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가장의 죽음

마음의행로 2009. 2. 17. 11:03

옆집에 사시는 60대 부부가 계셨다.

아저씨는 개인 택시를 운전하시는 분으로 하루 12시간 운전에 다음날은 쉬는 격일제 근무를 하시는 상당히 중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시며 사시는 분이었다.

그래도 항상 밝고 친구도 많고 가족들도 항상 북적이며 누가 보아도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옆집으로 이사 오시기 전에는 가락동 시영아파트 17평에서 살으셨단다.

이사 온 뒤로 시영아파트는 재 개발에 들떠 값이 크게 오르고 우리동네는 묶여 값이 안 올라 마을 사람들의 분이 가득차 있었다.

그분들은 언젠가 한번 마음에 걸리는듯 이야기를 하시더니 그렇치만 우리는 더 큰 평수로 와서 편하게 살고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지내셨다. 

어느날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용돈 2만원 꺼내 아들에게 주려고 하자 아들이 마다고 도망가는 것을 끝내 불러 세워,

아들에게 돈을 건너는 자상하신 아버님으로 보였다.

여기있다. 군것질이라도 해라. 알았지. 귀에 남는 말이 지금도 머리에 남아있다.

 

그 집은 항상 전등이 밝게 켜져 있고 1층이라 지나 다니면서 저절로 거실이 보이게 마련인데,

우리 부부가 시골 조카 결혼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날부터 이상하게 불이 모두 잠겨있고 커텐도 쳐저서 밖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고,

사람사는 것 같지 않게 어둡고 츰츰하니 이상 타 싶었다.

분명 빈 집은 아닌듯 싶은데 말이다.

 

몇일이 지나고 난 후에 경비 아저씨가 그런다 세상에 불쌍해도1101호 아저씨 만큼 불쌍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운전을 하러 나가셨다는 것이다.

왜 이리 힘이 없는고 오늘은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러시면서 무거운 걸음으로 지하 차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신다.

근데 그 분이 그 다음날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폐암인데 본인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여 가족에게 감쪽같이 숨기고 운전에만 전념을 다 했다는 것이다.

본인 죽은 후를 생각하여 생명보험에 든것도 계속 부어야 하고,

가족을 이끌고 아내가 살아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모아 놓고 가야 한다는 그런 심정으로 계속 일을 하여 왔던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하루 그는 다 알았던 것 같다고 경비 아저씨는 이야기를 한다.

 

아파트 창밖에 선인장이 겨울에 방안으로 들어갈줄을 모르더니 모두 얼어 죽었다.

또 오늘 아침에는 실내 공기 정화를 잘시킨다는 행운목과 다른 나무가 심어진 화분이 영하 8도를 넘는 이 추위를 밖에서 온 몸으로 맞고 있다.

화분도 절반은 넘어질듯하게 기울어져 있어 나무도 둘다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것 같이 보인다. 

나무들이 그런다, 우린 이제 제 역할을 못해 버림받았어 주인을 지켜내지 못한 죄값을 치르고 있어,

가슴에 심장이 멈출것 같은 추위를 어제 밤부터 거실에서 쫒겨나서 숨일 겨우쉬면서 말을 하고 있다.

 

그 활동적이고 부지런했던 아주머니는 어디를 가고 이제 큰 방 하나에만 희미하고 불이 켜져 있고 온 종일 사람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저러다가 우울증에 빠지면 어떻게해 저녁 퇴근 후 우리 부부의 이야기이다.

딸이  몇일은 왔다 갔다 하더니 이제는 보이지를 않는다.

결혼한 큰 아들이 보태어 주는 것으로 사는지 돈을 쓰지도 않을 뿐더러 바깥 출입도 전혀 없다.

나오면 이야기라도 하여볼까 하는데 그림자도 움직이지 않는다.

 여보 우리 같으면 작은 방에 들어가 살고 큰방 또 작은 방은 딸이 와서 살게하고 생활비 조금받아서 살면 좋을것 같은데,

아니면 남에게 세를 내놓던가 형편이 어려운 것 같은데 어찌하려나 걱정으로 한참을 이야기 한다.

 

옆집에 살면서도 사람이 죽어도 연락도 안하고 지내는 우리네 삶이 얼마나 폭폭한지,

지금 겪고 있는 당사자는 얼마나 큰 고독과 처절한 삶을 받아 들이고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당해보지 않는 우리가 어찌 그 바닥 같은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처절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지아비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가정을 살리기 위하여 병원비 마져 까먹고 가지 않토록,

또 남겨두고 가기위해 치료도 받지 않고 죽음을 뛰어 넘어 죽는 전날까지 핸들을 잡은 그 심정을 뭐라고 해야 옳을지,

가족을 먹여 살게하기 위한 남자의 사명같은 그 본질에 충실하다가 가신 분을 생각하며,

고뿔 하나에도 병원을 3 일마다 드나 거리며 의사를 찾던 나는,

오늘 왜 이리도 못나 보이고 작아지는지 어느메 모퉁이에 서서 자리를 못잡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것같은 나는,  

그 분집 앞에 책임 추궁을 당한듯이 내 몰려 있는 두개의 화분 옆을 지나치고 있다.

 

어쩌면 그 아내는 전에 남편이 개인택시를 팔게 되면 7천만원은 받는다고 한 그 말뜻을,

이제야 알고 무덤처럼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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