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치매인가 했더니

마음의행로 2012. 3. 26. 17:04

  일요일 오후 5시

내가 기억하여 놓은 시간이다.

대개 결혼식은 토요일에 잡기 마련이다. 일요일은 종교생활도 해야 하고 일요일까지 빼앗으면

미안하기에 다들 그렇게 일정을 잡는 것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일요일 이라서 외우기가 쉬웠다.

예식장에 가려면 나이 좀 들면 준비도 만만치 않다. 

서둘러 지하철을 바꾸어 타고 식장으로 올라갔다.

전 같으면 아는 사람을 지하철에서 부터 만나곤 했는데 오늘은 조용히 혼자 가고 있다.

들어서니 양쪽 집안이 오른쪽 왼쪽으로 갈라져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장남이랬지....  그럼은 왼쪽이 맞는데 선배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시간도 장소도 다 맞는데.... 신부측도 살펴보고 신랑쪽을 살펴 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다.

뭔가 크게 잘못 되었음을 직감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청첩장 일정을 확인 할까 하다가 못난 남편 위신이 또 떨어질까봐 그만두었다.

누구한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 볼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청첩장을 살펴보니 어제 토요일 오후 5시인 것이다.

고생도 고생이지만 이런 기억력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겠나 참 한심스러운 나였다.

어렵게 구좌번호를 찾았다. 그 곳으로 조용히 돈을 입금시켰다.

이런 일을 두 번이나 겪었다.

이상하게 일정을 잘못 아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그레 확인을 하고 또 해 본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이다.

호주머니에 먼지가 몆개가 들어 있는지도 다 기억하고 정확하기로 시계 같다고 했던 나였었다.

 

직장 동료들이 두 달마다 만나는 장소가 있다. 그 곳에가면 옛날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는다.

선배님도 후배님도 만나서 한끼 저녁을 먹으면서 정을 나누고 있다.

어찌하다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사람 얼굴은 훤이 떠 오르는데 성부터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이라도 떠오르면 이름이 떠 오를것 같은데 막막한 적이 많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한다.

한 선배는 보건소를 찾아가서 치매에 관한 치료를 하고자 갔다고 한다.

설문 조사처럼 생긴 페이퍼를 내 놓더니  o x 로 답을 표하라고 해서 상당히 많은 문장에 표를 해 보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치매가 아니십니다" 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묘해졌다고 한다.

어떤 것이 치매인지....  분명 일자도 요일도 사람 이름도 잘 잊어버리곤 하는데 말이야....

나와도 비슷한 증상인데 나도 한번 찾아가 볼까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말기로 했다.

 

프로젝트 특급 기술자로 일 부분 참여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전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제일 친한 친구와 함께 서울역에서 만나 가기로 되어 있었다.

문자 메시지를 받았는데 3월 26일 14시 KTX 137호차 그리고 좌석 번호가 적혀 있었다.

올라오는 일자는 27일이라고 들어서 그리 알고 26일을 기다렸다.

일박을 하려면 준비 사항이 많아진다. 잠옷이며 치약 칫솔, 수건, 면도기,  스킨, 로션, 양말, 내복 등등등

적당한 크기의 가방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담았다.

제법 빵빵해진 가방을 들고 나니 오랜만에 여행을 하는 것 처럼 기분이 업되었다.

지하철을 바꾸어 타고 잠실역에서 신천역으로 가는 도중에 알림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세계 핵 안보 정상회의 관계로 삼성역을 그냥 통과한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역을 통과할 때 보니 불은 밝히 켜져 있으나 그 복잡한 역에 사람은 없었다.

마치 인류 문화와 문명을 그것도 디지탈 문화로 꽉찬 공간을 인간만 어디로 가버리고 없고

기계들만 운명을 다 할 때까지 돌아가다 그칠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지나간다.

저 환한 불빛도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로 밝힌 것들인데 발전소에 연료가 다 하면

저절로 꺼지고 인간도 문명도 다 잠들어 버릴 것 같은 흐름을 잠시 타고 지나갔다.  

잠시 동안의 이상한 세계가 뇌에 오래도록 남겨진다.  

서울역에 30분 전에 도착을 하고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지금 어디냐고 물으니 집에 있다고 한다.

순간 머리가 휭하고 날아갔다. 이 곳으로 와야 할 시간에 집에 있다니..

뭔가 크게 잘못되었구나 난 2,3초 간 다운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정을 내가 또 잘못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감쌌다.

다행이 "그래 내일 서울역에서 만나자" 라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휴 혼자 실수한 것 들통이 날뻔 했군... 그래 내일 만나자...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이상하다 분명히 26일 이라고 메시지에 적혀 있었는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메세지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확인에 확인을 하고 난 뒤

프로젝트 부탁받은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후배도 27일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메시지를 하나를 만들어 동시에 친구와 함께 보냈다는 것이다.

친구는 27일로 정상으로 알고 있고 나는 26일로 확인을 하였고...

메시지는 27일로 하나를 동시에 보냈다는데..... 누군가 틀렸을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지하철로 되돌아 오는데 후배 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2011년도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이었다.

여러편이 들어 있었는데 이미 읽었지만 여행중 마땅한 책도 없고 하여 다시 들고 가기로 하였고

지하철에서 보고 있었다.

제목은 "이미, 어디" 작가 이승우씨 글이었다.

"그는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무슨 일을 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로 시작이 된다.

처음부터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허지만 이렇게 시작하면 꽤 큰 파괴력이 뒤에서 나올 징조가 보일 것이라고 생각을 만들어 놓는다.

 

지하철이 어느역을 서지 않고 지나가지 않았는가 하면 처음부터 이상하게 시작하는 책을 읽었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오늘이 아닌 내일이 맞다고 하니 내가 내 아닌 사람 누군가에게 조정을 받고 

행동하는.... 생각이 좀 떨어지는 그런 나인가 싶은 착각에 잠시  빠졌다.

지하철을 두번이나 바꾸어 타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를 만났다.

눈 인사를 서로 주고 받고 나니 착각으로 부터인지 몽롱한 상태가 벗겨 지면서 내가 나로 돌아왔다.

그리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 26일 14시가 맞았다는 사실과 이 사실로 나는 치매가 아님을 확인이라도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치매에 좋다는 바나나를 토마토와 복숭아와 요구루트를 함께 믹서에 넣어

매일 갈아 마신 덕분이 아닌가 생각이 되니 효험을 본 것 같아 더 기분이 좋았다.

 

후배님!  미안해 안해도 좋다네 오늘은 덕분에 본래의 나를 찾은 기분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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