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무엇을 닦았느냐?

마음의행로 2009. 7. 6. 17:32

  십 수년 전 이외수씨의 책을 한권 읽었다.

그 때는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가깝게 하지를 못했다.

아내와 자주 이야기 하다 보니 아내의 저력이 점점 무서워 진적이 바로 그 때다.

아내는 연속극을 몇 일만 보아도 내용을 훤히 알아 낸다.

그리고 가끔씩 보아도 전체 내용을 다 아는 눈치다.

당신은 웬 눈치가 그리도 빨라? 묻는다.

그 연속극 옛날 책에 다 나왔던 것들이야..........

가만히 보면 정말 아내는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물론 추리력도 대단하다.

처음 보는 내용도 어떻게 진행 될 것을 손에 쥐고 있다. 작가를 했더라면 성공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척 짜증이 났다. 그만둘까? 말까? 내 스스로 인내심을 체크하기에 이른다.

뭐 내용이 이래......  한권 전체가 걸레 이야기로 꽉 짜여진 느낌이다.

걸레의 축축한 느낌에서 부터 역할들의 내면 세계와 그 걸레를 든 사람의 마음들을 이 못난 독자는 헤아리기에는 터무니 없었다.

그러나 아내의 실력을 언젠가는 따라가기 위하여 독서를 꾸준히 해냈다.

이해가 되든 안되든...... 상관치를 않고 무 작정 책을 읽었다.

그런지 상당 기간을 거치고 나니 이젠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언젠가 부터 일요일은 내가 청소 당번이 됐다. 이 일은 아내와 약속없는 약속처럼 서로에게 각인이 된 셈이다.

어제도 혼자서 청소를 깔끔하게 해 놓았다. 이브자리도 모두 털고, 진득이가 있다고 해서 브러쉬 달린 청소기로 모두 빨아 들였다.

거실과 방들을 걸레로 닥아내다가 문득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내가 닦는 것들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닦고 있는 걸까?

 

학창시절 어머님이 300원을 손에 주어 주셨다. 얼마나 큰 기쁨인지, 지금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가 어렵다.

농사를 지으시며 고생하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아버님이 큰 공사를 따내 갑자기 부자가 되었던 일도 생각이 난다.

크게 아프셨던 일, 자식들 가르키려고 몸이 부서지도록 하시던 일, 그래도 말씀한번 어렵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퇴근 후 언젠가  집에 오니 힘들어하는 아내 모습이다. 그러면서 아내가 오늘 걸레질을 두번씩이나 했다고 한다.

나는 속도 없이 뭐하게 그리 힘들게 하느냐고 퉁만 주었었다.

 

나는 오늘 걸레로 거실과 방을 닦으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이외수씨가 왜 그리 걸레 이야기를 썼었는지,

그리고 아내가 하루에 두번씩이나 걸레로 집안 청소를 했었는지를....

나는 이 작은 일에서 무슨 진리를 찾아낸 것처럼 진지하게 받아 들였다.

내가 닦는 것은 그 옛날 부모님이 일하시는 고통을 맑게 닦아내어 확실히 그 고통을 찾아 느끼게 함을 얻고 있었다.

또 아내가 집안을 이끌어 가면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걸레질로 고통을 닦아 내었던 것을,

지금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무엇을 닦았느냐? 선문답이 오늘 내게 떨어지고 있다. 

설마 "거실과 방을 닦았습니다" 라고 말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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