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늙은 호박

마음의행로 2012. 1. 12. 15:03

  나 곧 들어갈께

무뚝뚝한 전화 내용이다.

대학 교수생활을 이제 마치고 시인, 수필가가 되신 처남 전화이다.

아파트 근처에 와서 사전에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걸려야 5분이지만 늘 상황에 대한 배려심이 많으신 분이시다.

옆에서 보아도 학자란 저런 분이어야 한다 라고 생각을 해 왔다.

5공 시절 관변 단체 옆에서 누리고 사는 학자들이 시작되더니

오늘에 이르기 까지 멈출 줄 모르는 처세 물결 속에서도 초연해 오셨다.

남편이 이러면 그의 부인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오면서 크고 누런 노란 호박 한덩이를 가지고 오셨다.

친구 농장엘 갔다가 보이기에 덜렁 가지도 오셨단다.

그래 집에 들리기도 전에 우리집을 먼저 찾아 전해 주고 가시겠다고..

호박은 내 가슴으로 안아도 툭 터지게 남는 아름드리 나무를 안아 보는 것만큼 컷다.

골이 14개나 굵직하게 위아래로 져있고 꼭지는 엄지 손가락 2개를 합한 정도이다.

누렇기 보다는 황토색에 가까와 누가 봐도 잘 익어 거실에 놓 두니

전체에 안정감을 부여해 놓고 있었다.

 

호박은 어려모로 좋은 식 재료이다. 특히 임산부에게 좋기로 이름이 나 있다.

어릴적 나는 그 많은 기침으로 무슨 결핵이라도 걸린 아이처럼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배 창자까지 토할 것 같은 기침을 해 댓던 모양이다.

나도 기침이 많을 땐 눈물이 나왔던 것을 기억을 한다.

그 어느 방학 때,

할머님이 호박 한 덩이를 광에서 꺼내 꼭지 있는 곳을 칼로 도려 내고

날 보고 그 안의 씨앗만을 꺼내라고 하신다.

속은 미끈한 씨앗과 그를 감싸고 도는 부드러운 붉은 속살이 얼켜져 있었다.

그 속에 집에서 만든 뜨거운 엿을 부어 넣고 따낸 꼭지를 밀봉한 다음

한달쯤 후에 큰 숟가락으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한 숟갈씩 떠 먹게 되었다.

특혜라도 받은 것처럼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 어렵고 가난한 시절에 맛 보는 호박속에 든 엿을 먹는 재미는 아직도 못 잊고 있다.

그 해 겨울을 끝으로 나는 소위 해소에서 해방이 되었다.

 

아내는 저 호박에 대해 생각을 해 둔게 있었다.

호박 떡을 해 먹을 수도 있고, 그냥 쪄서 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냥 그렇게 짧게 둘이서 이야기를 마쳤다.

 

막내가 결혼 5년만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우리 집안은 정말 기쁘고 기다리던 행복이 몰아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동안 우리보다 더 신경을 썼을 부부 이야기는 눈가에 눈물없인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한약으로 부터 시작하여 이름 있는 병원, 수 없는 처방 이야기들

모든 걱정이 싹 가시게 되었다.

아내가 말했다.

나 저 호박 있지, 막내 출산 후에 해주려고 해

언니가 갖다 주었는데 귀하게 쓰고 싶어 !

그 보다 더 적절한데가 있을까? 마음이 바로 통했다.

그게 최고의 선택일 것 같아, 저 호박이 그냥 우리집에 온게 아닌 것 같아...

 

언니? 저번에 갖다준 호박 있잖아요, 그것 막내 출산 후에 귀하게 쓰려고 해요!!

언니 고마워요..... 네~ .

짧은 통화는 아직도 가슴에 넉넉하게, 훈훈한 생각으로 차 남아 있다.

거실 앞 쪽에 묵직히 앉아 있는 호박 덩이를 보면

처남 댁, 딸애 생각에 우리 부부의 양 가슴은 몇배나 넘게 크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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