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어느 토요일 오전

마음의행로 2009. 6. 10. 11:52

 밤새 온 비가 그친 뒤라 아침에 햇빛이 말끔하다.

창문도 조금 열고, 분위기도 바꾸고 하여 햇빛을 거실로 모셔 온다.

햇빛에 비치는게 창문의 먼지와 떼 끼인 자죽들이 추상화를 흐미하게 그려 놓은 것같다.

사실 싫은게 있다면 보이지 않던게 보이게 되어 할 일이 많아지게 된다.

 

본 김에 청소를 하기로 하였다. 창문도 새로 비눗물로 닦아 내었다.

먼지는 구석 구석 털고, 이브자리는 밖에 나가 턴 후 청소기로 진드기 까지 빨아 들인다.

내 방 청소는 가장 사용하지 않는 고로 일주일에 한번 대청소를 하고 있다.

아빠 방 청소했데?  컴퓨터 자판에 먼지가 끼어 있고 책장이랑 먼지가 쌓여 있는데,

바닥 청소만 한게 아닌가? 이래 놓고 청소했다고 했겠지.. 언젠가 막내 딸녀석에게 한방 먹었다. 

 

그래서 딸들이 일요일에 찾아 오기 전 한마디 할까 봐 사전에 준비를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 아내가 청소를 시키면 겨우 진공 청소기로 밀어만 주었는데 그것도 싫은 내색은 못하니 마음을 바쁘게 만들었다.

왜 빨리 안되지, 금방 안되나? 진공 청소기가 끝나면 걸레질인데,

남자라서 차분히 앉지를 못하고 엉댕이 조금들고 엉거 주춤 자세로 닦고 있다.

청소 몫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듯 몸에 쥐가 난다.

밀 걸레를 사다가 닦지 않고 왜 어렵게 손으로 닦아야만 하는지? 속으로 아내가 야속했다.

3개월쯤 해서 내가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아내는 이 일을 평생을 해 왔는데...

 

나는 점점 이 일이 내 일로 바꾸어 보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걸리던 두 시간이 걸리던 내 일로 받아 들이게 되면서 마음이 차분하여 졌다.

청소도 차근 차근히 섬세 하여져 간다. 걸레질 할 때에도 앉아서 여자가 하는 것처럼 변했다.

이블을  털고 진득이도 빨아들였지, 진공 청소기에 걸레질 완벽한 청소가 아닌가 싶다.

이를 본 둘째가 자기방 청소도 이렇게 하고 나가면서 언니랑 동생 오면 내 방에서

쉬었다가 가라고 하세요!!  이쁜 마음씨 씀에 아내가 좋아라 한다. 

아무리 해도 표시가 안나는게 여자 일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내일이면 또 시작을 해야한다. 청소, 빨래, 뭣사다가 반찬해서 먹을까?

뭐가 싱싱하고 쌀까?  어느 시장이 쌀까?  어느 마켓이 쌀까?

사다 놓으면 언제 다듬고, 씻고 절이고 담글까?

한끼 사먹으면 그리도 편한 것을 한끼를 위해 하는 아내의 손은 수 백개나 된다.

발은 다 닳고 마음은 이리저리 쪼개져 있어 주어 모으기에 시간이 걸릴 판인데 아내는 언제나 순서스럽다.

 

걸어 놓은 빨래 거둬 들여서 개어 놓았다. 어제 벗어 놓은 내 와이샤츠, 메리야쓰, 양말들

힌것 검은 것 구분하고, 손 빨레, 세탁기 빨레 구분하여야 했다.  

손으로 몇가지를 빨고 나니 다른 것은 세탁기로 하잖다.

세탁기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물도 엄청 써댄다.

세탁기 도는 사이 아침 먹고 난 설거지 상과 그릇들을 깨끗히 헹구어 놓았다.

이왕 청소하는 날이니 변소 청소까지 하자고 나섰다.  치약 치솔, 비누들, 로션등 화장품, 여러가지 소품들을 정리하니 한참이다.

세수 대야에 하이타이, 락스를 조금 타서 벽이고 변기이고, 바닥이고, 욕탕이고 골고루 문질러 닦아 놓고 샤워로 물을 뿌렸다.

욕실이 반지르하다, 냄세도 없어지고 조금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쳐 지니간다.

