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늦게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길가는 행인들이 비와 바람을 피하기에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인다.
후두두둑 소리에 창밖을 보니 희 검은 하늘 빛에 번개의 날섬이 찌릿하다.
30여분을 정신없이 내리붓더니 조금 물러난 것 같다.
어찌되었나 싶어 망설이다가
반바지 차림에 문밖으로 가만히 나가 보았다.
지열이 가라 앉으니 땅이 제법 숨쉬기 편하다고 한다.
마음도 좀 차분하여 지고 속이 뚫린듯한 느낌이 온다.
동쪽 좀 떨어진 곳에는 지금 한참 번개와 천둥이 치는 걸 보아
조금전의 상상이 그곳에 떨어진다.
자연은 그렇게 멋있다.
이곳에만 다 뿌리지 않고 남겨두어 다른 동네에도 나누어 주고 있다.
단풍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향나무, 은행나무의 줄기가 젖어 있는 걸 보니
적잖은 비 바람이라 여겨진다.
도시에서 흙 냄새를 맡을 때는 그래도 비가 온 후이다.
땅 딛고 살아야 하는데 종일토록 시멘트 바닥이 아니면 아스팔트 바닥 뿐이다.
우리 아파트 경내도 작년에 구청에서 아스팔트로 쫙 덮어 놓으니
땅이 숨쉴 곳은 아파트 벽쪽에 남은 화단 부지 뿐이다.
어린이 놀이터 마져 모래밭에서 두텁고 네모진 고무판으로 깔았기 때문이다.
시멘트 바닥 고인 물에 저녁 등불이 떠 오르니 묘한 느낌이 온다.
호수에 비친 등불이 아니라도 저걸 보았으니 대 만족이다.
뜨거운 열정을 식힌 굵은 소낙비는
어느 여름날 오후
떼로 절여 있는 도시를 싸악 씻어주고 개운함을 선사하며
동편으로 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