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쪽재비

마음의행로 2009. 6. 30. 21:16

 아버지....? 우리 닭장에 누가 온 것 같은데 닭들이 소리가 나잖아요?

 

시골의 밤중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이런 때쯤이면 사랑방에는 손님들이 들어 앉아 시골만의 재미 있는 이야기들로 웃음이 쉬지 않는 때다.

각 집에서 나온 머슴들이 한데 모여 자고 기도 하고 두부 내기 화투 놀이도 하고,

한편에서는 조그마한 소쿠리를 짚으로 만들기도 한다.

방은 쇠죽 끓이는 불로 인해 뜨끈 뜨끈하다.

 

출출한데 오늘은 누구네 집에 가서 서리를 하지? 한 사람이 꺼낸다.

글쎄 어느정도 돌았으니 남은 집이 많치 않는데.....

바로 옆 집 마동 양반 집으로 하면 좋치 않을까?

그럼  일은 누가 할것이여? 아 !  마동양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는게 무방해...

그럼 재빈이가 다녀 와. 오늘 밤도 포식 좀 할 수 있겠네...

 

아마도 쪽재비가 와서 닭 한마리를 물어가는 것 같구나. 아버님 말씀이다.

쪽재비는 꼭 닭의 목을 물어 죽인 후 입에 물고 도망을 가는 동물이다.

닭장은 대개 토방 밑에 흙담으로 쌓아 만들고 문은 소나무 판자 두꺼운 것으로 하여 닫았다 열었다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닭들은 모두 닭장을 찾아 스스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서도 자리 다툼 소리가 매일 난다.

좋은 자리가 있게 마련이다. 여름과 겨울이 다르다. 닭장 문을 항상 닫고 돌로 괘어 놓는게 일반적이다.

여름에는 문 앞쪽이 시원하고 좋고 겨울은 안쪽이 따뜻하여 좋은 것이다.

그래 저녁 때쯤이면 닭의 싸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조금 지나면 모두 자리를 잡았는지 모두 잠에 빠진다.

닭이 밤이 깊었음에도 소리가 들리게 되면 잠을 자다가도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쪽재비에게 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문을 열고 한번 나가 본다. 쪽재비는 벌써 도망간지 오래이다.

 

다음 날 아침이다.

밥상에 앉아 온 식구가 밥을 먹고 있을 즈음에 "마동 양반" 하고 사립문 쪽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재빈이 목소리가 아닌가?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로 .....?

저어....  어제 밤에 보니 쪽재비가 마동 양반 닭장에서 닭을 한마리 물고 가는 것을 봤구먼요.

아 !  그 일로 왔구먼.. 나는 벌써 알고 있었네. 어서 가서 아침 먹으로 가게.

 

아버지는 잽싸게 재빈이를 돌려 보낸다.

이쯤되면 모두 통과다. 쪽재비는 재빈이고, 닭은 결국 사랑방의 허기지고 궁금(배 고픔)함을 해결하여 주었다.

 

나는 그때야 모든 내용을 알게 되었다.

닭서리를 하여도 이렇게 서로 나중에는 해학적으로 알려주고 알고 하는 것이다.

어서 가게....  얼른 밥을 먹고 논으로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고맙습니다. 마동 양반 !!

이웃간의 정들이 뭉쳐 있는 곳, 서로의 흉허물을 다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이웃들.

그날에는 그런 정이 깃든 사랑방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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