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왕따 나무

마음의행로 2009. 7. 7. 19:34

 

 

 

 

    올림픽 공원에 가면 소위 왕따 나무가 있다.

아마도 넓은 들에 홀로 서 있기 때문 일 것이다.

홀로 있으면 왕따를 당했다고 사람들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점심도 혼자서는 못간다. 꼭 누구랑 함께 가게 되어있다.

혼자라도 가게 되는 날엔 뚝 떨어져 남의 눈에 안보이는 식당을 찾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왕따 나무는 잔듸밭에 웅실 뭉실하게 보기 좋게 잘 자라고 있다.

 

홀로서 외롭게 살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왜 나만 여기에다 뿌리를 내리게 해서 나를 왕따 당한 나무라고 부르게 해놓았을까?

다른 나무들도 연락하고 이야기 하도록 좀 가까이 두지 않고,

고래 고래 고함을 쳐도 들리지 않게 멀리 뚝 떨어지게 나를 낳아 놓았을까?

도움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없는 이곳에 마냥 침묵으로 허구한 날을 보내지 않으면 아니될 신세......

 

그러나 한탄만을 일 삼을 수는 없었다.

그래 용기 백배하였다. 봄에는 재비꽃과 이야기 하고, 시계풀꽃과 말을 하였다.

민들레 씨앗 날리는 날엔 몸에 붙은 씨앗을 잠시 쉬고 가게도 하였다.

어느날엔 잠실사는 이쁜 강아지가 와서 몸둥이에 오줌을 갈겼지만 싫지 않았다.

다른 나무처럼 해도 가리지 않아 해와 이야기도 나누고 푸르스럼한 밤이면 달이 머리 위로 지나면서

말을 걸어 오곤 했다. 바로 밑에 있는 보리밭에 놀던 꿩이 새끼들을 몰고와서 그늘밑에 놀다 가기도 하였다. 

친구를 만들어 나가면서 생기도 찾고 남보다 더 강인하게 바르게 아름답게 살리라 마음을 먹었다.

뿌리도 튼튼하게 하여 지팡이도 없앴다. 바람이 불어와도 스스로 감당하기 부족함이 없도록 컷다.

누구를 원망보다 스스로 일을 해결하며 살아가기를 20년을 넘게 해왔다.

누가 봐도 떳떳하고 자랑스런 청년이 되었다.

 

휘리릭 휘리릭 휘각소리가 뇌를 감전시킨다.

가지 마세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밖에서 찍으세요.

디지탈 시대가 오면서 왠만하면 카메라를 하나쯤 가지고 있는 사람이 늘었다.

특히 노년에 접어들고 할일이 적은 분들이 디지탈 카메라를 기호품으로 끼고 다니는 경우가 흔해졌다.

망원렌즈에 장비도 고가품을 지니고 멋스럽게 왕따 나무를 겨냥한다.

하루에도 수십명 이상이 왕따를 찍고 간다.

또 많은 인간들이 접근하고 싶어 안달을 한다.

뭐 내가 뭐가 좋다고들 이럴까? 언제는 왕따 당했다고 말들 해대놓고는...

 

왕따 나무는 외로울 때가 없어졌다. 그동안 스스로를 외롭다고 친구가 없다고 쓸쓸하다고

핑게 대지 않고 키 작은 다른 친구를 많이 사귀면서, 스스로를 키워왔던 것이다.

자포자기라도 했다면 자살이라도 했다면 누가 오늘처럼 나를 사랑하여 주겠는가?

너무 많은 사람 친구가 생겼고  나를 위한 동호회도 생겼단다.

왕따나무는 왕따가 아니라 cyber 세계속에서도 서로 아껴줄만큼 멋장이로 자라고 있다.

넓은 잔늬에 홀로 스스로 서서 바람으로 머리빗고, 빗방울로 목욕하고 햇빛 로션을 바르니

윤기가 번드르 하다.

 

사람들이 몰려있다. 카메라가 번득인다.

기계가 빙빙돈다.

연속극을 찍겠다고 해서 왕따나무는 그들에게 허락을 해 주었다.

멋진 남녀가 아래에 와서 사랑이야기를 하는데 엿듣고 홀로 웃는다.

나는 왕따가 결코 아닙니다. 나는 사이버 세상에서 누구보다 더 많은 친구를 가진 저랍니다.

나는 사랑 받는 사랑 나무입니다. 나는 사랑 받는 사랑 나무입니다.

큰 소리로 외친다.

오늘도 왕따나무 아니 사랑 나무는 여유있게 서서 올림픽 공원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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