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글

SNS와 Twitter

마음의행로 2012. 1. 18. 20:20

  빈부의 차이가 극심한 세상이 되었다.

이는 이 세상의 질서에 반드시 있게 되는 현상이다.

그래 이를 막을 수도 없고 좋다 나쁘다고 잘라 이야기 하기도 어렵다.

빈부 차이로 인한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져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양극화의 끝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폭력과 폭언,강압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집단까지 나오는

아슬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어 씁쓸하다.

 

자연은 높으면 낮아지려고 하고 낮으면 메워 자연히 높아지게 서로 도우는 것을 볼 수 있다.

공기에는 기압의 차이가 있어 바람으로 조절을 하고 물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흐른다.

그들은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고 살기로 작정을 하였기에 이를 막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끔 태풍이 세상을 마구 흔들어 놓는 경우가 있다.

재앙이다 뭐다 하고 인간사에서는 난리니 재난이니 정의하고 뭐가 잘못되어 당하였는지 등

수습에 안간 힘을 써 본다.

그러나 널리 보면 태풍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고 없어서는 아니됨을 우린 알게 되었다.

태풍을 잠재울 방안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로 인한 다른 피해에 대하여는 어떤 답도 내 놓을 수 없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으로 이를 피해 가고 있다.

 

인간사도 이렇게 높아지면 낮아지려고 하고 낮은 곳에는 높이게 하는 이런 질서는 없는 것일까?

자본주의 국가에서 흔히 보게 되는 것은 국가의 권위와 기업과 경제계의 힘의 대결장이다.

서로 스스로 백성을 위한다고 주장하고 서로 틀렸다고 상대방을 꼬집는다.

백성은 힘 들어하고 해도 그들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국가의 권위라 함은 백성들을 골고루 잘 살게 하고자 하는 데서 그 근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기업과 경제계는 더 많은 것을 남기고 부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창의를 불태우며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 국민을 잘 살게 온 힘을 쏟아 부을 것이다.

세가지 힘이 보이는데 국가의 권위와 기업과 경제계의 힘이다.

이 세 힘은 반드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마치 자연의 높.낮이가 있는 현상과도 마찬가지로,

그 차이가 적은 것이 누구나 좋은 세상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기업이 항만 전체를 사들여 하나의 왕국을 만들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드는 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마을을 특정 집단만이 사는 곳으로 만들고 국가가 갖고 있지 않는 자치법을 만들고 치외법권 지역처럼 산다면 어떠 할 것인가?

이런 두 가지 현상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고 이로 인해 많은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국가는 권위로 이를 적절히 다스리고 크면 작게 높으면 낮게 하려고 대책을 세우고 시름을 한다.

이를 잘 조절하는 국가가 살기 좋은 국가이고 모두가 희망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빈부의 차가 너무 극심하여 부작용이 많은 지금,

어떤 질서를 세워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잘 살게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대안을 만들기에 애를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살려고 기본 질서도 무섭잖게 파괴하여 버리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를 이끌고 가는 사람에게서도 기업도, 경제계를 이루는 사람에게서도 찾아 보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극에 다달으면 새로운 질서 즉 골고루 잘 살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질서에 의해서 그들은 다른 힘에 의해 파괴되기 마련이다. 

경제가 경 착륙이니 연 착륙이니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모두가 연 착륙을 희망하게 된다.

경 착륙은 고통이 많이 따르기 때문이다.

극에 다 다르기 전에 연 착륙이 되도록 강구를 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은 기업과 경제계의 힘이 국가보다도 강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국가 권위 마져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함을 보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전혀 아니다.

당연한 일을 해 왔고 그게 그들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권위의 힘이 약화 된 것은 권위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의 무식에 의함 보다는 자신들의 과욕에 의해서 발생이 되어 진다.

백성이 골고루 잘 살게 하려는 기본 질서를 권위라는 이름으로 다스리도록 그들에게 주었다면,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쉽게 알 것이다.

그리고 그리하는데 어렵지 않을 것임은 말 할 나위도 없다 하겠다.

기업도 경제계도 그들이 잘 됨은 백성에 있음을 알고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의 손을 뻗혀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인간사도 국가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런 질서를 만드는데 막히는 곳은 똟어야 하고 길이 없으면 만들고, 높아서 바로 내려 올 수 없으면 연 착륙의 길을 터 줘야하고

서로의 위치를 인정하여 크고 높고 많고 에서 작고 낮고 적음으로 이동이 필요하다.

어찌보면 국가 동반성장 위원회가 그 역할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힘이 많이 부족하여 보인다.

 

국가의 힘도 기업과 경제의 힘도 주체는 국민이라고 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예수에게 간음한 사마리아 여인을 데리고 나와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처 죽일까요? 하고 묻는다.

앞과 뒤를 다 아는 예수는 말한다.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아무도 법에 있는대로 하지 못하고 물러서고 만다. 양심이라는 질서가 그들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한 요즘 기업도, 경제계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치닫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양 주체인 국민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세상은 아주 시끄럽다.

누가 돌로 칠 수 있을까?  돌로 칠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죄없는 자는 누구이고 돌은 무엇일까?

 

적어도 지금은,

죄없는 자는 백성이고 돌은 SNS이고 Twitter가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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