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방 두개 아파트

마음의행로 2009. 9. 15. 09:08

  어머나 애기가 인형 같아요 !!

애를 안고 버스를 타고 가던 아내에게 승객들이 들여다 보며 한 말이었다.

큰 애를 낳을때 아내가 태몽을 꾼것 같다.

큰 애가 여러 사람들에게 둘려있는데 다들 좋아하고 약간 부러워하는 꿈이었었다.

학교 공부도 잘했고 말썽한번 없이 정상적으로 자랐고.

특히 문학에 소질이 있어 꿈을 키워주기 위해 교육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그래서 인지 대학까지 소위 인류대 국문학과 라는 곳을 나와 기대도 컷다.

약간 서구적인 얼굴에 지적인 귀티가 있어 멋스러운데가 있는 딸이다.

 

둘째는 꿈을 꾸지 않았던 같다.

직장문제로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1~2등을 하던 애였다.

서울로 다시 올라오게 되자, 그때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서울가면 성적에 큰 변화가 오니까 옮기지 않을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습니다, 죄송하다고 하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갑자기 성적이 뒤지기 시작하면서 공부를 안 할려고 했다.

그래 전문대학 사무 자동학과를 보내게 되었다.

어릴적 사진에 언니와 동생 사이에 끼어서 양쪽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에

성격도 좋고 해서 아주 만족했다.

둘째는 아주 고전적인 얼굴로 주변 아주머니들이 동양적인 얼굴로 너무 예쁘다고 칭찬이 많았다.

특히 세 딸중에서 피아노 소리가 유난히 부드럽고 가벼웠었다.

 

셋째는 동서양 미를 다 겸비한 애로 자랐다.

키도 제일크고 눈이 너무 선하고 예뻐 착함 자체였다.

얼굴엔 항상 분위기가 있고, 그러나 리더십도 있어 카리스마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태몽꿈을 꾸었는데 하늘에서 큰 별두개가 내려온 꿈이었다.

공부를 제일 잘했다. 특히 미술에 관심이 많았었다.

그래 명문대 미대를 졸업하고 S대 미술전공을 나왔다.

결혼식날 생각이 난다. 주례 선생님께서 오드리 햅번보다 더 예쁜 신부라고..

우리집에서 제일 먼저 시집을 갔다.

지금 생각하면 효녀 딸인 셈이다.

 

정말 세딸을 위해서 성심 성의, 모든것을 걸었다.

특히 아내야 말로 자기 몸을 바쳤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나이가 들도록 큰애, 둘째가 시집을 안가고 있어 아내의 시름이 깊다.

아내는 딸들에게 줄 하나 하나를 꼼꼼히 챙겨 두었다.

그것들은 마치 밥을 많이 먹어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아내는 아에 그 방에서 나왔다. 거실이 편하다는 것이다.

나이는 들어가고 정신적, 육체적인 어려움들이 하나씩 따르고 있다.

 

나는 우리 애들이 너무 예쁘게 자랏고 흠없이 컷기에 내 나이 오십대면 모두 시집을 가고

둘이서 재미있게 살게 될거라고 꿈을 꾸었는데....

아내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꿈 이야기도 살짝 곁들인다.

애들의 하는 행동을 보면 엄마 애탐의 끄트머리에도 와 있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너희들이 시집가서 잘 살게되는 것이 모두이다.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이것 빼고는 없다.

아내의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오 !  하나님

그래도 부모 노릇 끝까지 잘하게 하여 주십시요.

방 두개, 나머지 하나는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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