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사회 초년생

마음의행로 2009. 5. 11. 20:57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이었다.

정말 퇴직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리고 나에게 찾아 오면 나는 어떤 반응이 나타나게 되고.

어떻게 행동하고, 그리고 적응하여 나갈까?

갈등에서 오는 문제들은 어찌 할것이고, 또 어떤 돈으로 생활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입장에서 소비 형태로 변할 때 남자의 길만 걷던 굳은 의지들은 어디로 가버릴 것인가?

무엇을 하면서 지낼 것인가?

주변 사람들하고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살게되고, 전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이 될 것이며,

어느 수준에서 왕래를 하게 될까?

집에 함께 오래 있으면 잔소리를 많이해 큰 싸움거리라고 하는데...

규칙들은 어디로서 부터 생겨 나오게 되고 적응하여 질 것인가?

한없이 쏱아지는 질문에 질문이 있을 법한데 그래도 대체로 담담한 편이었던 것 같다.

 

어느날 아내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석촌호수를 한바퀴 돌고 구경을 한 후 동네 아주머니들과

가끔 가 본적이 있다는 집으로 안내를 한다.

직장에 나갈때는 항상 괜찮은 집에 다녔던 것을 알고 있는 아내는 과연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궁금도 하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하였다. 짜장면집, 갈비탕집 이런 저런 생각으로 따라갔다.

홀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나이드신 분들이 많아 보였고, 아주머니, 젊은이, 여러층이 다녀 갔다.

반찬들을 미리 준비하여 놓은 부페 식당이었다.

 

여보 이 집에 가면 돼지불고기도 나온다. 근데 가격은 4천원이야, 괭장히 싸지?

언젠가 올케하고도 한번 온적이 있거던,,, 맛도 있고, 량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얼마나 좋아 !!

나도 이것 저것 골라다가 맛있게 많이 먹었다.

사실 나는 비싼곳만 다닌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아 다녔다.

회사에서 서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이고, 또 어릴적 그 가난이 몸에 베어 한끼 식사로 비싼 것을 먹게 되면

죄스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어느정도 먹고 나서 아내가 말을 한다. 당신 4천원짜리 음식 먹어 봤어? 그것도 부페로?

응,  나는 사실 회사 다닐적에 4천원짜리는 본적이 없지만 그래도 점심은 5천원짜리 먹을려고 노력을 많이 한셈이지..

딱 4천원 짜리는 없었던 것 같아.

그렇치만 당신은 회사에서 저녁에는 맛있는 것 많이 먹었을 것 아니야? 그래 그때가 좋은 세월이었던 것 같아.

그래도 오늘같이 이런 곳에 와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평소 나의 생활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거야.. 

주인은 음식이 부족하면 부지런히 갖다 채워놓았다.

밥을 두 그릇이나 먹는 사람도 있었다. 어려운 사람으로 보였다.

젊은이들은 절약하기 위하여 직장에서 나와 이곳을 찾는 것 처럼 보였다.

 

4천원짜리 한식 부페, 나는 점심을 이곳에서 떼우게 되었다.

여보 오늘 어떼? 잘 먹었어?

그럼 잘 먹었지, 나도 이런곳을 좋아해, 우리 가끔 함께 옵시다.

정말이야? 아내가 묻는다. 그래 나는 당신하고 다닐 수만 있다면 언제나 찬성이야.

사실 아내는 오늘 나에게 어려가지를 시험을 한 셈이었고, 이제 또 다른 사회에 나오게 되면,

새로운 세상에서 적응하게 하려고 미리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나는 말없이 아내에게 감사했다.  

앞으로 살아가게 될 현실 문제를 미리 보여 주고, 다른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충격을 줄이기 위해

아내가 생각해낸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고 보니 틀림없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모든 면에서 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에도 혼자가서 돈을 찾거나 맡겨야 하고,

ATM기에 가서 돈을 인출하고 송금하고, 지하철 표도 사야하고, 자동차도 몰고 다녀야 하고 스스로 파킹과 돈 계산을 하여야 하고,

음식점 위치도 물어서 찾아가고, 술은 알아서 적당히 먹어 남의 도움없이 스스로 집에 갈 수 있어야 하고,

싼집도 미리 알아나야 할 것이고, 구두를 닦는 일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야 하고 등등등 수많은 경우들....

처음부터 모두를 내 스스로 하여 나가야만 하는 세상에 놓이게 되니, 아내가 싼 집을 찾아가 점심을 먹어 준것도

그런 교육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셈이었다.

 

사회 초년생, 초등학교 처음 들어가게 되면 콧물 닦이 손수건을 애들 앞 가슴에다 매어 주던 생각이 생각난다.

지금부터는 네 스스로 코를 닦으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손수건이었다. 

나의 그 손수건은 4천원 짜리 한식 부페로 시작이 되었었다.

여보 감사해, 당신 뜻에 맞춰서 열심히 살께,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래도 너무 염려하지마,

나도 강인한데가 있잖아, 조금만 지나면 당신과 같이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거야,

여보 그동안 내조 고마웠어,

그리고 우리 건강하게 또 남은 인생 열심히 더 재미있게 삽시다. 

애들도 잘 보살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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