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이외수의 "청춘 불패" 중에서

마음의행로 2009. 7. 30. 19:23

  누에의 한살이는 알에서 출발한다. 알은 일차원적인 생명체다.

하나의 점으로 붙박여 무기력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때가 되면 알은 순리의 법칙에 따라 부화된다. 부화된 알을 우리는 누에라고 부른다.

누에는 이차원적 생명체다. 자신의 몸을 움직여 면 이동을 한다.

한 자리에 붙박여 있을 때의 알에 비히면 엄청난 발전이다. 누에는 뽕잎을 갉아 먹으면서 성장한다.

성장하는 동안 탈피를 위해 네번의 잠을 잔다. 그리고 잠자기가 끝나면 고치를 만든다.

 

고치를 만들어 번데기로 변한다. 절대 고독, 번데기는 캄캄한 고치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그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누에가 만드는 고치로 비단을 만든다는 사실을, 동서의 문명을 연결하는 저 장열한 실크로드는

누에가 없었다면 절대로 존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누에의 희망은 비단이 아니다.

그대여 번데기가 캄캄한 고치 속에서 절대 고독을 견디고 밖으로 나오면 날개를 가진 나방이 된다는 사실에 유념하라.

비로서 하늘을 날아 다닐 수 있음에 유념하라.

 

날개가 있는 곤충들은 하늘을 날아 다니고 날개가 없는 곤충들은 바닥을 기어 다닌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날개를 가진 곤충들은 먹이를 축적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욕망을 탈피한 상태로 살아 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짜를 바라지 않는다.

식물들의 꽃가루를 날라다 주거나 씨앗을 퍼뜨려 주는 공상 행위로 먹이에 대한 고마움을 보상한다.

하지만 날개가 없는 곤충을 보라. 날개가 없는 곤충들은 바닥을 비루하게 기어 다니면서 얻어 먹거나 빼앗아 먹거나

훔쳐 먹는다. 그래서 우리는 날개가 없는 곤충들을 싸잡아 벌레라고 부른다.

 

비유컨데 인간은 날개가 있는 인간과 날개가 없는 인간이 있다.

나는 앞에서 누에의 한 살이를 보여 주었다. 그대여 숙고해 보라.

그대가 앞에서 희망을 멈추어 버린다면, 그대가 애벌레에서 희망을 멈추어 버린다면 그대가 네 잠자리에서 희망을 멈추어 버린다면,

그대가 번데기에서 희망을 멈추어 버린다면 어찌 날개를 가질 수 있으랴.

희망을 멈추지 않는 자에게만 희망은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가 만약 날개를 가지고 싶다면 누에의 한살이 중에서 특히 고치 부분을 소중히 생각하라.

비록 그대에게 절대 고독이 찾아 온다고 하더래도 결코 도망치거나 주저 앉지 말아야 한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무릇 희망이 없는 이가 어디에 있으랴.

지금은 새로운 세기의 눈부신 아침,

인간으로서 간직할 수 있는 최상의 희망은

바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다.

희망을 간직하자, 날개를 꿈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