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얼굴

마음의행로 2011. 8. 17. 17:08

군 입대를 하고 의정부 101보충대에서 본 부대로 배치 받기 직전 1주일간의 훈련이 있었다.

분대 전투 대형을 이루고 고지를 점령하는 훈련을 수행하고 있었다.

분대 전투형이라 옆으로 날개처럼 펴서 고지로 올라가는 형태를 가졌다.

한 여름이라 정말 숨이 턱턱 막히고 기진 맥진 할 정도의 강 훈련이 진행 되었다.

한참 올라가고 나면 "원 위치" 라는 조교의 말이 얼마나 기운 빳게 하는지

몇 차례의 오르락 내리락 끝에 마침내 고지를 정복하고 가상으로 세워진 적의 가슴에

칼빈에 꽂혀 있는 칼을 들이대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정상 바로 밑에 조그마한 빈터에 자리를 잡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노래 경연대회를 열겠다고 한다.

분대별로 한명씩 뽑아 노래가 시작 되었다.

특별한 자청이 아니면 분대장이 지명 타자가 자동으로 되기 마련이다.

너무 힘든 터인지라 손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래 나는 우리 분대 대표로 자동으로 나가게 되었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려니 유행가를 해야 하나, 가곡을 불러야 하나,

잠간의 망설임 끝에 떠오르는 곡이 하나 있었다.

"얼굴" 이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이렇게 시작이 되는 노래이다.

좀 열창이었나? 박수를 받고 나니 기분이 좋아 몸이 가뿐하여 졌다.

어찌보면 우리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사는지도 모른다.

어떤 동그라미 일까? 또 동그라미란 무엇이었을까..?

그 안에 어떤 얼굴을 그렸을까? 

 

사는게 뭔지도 모르고 직업따라 사는게 결국 인생이 되고 마는.....

주된 직업도 사라지고 이제는 그동안 저장한 낱알들이 있는 창고를 열어 

옛일들을 하나씩 헤아려 가면서 모든게 다 지나감을 조용히 지켜보며 지낸다.

열정도 모두 상당한 욕심의 발로 이었다는 사실을 추억으로 가볍게 처리하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말고, 누구에게도 자존을 잃지 말고 살아가자면서...

 

내가 그린 동그라미가 오늘은 갑자기 떠 오른다.

어떤 인생을 산 동그라미 일까.....?

그 안에 무심코 그린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살다보니 그려진 얼굴, 바로 무심코 그려진 얼굴이 아니었을까?

한 번도 내 얼굴을 직접 본적이 없는 내 얼굴, 어찌 생긴 얼굴일까?

 

거울을 보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사실 같은 내 얼굴을 보면서,

아 !  저렇게 생겼나보구나.....

저렇게 그려놓았구나 하는 얼굴....

이 노래의 가사를 지은 시인은 인생을 동그라미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는 것으로 표현했던것 아닌가..? 

무심코 부른 노래속의 가사를 생각하며

거울속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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