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산 아래 동네

마음의행로 2009. 11. 8. 20:18

  일요일 오후이다.

친구의 딸 결혼식이 오후에 있어 식장을 찾았다.

오랜만에 강북에 있는 곳의 예식장엘 가게 된 셈이었다.

지하철을 바꾸어 타고 내리니 눈 앞에 바로 예식장이 보인다.

예식장이 4층이 되어 오르니 벌써 친구 몇이 앞서와서 기다리고 있다.

친구와 반갑게 만나고 결혼 축하인사를 나누었다.

 

돌아서서 다시 먼저 온 친구들과 조우를 하면서 이러 저러한 이야기와 그동안의 안부와 건강을 물었다.

잠시 짬이 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예식장 양 옆이 나즈막한 야산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결혼 초에 이곳에서 1년정도 산적이 있는 곳이라 산세며 건물들의 변화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왼쪽산은 나즈막한 산이고 그 뒤로는 북한산이 서 있었다.

 

오늘 오전까지 비가 온 후 개였기 때문에 산은 무척 깨끗하게 몸을 추스리고 있었다.

북한산의 인수봉이 절반 가량 구름에 가려 있어 신비로움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4층에서 내려다 보는 도시는 산의 기울기를 따라 2 ~ 5층 정도의 건물들이 어떤 거리감을 가지고

앉아 있어 너무 편안하고 조그마한 도시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하였다.

옛날에는 저런 곳에서 연탄도 때고 하여 정겨움이 스며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도 그 이웃간에 서로 인사말을 하고 하는 정이 담겨있는 듯한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 같았다.

더구나 가을이라 야산에는 고운 단풍들이 은은한 색갈로 아래 동네를 내려다 보고 있어

도시가 너무 차분하고 아름다웠다.

 

강남의 높은 건물들 틈 속에서 살다가 같은 하늘아래 이지만 이렇케 강북에 오니

숨이 자연히 부드러워 지고 가슴도 열리는 것 같고 그 옛날 살던 맛과 향취가 살아 있어

뜻하지 않는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오른쪽을 보니 옛 신일 고등학교가 보인다.

그 때만 하여도 산위에 깨끗한 모습으로 제일 높은쪽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산 중턱에 있다.

양쪽이 산을 따라 올라간 집들의 끝을 여러가지 나무들로 이루어진 울긋 불긋하고 뭉실뭉실한

나무들로 수를 놓고 있어서 도시가 없었던 옛날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겠나 상상을 하여 보았다.

 

신은 자연을 만들고 사람은 도시를 만들었다는데,

아무리 공학적이고 멋스럽게 건축을 한다 할지라도 역시 자연의 모습에는 비할 수가 없음을 가슴에서 받아 들인다.

조금만 더가면 도봉산이 있는 미아리 수유리 동네에 사는 이곳 사람들의 정서가 얼마나 차분히 깃들었겠나 싶어

내심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돈은 좀 적어 보이지만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져서 사는 곳,

정서적으로는 훨씬 부자로 살아가는 곳, 다툼도 적어 보이고 시를 하나 읖어도 동네에서 나와 들어 줄것만 같은

서정이 가득한 곳을 오늘 발견케 되어 오랜만에 나를 찾은 것 같은 마음이 나를 편하게 하였다.

 

사람 살만한 곳에 산다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조금만 욕심만 버리면 되는데..

강남에 산다는 어떤 상징적인 표적을 새겨 놓고 지우지를 못하고,

지키기 위해, 아니 끝까지 버티기 위해 사는 것 같은 마음 한 구석이 어쩐지 불쌍하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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