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기와불사

마음의행로 2009. 2. 6. 15:37

나는 가끔 시간이 나면 절을 찾는다. 절은 항상 나를 편안하게 하여 준다.

그렇다고 누가 나와서 맞아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절이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 편한지 알 수가 없다. 왔다고, 간다고 처마 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다 인연이 있으면 만나게 되는 것인 것을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여운을 남겨주는 절이 좋았다.

 

언젠가 승격 발표를 앞두고 마음의 안정을 갖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점심을 좀 일찍 먹고서 가까운 절을 찾은 적이 있다.

 절에 들어서면서 만나는 입구에 가면 사천왕을 만나게 된다. 

신자들은 이곳에서 합장하고 절을하며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을 비우게 된다. 

대웅전에 올라가기 전 스님들이 돌아 가시면 남기는 부도들이 많이 있다.

이곳에서도 또 고개를 숙여 합장과 함께 마음을 어데론지 모르는 곳으로 날려 보낸다.

대웅전에는 절마다 다르지만 큰 부처들이 계신다.  

절에서는 온 몸을 낮추고 마음을 모으고 염원을 오랫동안 빌게 된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 신자라서 여기까지 하기엔 부담스럼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모습들을 지켜보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지기를 나도 함께 빌어 주게 된다.

극락왕생을 빌수도 있을 것이며 자녀들의 진학 문제, 결혼 문제, 건강문제, 사업문제 등 얼마나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들의 염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나의 마음도 그들의 마음이 된듯하다.

 가끔 나는 절에와서 아무런 댓가도 없이 이런 저런 위안을 받고 나가면서 어딘지 내가 해야 할 어떤 조그마한 행위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며 절을 돌아보며 나오는 나의 등뒤엔 가벼운 바람이 일때가 있다.

 

89년도였던 것 같다. 김천 직지사를 찾았다.

서울이 집이라 2주일에 한번씩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 규칙처럼 되어 있었다. 그럼 한 주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그 당시는 토요일 오후면 일이 끝나게 되는 주6일 근무제였다. 그래서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곤했다.

여행이라야 버스 정류소에 가서 근처 산사를 찾는게 대 부분이었다. 빵집가서 400원짜리 큰 빵을 하나 사면 그만이었다.

대구 시외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김천행 버스를 탓다. 그곳에는 김천 직지사가 있는 곳이다.. 

직지사는 참 여성스런 절이다. 분위기가 아주 부드럽고 산세며  절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자연과 잘 어울려 있는지 모른다.

계절에 비교하면 꼭 봄이라고 할까?  들어가는 입구에서 부터 내 마음을 가볍게 흥분시킨다. 흥분한다고 하니 마음이 들떠 있다는게 아니다.

차분하게 함도 흥분의 한 종류라고 생각을 한다. 한쪽은 절을 한창 짓고 있는 중이다.

자재들이 이곳 저곳에서 보인다. 또 한쪽은 중건을 하였는지 절이 새로 지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장도 하고 머리도 곱게 빗었다. 스타킹도 빨간색으로 다리에 달라 붙게 신었고 제법 멋을 부릴 나이인 스물을 갓 넘어 보이는 처자 같다.

안으로는 금 천불상이 있었다.

팔목만큼한 불상들이 층수에 막게 몇줄로 앞 부처와 사이 사이에 뒷 부처가 자리를 잡은 모습으로 되어 있어 얼굴을 가리지 않토록 되어있었다.

결혼식때 가족이나 친구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던 그런 모습이다.

2/3는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놓았으나 나머지는 아직 미완성 상태이다.

언젠가 다 주인을 만나서 금붙이 옷을 입게 될 것이다.

 

평화로운 마음과 편안한 마음으로 경내를 두루 살피고 오늘의 여행을 마치기 위해서 대웅전 앞을 지나 나가려는 참이었다.

바로 옆에 기와불사라는 단어가 눈에 뜨인다. 처음 본 단어 임에도 그 뜻이 말하는 의미를 알아 들었다.

기와를 헌납하는 곳이로구나. 참 좋은 일이다 싶었다. 뭔가 마음에 걸려서 살펴보니 나는 약간의 갈등을 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기와불사를 접수하는 곳에서 100여m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을 지나가는게 지나만 가는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면 내가 뭔가 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의 발 걸음을 느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냥 내려가야 하나 아니면 기와불사에 참여를 하고 내려가야 하느냐 마음은 벌써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었다.

손은 마음을 뜻을 헤아려 주머니를 뒤지는데,

아침에 나설 때에 차비에 조금 더한 금액 밖에 호주머니에 넣었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기에 허당이 아닐 것 아니겠는가?

뒤지면 뭐해 생돈이 나올리 만무할 낀데 그래고 행여나 하는 기대로 열심히 이 주머니 저 주머니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다행이도 뒷 주머니에서 별도로 만원짜리 한장이 나오는게 아닌가! 손은 부끄럽지 않게 만원짜리를 꺼내어 들었다.

 여기에 차비 정도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염려가 있었다. 기와불사라고 하면 대단한 부호들께서 몇 천장을 사 놓고 가는 것은 아닌지 그게 맞는 것 같은 생각에 망설여 진다.

지금 가진 것이 신통치 않으니 이 일을 어찌 할 것일까? 묘안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나는 용기를 내었다. 다시 뒤돌아서서 기와불사 하는 곳으로 갔다.

잠시 머뭇거리니 기와불사 하시게요? 하고 여자 분이 깔끔하게 보살님들이 입는 옷을 입고 나에게 편하게 말씀하신다.

어떤 위안이랄까? 나의 작은 성의도 받아 들일것 같은....

어떤 그런 색갈이 아니 여유랄까 아니면 음색이랄까 그런 여운이 섞인 말에 나는 금방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참여 할 수가 있지 않을까 할 수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만 만원도 되나요? 그럼은요 천원도 된답니다.

 

나의 마음은 금방 활짝 꽃을 피우고 어께는 팔을 날개로 삼아 쫙 벌리고 발은 벌써 절반을 굽혀 뛰어 올라 하늘을 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아니 이미 준비 되어진 나에게 섞여져 있는 유전자와도 같은 어떤 불교적인 씨앗을 준비하고 나섰다.

만원입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지만 제법자신감이 있었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오늘 이 준비를 위해서 뒷 호주머니는 만원을 감추어 놓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은 아니였을까? 

주인님  요긴 할 적마다 저를 찾아 주시면 딱 맞는 금액으로 꼭꼭 숨겨 놓겠습니다.

그래 오늘 네가 최고다 나는 뒷 주머니가 그렇게도 자랑스러울 수가 없어 한번 손을 넣어 악수를 청했다. 

 

 저곳에 펜이 있으니 원하시는 어떤 글이든지 기와에 써 넣으시면 됩니다. 

 나는 날자와 내 이름을 검은 기와 불룩한 쪽에 세로로 새겨 넣었다.

이 기와는 천년을 직지사 지붕위에 몸을 뭍을 것이다. 

김천 직지사를 내려 오는 길에는 내가 그동안 절을 다니면서 얻은 평안을 모두 다 갚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또 다른 평안이 있었다.  

또 그곳에는 검은 영혼에 하얀 마음을 실은 기와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  

 

'살며 생각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증조할머님  (0) 2009.02.23
가장의 죽음  (0) 2009.02.17
세 친구가 있어 좋다  (0) 2009.01.30
박박사님들  (0) 2009.01.27
여행 끝에서  (0) 2009.01.25