이젠 거두어 들인 옷을 골라서 다려야 한다.

물 뿌리게가 어디로 가고 없다. 한참을 뒤져 찾았다.

그냥 전기 꼽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와이샤스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딸래미 웃옷을 다리는데 주름 투성이다.

이곳 다리면 옆쪽이 주름지고 옆쪽 다리니

새로 주름이 생긴다. 그래도 브랜드 있는 제품이라는데... 여러 말이 입안에 돈다, 땀이난다, 머리가 쭈빗하다.

다리미질 깔게의 거실 바닥쪽에 습기가 축축하다,

왜 그럴까? 뜨거운 다리미질을 했는데 그곳도 여열로 다려 놓고

그대로 두면 곰팡이 슬까봐 개어 놓치 않고 바람가에 놓아 둔다.

 

잠간 쉬는 틈을 이용하여 커피 한잔 끓일려고 주전자를 찾는다.

우린 주전자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만들어 먹는다.

커피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면 혼 날것 같아 찬장문 이놈 저놈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겨우 찾은 커피, 이젠 설탕을 찾았는데 백설탕은 보이나 노란 설탕이 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이미 뭘 찾는지 다 알고 있다.

창문틀 아래 빨간병 있지? 그게 노란 설탕이야.... 조용히 일러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인다.

나무래면 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간사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거기에 빠지고 만다. 여보... 커피물이 쫄아들겠다.

깜박 정신 차리고 주전자를 열었더니...

웬걸 한잔 반 박에 안되게 물이 남았다. 두 잔의 물을 끓였는데 어쩔 수 없이 조금 다시 부어 끓였다.

정신을 바짝 차려 기다렸다. 그래도 커피가 오래 뜨근한 것이 좋은 걸 알아서 우선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살짝 붓고

잔이 따스워 진것을 본 후 물을 비우고 난 후 다시 물을 붓고 커피를 탓다.

야참 이런 커피를 만들어 보는 것도 오래산 덕분인가?

 

이제야 속이 들어서 인가? 아뭏던 아내에게 한잔의 커피를 끓여 줄 수 있다는게 마음 한쪽이 조금은 가벼워 진다.

딩동 현관 벨이 울린다.

여보 세탁소 아저씨가 왔을꺼야. 3만오천원인데 당신이 주면 안돼? 물어볼 필요가 없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사만원을 들고 문을 연다.

틀림없는 세탁소 아저씨이다. 삼만오천원 입니다. 금액도 일치한다.

언제 맡겼는지 겨울 양복을 맡겨 놓았나 보다.

 

베란다에 가서 우엉을 꺼내 거실로 가지고 오란다.

신문지에 제법 많은 량의 우엉이 기다랗게 쌓여 있다.

지난번에 한 것처럼 맛있게 해서 일요일 딸들오면 주잔다.

나는 칼로 우엉 껍질을 벗겨 내기전 신문지를 찾았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한참만에 모두 벗겨 내었다. 이제는 육칠센티 정도로 모두 자르고 다시 세로로 잘게 쓸어야 한다.

참 이만 저만한 일이 아니다. 그냥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칼로 자르는데 빗겨 잘라지기 일쑤이고 잘못하면 손가락 베기 마련이다.

여보 너무 두텁잖아 좀금더 가늘게 쓸어야 보기 좋고 먹기도 좋지...... 모르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전이 훨씬 지나가고 있었다.

 

새카맣게 물든 손을 씻는데 비누로 잘 지워지지 않는다. 나이론 수세미에 비누를 뭍혀 손가락을 한참 문질렀다.

그제야 떼가 벗어진다. 거실로 나왔다. 허리가 뻐근하다. 아내가 해 내는 일량을 생각하면 만족감 보다는 한숨이 속에서 멈춘다.

아내는 지금부터 일이 시작이다. 우엉을 간장, 엿, 와인, 매실등을 넣어 쫄여야 한단다.

 

나는 잠간 누워 있는 사이 고향에 다녀왔다. 너무 꿀같은 단잠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전이 이렇게 지나갔다.

 

 

 

  

'살며 생각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약 6개월 후에 죽는다면  (0) 2009.06.23
부모의 효도  (0) 2009.06.13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서  (0) 2009.05.21
지하철 문화와 효도  (0) 2009.05.19
애기 울음소리  (0) 2009.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