로 일관을 하고 또 한다

희망을 불어 넣어 주고 염려 말라고

아무 걱정 말라고 손을 잡고 함께 나아서 나가자고

그러나 환자가 극에 달하면

어느 가족은 그래 죽어요 죽어 죽으려면 죽어

죽고 싶으면 혼자 죽으라고 외친다

산 사람은 살아갈테니 혼자 죽어

막 갈 때까지 간다

억울함이 하늘을 찌른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환자에게 뉘우침이 찾아오게 된다

내가 죽으란다 주변에서 가죽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보고 죽으라고 할까

그동안 오직 나만 생각하고 가족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던게 아닌가

아니 모든게 당연하다고 당연히 고생을 같이 하여야

한다고 나보다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산 것은 아닌지 갑자기 나 답지못한

처사가 아닌것 같다

눈에 세상이 다시 들어 온다

무너지고 허물어지고 기댈 곳 한 곳도 없던 세상

모든게 원망스럽고 짜증스럽고 귀찮고 불편한 세상

나를 몰라주고 상관도 없다는 이 세상

동쪽에서 해가 뜨는걸 알았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지나가고 새가 울었다

화단에 꽃들이 피어 있다

옆 집에 사람 소리가 들린다

친척들이 왔다가 돌아가는 모양이다

자둥차들의 불빛이 보인다

도시의 건물들이 하나씩 살아나 자라나고 있다

시집, 장가 보내고 아낙네들 말 소리

유치원 학교 버스가 아파트 앞을 지나간다

세상이 하나씩 살아나고 일어나고 움직이고

소리와 냄새가 나고 다 들 자기 자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게 보였다

나만 딴 나라 갔다 왔는 모양같이 느꼈다

내 고집과 불만과 설움과 고통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게 부끄러웠다

열심히 운동하고 밥도 삼켜 보고 어찌하든

움직여 살아보련다

희망에 목숨을 건다

아픈 후 처음으로 주변과 세상이 느껴졌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맘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들를 위한 소 음악회가 열렸다

너무 과분한 음악회였다

몸의 전 세포가 살아나고 있었다

신경이 서로 연결되고 과거와 지금이 연결되고

여러 고통의 고름이 말라 사라지고

이제는 희망의 별만 쳐다보며 살으리란다

눈이 밝아지고 입이 자기 말을 듣고 귀가 열린다

주변에서도 힘을 더 한다

가벼운 이야기들 웃음도 섞이고 가벼운 재미있는

이야기도 서로 통한다

정원에 심어논 봉숭아가 피었다

백일홍도 피었고 맥문동의 보랏빛도 찬란하다

한쪽 켠엔 채송화가 앙징스럽고 예쁘게 꽃 잎을

쫙 펼쳐 놓았다

해바라기 다섯개가 큰 키를 자랑하고 고개를 든다

초 가을임에도 장미 세 송이가 봄을 착각하고

피었는지 회복을 빌려고 피었는지 검붉게 피었다

하늘엔 뭉개 구름이 산위에서 피어 오르고 있다

뜨거운 햇살이 가을이 깊어지도록 잎새를 물들인다

밤 송이들이 곧 터질 때이다

논의 벼는 올겨쌀 만들기에 알맞다

벼를 베어다가 쪄서 말리고 찧으면 말랑하고

또 다른 새 맛을 가진 은근한 새 쌀의 맛을

자랑한다

환지들도 좋아하는 올겨쌀의 싱그런 맛이

추석 상의 밥맛을 넓혀 줄 것이다

생선과 야채 고기와 따뜻한 국물은

환자의 체력을 보호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주고

살아 남아서 하고픈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여 보는 이 가을의 아침이자

병상에 꽃이 피고 이야기가 생겨나는

어느 병뭔의 소 음악회는 암 환지들에게

소망의 빛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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