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버려야 할 것은

마음의행로 2009. 8. 18. 17:35

  오늘도 오솔길을 걷는다.

여름이라서 땀이 나고, 숨도 조금은 가파진다.

가끔 불어오는 잎새 바람에 나를 던져 본다.

살아 있음이 이렇게 좋은 것이로구나 생각을 하고 있다.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

빛과 그림자들의 조화, 나무사이를 쫓으며 나는 조그마한 새들,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사랑 이야기, 여기의 한 인간의 작은 가슴으로 쉬는 숨소리...

 

언덕길에 떡갈 나무 조그마한 가지들이 제법 여러개가 꺽이여 떨어져 있다.

누가 꺽은 것도 아닌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꺽이인 자리가 칼로 베인 것처럼 깔끔하다.

거기에는 떡갈나무 열매가 싱싱하니 달려 있다.

한몸을 이끌고 살면서 다 함께 갈 수 없음을 스스로 알고 가지를 스스로 버리고 있다.

큰 것을 위해 작은 자신의 지체를 버리는 자연의 섭리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길을 떡하니 가로막는 놈이 하나 있다.

구청에서 알았으면 아마 인력을 동원하여 톱으로 베어 길을 열어 놓았을만한 놈이다.

나무가 3개의 가지로 뻗어 성장한 상당한 덩치로 자란 상수리 나무이다.

어림잡아 지름이 30cm 정도인 큰 가지 하나가 툭 부러져 길을 막고 있다.

조그마한 가지도 안되겠다 싶어 이제는 급기야 큰 줄기 하나를 부려뜨려 놓았다.

그 큰줄기가 부러져 있는 것을 보면 나무에게 무슨 큼 힘이 있어 자신을 부러지게 하는지 상상이 안 간다.

그렇다고 어제 바람이 많이 불지도 않았고 천둥 낙뇌가, 폭우가 내리지도 않는 가을을 기다리는 새벽이 있었을 뿐이었다.

 

거기에는 많은 상수리 열매도 달려 있었다.

무엇이 부족하여 자신의 한 팔을 쉽게 내 놓은 것일까?

자연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도마뱀이 살기위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다만 서 있는 나무에게 나는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한 세상을 살아 가자면 나를 가볍게 만들어야 함을 여기서 배운다. 

 

나에게도 자를 것이 많을 것이다.

나무처럼 작은 가지를 버리고, 그래도 안되면 더 큰 줄기도 버리고,

그리고는 언젠가 온 몸을 버려야 할 것이다.

나무는 육체를 버리지만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모두 다 가지고 갈 수 없는,

욕심의 가지들을 하나씩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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