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담요 한 장

마음의행로 2009. 10. 12. 12:01

  결혼전이었다.

지금의 아내와 만나고 있었다.

가을비가 한참 뒤에 내리고 있었고,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고 있었다.

아마 영어로는 chilly today 정도로 표현하면 맞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조금마한 얇은 담요가 하나 있어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는 아내의 등에 덮어 주었었다.

추위도 가시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 후에 아내를 바래다 주었던 기억이다.

한 2km 정도 떨어진 곳, 큰 냇가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가면 정미소가 있고 그 옆으로 돌면

쎈배 과자 만드는 공장이 있다.

감나무가 울타리 옆에 서 있는 집을 지나면 길 건너에 대문이 있는 집이 아내의 집이었다.

 

다리를 건널 때에도 아내는 시큰둥한 표정이 보였다.

남자들에게 당시 말로 대대하다고나 할까?

아마 그 정도 표현이라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후 아내는 서울로 이사를 갔고, 나는 시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 동서들이 나보고 서울로 올라 오란다. 동서 친구가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 있는데

서울로 올려 보겠다고 야단들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아내가 어머님 허락 받고 시에 한번 다녀 갔다.

 

나는 서울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그리고 얼마 후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아내는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것 같다.

가끔 아플 때에는 어머니 손은 약손, 내 손도 약손 하면서 머리를 짚어 주면

그냥 좋아진다고 했다.

 

20여년 지나고 나서 한 아내의 말이 생각 난다.

그 때, 비오던 가을 날, 그 놈의 담요를 등에 덮어 주지만 안았다면,

나는 결혼 안했을꺼야...........

나는 그렇게 되면 결혼을 해야 하는 걸로 생각을 했으니 얼마나 못난 이야기야...

지금 생각하면 아내의 도도했던 마음이 여기에서는 스러져 버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도도하게 나왔던 아내는 아마도 천성적인 것이었다.

지금도 모든 일에 당당하는 것을 보면 알수가 있다.

 

얼마전까지 아내는 나에 대한 그동안의 신뢰가 많이 무너진 것을 느낀다.

남자를 오래 겪은 후 알게된 경험적인 것들이 쌓여서 일 것이다.

더 당당하고 나의 일에 조마 조마해 한다.

그럴줄 알았어..... 뭐하나 시키면 꼭 다른 일을 벌어 놓고 마는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근데 요즈음 아내에게 병이 생겼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정신적인 문제가 큰 것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서 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잘 나아지질 않는 것 같다.

 

언젠가 결혼 초에 내가 밤샘을 하고 들어 오면 아내가 나에게 발과 허리를 오래도록

눌러 주고 했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그때마다 잠이들어 얼마나 오래동안 했는지 눈뜨고 난 후

알게 된다.

최근 그 생각이 떠 올랐다.

그래 지금은 내가 해줄 할차례가 아닐까? 그려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대상이 서로 바뀌게 되었다.

10여분이 지나면 아내는 스르름 잠에 빠지곤 한다.

나의 행복한 시간은 옛날 받았던 시간 만큼이나 지나간다.

 

그래 결혼 초 머리만 짚어줘도 아픈 것이 사라진다는 아내였었는데....

오늘은 내가 이렇게 하니 잠이 든 것을 보고 나에 대한 신뢰가 다시 생겨나온 것이 아닌가?

하며 나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 진다.

 

이것 저것 약을 먹지만...

한편으론 나에 대한 신뢰가 돋아나와 병이 빠르게 완치되었으면 한다.

담요 한장 덮어 준것으로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순수한 아내였었다.

이런 아내가 빨리 나아 서로 의지하고 안정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옛날 만났던 이 가을에 희망을 가져보는 나의 맘과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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